몇 년을 함께 했을까, 되돌아 생각해 봐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이나마 더 정제된 것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몇 가지 겹쳐진 어느 날 끝에 문득 나와 함께 있었다.
내가 어느 시간에, 어느 곳을, 어느 누군가를, 어느 이유가 되었다 한들 그 어떠한 순간에도 예외 없이 붙박이처럼 들러붙어 있다. 드라마틱한 사진적 과장과 작화시 레이어 분리를 통해 메세지를 선명하게 전하기 좋은 광각도 아니요, 원근감 압축에서 오는 꽉 채워진 긴장감이나 대상을 추상화 하기 좋은 망원 렌즈도 아니다. 그렇다고 줌이 되어서 여러 상황에 유연히 빠르게 대응 되는 줌 렌즈도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사용하는 눈동자와 뇌가 인지하는 세상의 전부이자 단 하나의 원근감. 세상 흔해빠진 수 없이 다양한 50mm 초점거리를 가진 렌즈 중 하나. 생경미 같은 것은 없다. 인간이라는 종이 눈으로 인지하는 원근감과 같기에 익숙하고 그렇기에 사진적 구성에 있어 화려함 없는 흥미롭지 못한 그런 초점거리.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의 일신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어떠한 때라도 몸에 일부처럼 있는, 이 50mm 초점 거리가 참 좋았다. 이유라면 몇 가지가 있지만 지금은 그것을 굳이 하나 하나 말하고 싶진 않다. 그저 이 렌즈를 통해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한다. 정신이 나가버린 때에도 이 렌즈는 무감하게 나를 통한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인지, 이 렌즈가 나를 찍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엷고 기묘한 감각이 항상 나를 움켜쥐고 있었다.
렌즈를 통해 나의 망막에 맺혔던 수많은 것 중 어떤 것은, 내 몸에 맺혀져 버린 것들이 있다. 언제부턴가 문득 이 렌즈를 보면 몸이 소리 없이 우우웅 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은 괜찮았다기 어느 날은 하루 전체를 망쳐버릴 정도로 소리를 낸다. 딱히 어떤 조건이나 패턴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어디를 가던 나의 어깨와 손과 마음과 함께했다.
개인적으로도 이웃들에게도 험난했던 2024년이 끝났다. 부디 이 렌즈가 좋은 것 따뜻한 것 아름답고 행복한 것을 많이 봤으면 한다. 나는 2025년 1월 1일 이 렌즈를 다른 이에게 양도 했다.
사랑이 할 수 있는 것이 아직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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