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했다 – ProArt 모니터 감상기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했다.

30-32인치급
패널 균일도 보상 기능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100cd~160cd 범위의 안정적 밝기
장기적으로 믿고 쓸 수 있는 안정성

그 이상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밝기가 1,000cd 라던가, 명암비가 1,000,000:1 이라던가, 픽셀 응답 속도가 4ms 이하 라던가, 해상도가 5K, 6K 라던가, 주사율이 240Hz 라던가, 최신의 Mini LED 라던가, 텐덤 OLED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전부, 나에겐 필요 없는 것들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EIZO 였지만 CS 제품 라인업에는 30~32인치급 제품이 없다. 남은건 CG 계열이지만 현실적으로 접근이 쉽지 않은 가격대라 선택지로 놓기에는 부담이 컸다.

몇 가지 대안을 훑어보다가 ProArt 계열이 눈에 들어왔다.
ASUS의 전문가용 모니터 라인업이었다.

32인치 4K
ProArt 라인업
넓은 색역 지원
내장 전동식 캘리브레이터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균일도 보상기능
그리고 EIZO보다 접근성이 좋은 가격

스펙만 놓고 보면 내가 찾던 조건에 꽤 가까워 보여 매력적으로 보였다.

물론 스펙만 보고 결정하진 않기에 리뷰와 측정값을 찾아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눈여겨보던 모델의 깊이 있는 리뷰를 찾기 어려웠다. 내친김에 다른 제조사의 제품들도 이리저리 찾아봤지만 요즘 리뷰 흐름이 유튜브 중심으로 옮겨간지 오래라 심도 있는 리뷰를 찾기 어려워진것 같다.

그래도 내장 전동식 캘리브레이터, 평균 델타 1 이하 공장 교정, 균일도 보상기능까지 들어갔다면 아무리 그래도 기본은 하지 않을까. 그 정도 기대는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물건을 받고 나서, 그 기대는 빠르게 흔들렸다.

처음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균일도 보상 기능이었다.
균일도 보상을 켜면 화면이 더 좋아져야 한다. 적어도 나빠지면 안 된다. 그런데 이 모니터는 균일도 보상을 켜자 오히려 화면이 더 이상해졌다. 얼룩이 심해지고, 네 면 가장자리 쪽으로 전체 면적의 상당 부분에서 편차가 육안으로 바로 보였다. 계측기 측정조차 필요 없었다.

지금까지 균일도 보상 기능이 들어간 모니터를 여럿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건 ‘엄밀하게 보면 조금 아쉽다’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뭔가 설정 같은 걸 빠트렸나?

공장 초기화도 해보고, 설정도 바꿔보고,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균일도 보정을 끈 상태가, 사실은 켜진 상태로 잘못 설정된 게 아닐까. 혹은 패널별로 개별 측정한 보정값을 넣은 것이 아니라, 어떤 공통 보정값을 일괄로 때려 넣은 것 아닌가.

물론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싶었다. 공장에서 델타 1 미만의 개별 캘리브레이션과 감마 보정을 거쳐 나온다는 제품이 그렇게까지 말이 안 되는 일이 있겠어?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다음 문제들을 겪고 나자, 그 ‘설마’라는 말도 힘을 잃었다.
바로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이었다.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전용 프로그램인 ProArt Calibration을 사용했다. 캘리브레이션 자체는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측정이 끝나고, 결과값을 모니터 내부 LUT에 저장하고 프로파일도 생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일련의 절차를 끝낸 뒤 색이 이상해졌다.

원인을 한참 찾던 와중, 서브 모니터의 색이 좀 미묘하게 달라져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macOS의 모니터 프로파일 설정을 확인했다. 컴퓨터에 연결된 ‘모든 모니터’의 프로파일이 sRGB로 바뀌어 있었다.

결국 ProArt Calibration이 만든 프로파일을 직접 ColorSync 폴더에 옮기고, 수동으로 해당 모니터에 연결해야 했다. 서브 모니터의 프로파일도 원래 들어가야 할 것으로 설정을 바꿔주었다.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모니터에서 전용 소프트웨어는 그냥 부가 기능이 아니다. 그 장비를 믿고 쓰기 위한 중요 통로다. 그런데 그 통로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Custom 슬롯 관리도 이상했다.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을 지원하는 대부분의 모니터가 그러하듯, 이 모니터 또한 내부의 Custom 슬롯에 캘리브레이션 LUT를 저장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1번 슬롯에 HDR 캘리브레이션을 저장했다가, 나중에 같은 1번 슬롯에 Display P3로 다시 캘리브레이션하면, 1번 슬롯에는 Display P3 LUT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Display P3로 캘리브레이션했고, 작동도 확인했다.
그다음 2번 슬롯에는 Adobe RGB를 넣었다.

그런데 순서가 마음에 들지 않아 1번 슬롯에 다시 Adobe RGB를 넣으려고 OSD에서 선택했더니, 갑자기 예전에 넣었던 HDR 모드가 호출됐다.

분명히 Display P3로 다시 저장했던 슬롯에서, 그 이전에 했던 HDR 캘리브레이션이 다시 튀어나온 것이다. 삭제된 파일 복구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이쯤 되면 사용자는 묻게 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모드는 정말 내가 저장한 그 모드인가. 이 슬롯에는 지금 어떤 LUT가 들어 있는가. 방금 저장한 값은 실제로 저장된 것인가. 아니면 UI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이런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치명적이다.

또 다른 부분으로 내장 전동식 캘리브레이터와 외장 캘리브레이터의 매개변수를 동기화하는 기능도 개념적으로는 좋았으나, 실제로는 과정 중에 멈춰버려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혹시 macOS 문제인가 싶어 Windows에서도 시도했다. Windows 10과 Windows 11 클린 설치 환경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연결 방식도 USB-C DP Alt Mode에서 DP 포트와 업스트림 USB 조합으로 바꿔봤다. 그래도 ProArt Calibration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여기서 끝났으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른다.
DisplayWidget Center도 마찬가지였다. 제조사의 안내 페이지를 보면 꽤 편리해 보였다. 일상에서는 오히려 이 프로그램을 더 자주 쓸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반긴 메세지는 DDC/CI 문제가 있다는 알림이 떴다. 권한 설정을 살펴봤지만 문제는 없어 보였다.
같은 환경에서 다른 모니터는 DDC/CI로 밝기 조절도 되고, 1D LUT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도 잘 되었다. 물론 ProArt 모니터 OSD에 DDC/CI는 켜져 있었다.

그나마 macOS에서는 실행이라도 됐는데 Windows에서는 아예 실행조차 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단순 버그라기보다, 장비를 둘러싼 운용 체계 전체에 대한 의심으로 번진다.

균일도 보상 기능 이상, 캘리브레이션 소프트웨어도 불안, 슬롯 관리도 믿기 어렵고 DDC/CI 통신도, 제조사 유틸리티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도 처음에는 침착하려고 했다.
이 정도로 엉망인 것 자체가 문제이긴 하지만, 펌웨어 업데이트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데 같은 제조사의 다른 모니터들은 홈페이지에서 펌웨어를 찾을 수 있었지만, 이 제품은 펌웨어 업데이트를 찾을 수 없었다.

발매된 지 대략 1년 가까이 된 제품인데, 이런 문제를 방치한 채 펌웨어 업데이트 없이 놔두었다는 현상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혹시 홈페이지 관리자가 실수로 누락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제조사는 국가별 드라이버나 펌웨어 페이지가 다르게 운영되는 경우도 실제로 종종 있으니까. 그래서 다른 모니터의 펌웨어 페이지 구조를 기준으로 관련 태그를 바꿔 불러보기도 했으나 역시 없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제품 시리얼 넘버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았다. 제품 등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서 시리얼 넘버가 깨져 나왔고, 제품 등록이 불가능했다.

이건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모니터는 패널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펌웨어, 소프트웨어, 보증, 등록, 캘리브레이션 이력, 프로파일 관리까지 하나의 운용 체계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식별 정보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이쯤 되자 마음은 거의 정해졌다. 사실 어지간하면 이 모니터를 쓰려고 했다. 사용자가 지뢰 루트를 피하고, 그 사이 펌웨어 업데이트가 나오면, 말도 안 되는 문제들은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균일도 보정을 켰을 때 오히려 얼룩이 생기는 문제도, 그냥 그 기능을 끄고 쓰면 꽤나 나쁘지 않았다. 패널 자체의 기본기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가 겹겹이 쌓인 와중에 이 정도 까지 되어버리니 더 이상 믿기 어려웠다.
결국 반품 접수 후, 수거일도 잡혔다.

그런데 중간에 상황이 한 번 더 꼬였다.

이틀 동안 위의 모든 문제를 겪고 포기한 뒤, 반품 접수 다음날 다시 Windows 컴퓨터에서 문제의 그 프로그램들이 작동했다.

어제까지 안 되던 것이 오늘 갑자기 된다. 원인은 모른다. 실패 조건도 모른다. 성공 조건도 모른다. 이건 안심이 아니라 더 큰 불안이었다.

원인을 모르는 간헐적 정상화는 전문 작업 장비에서 안정성이 아니다. 어제 안 됐던 원인도 모르고, 오늘 된 원인도 모른다. 다음에 다시 안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작동한다고 해서 장비가 정상이라는 뜻이 될 수 없다. 그 와중에 굳건히 일관성을 유지한 것도 있었다. 시리얼 넘버는 여전히 정상 표시되지 않았고, 내장 전동식 캘리브레이터와 외장 캘리브레이터 사이의 매개변수 전달도 안 되었다.

짜증이 배어나왔다.
물건에 문제가 있으면 반품하면 된다. 절차상으로는 그게 전부다. 하지만 그럼에도 질척거릴 정도로 짜증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작업 기준으로 삼을 장비를 찾고 있었고 판단과 결정을 하기 위한 환경에 대해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오롯이 집중한 시간을 사고 싶었다. 그런데 이 모니터는 계속 나에게 장비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 경험 이후 자연스럽게 NEC PA가 떠올랐다. 하지만 NEC PA 라인업은 더 이상 없다. Dell은 애매하고, LG는 내 기준에서는 장기 기준기라기보다 임시 장비에 가깝다. BenQ SW의 32인치 라인업은 너무 오래되었고, BenQ의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소프트웨어가 아직까지도 macOS에서 Intel 바이너리만 지원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EIZO와 NEC를 둘 다 사용했던 경험으로, 둘 다 단순히 패널이 좋은 모니터가 아니라 색을 판단하고 결정하기 위한 시스템에 가까웠다. 여기에 더해 비슷한 스펙이면 EIZO보다 NEC의 가격이 더 접근성이 좋은 가격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제품의 품질과 기능 신뢰성은 매우 좋았다.

NEC의 SpectraView 캘리브레이션 구조, MultiProfiler, 내부 LUT, 색공간 에뮬레이션, 유니포미티 보정 강도 조절, 전원 켜고 3분 만에 목표 휘도까지 자동보정하는 기능 등 나열하면 길지만, 핵심은 기능의 수가 아니었다.

그 기능들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작업자가 장비를 믿고 쓸 수 있게 하고, 캘리브레이션과 색공간 에뮬레이션의 논리와 작동이 명확히 분리되어 워크플로우에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소프트웨어가 장비의 부속물이 아니라 장비 철학의 일부로 작동한다.

NEC PA는 좋은 모니터라기보다, 작업을 거듭하며 수많은 판단을 받쳐주는 하나의 체계였다. 그런 NEC Display가 Sharp로 넘어간 뒤, 모니터계의 근본인 MultiSync 브랜드의 최상위 컬러 크리티컬 라인업인 PA 시리즈가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NEC PA가 겨냥했던 시장은 전체 모니터 시장에서는 매우 작은 전문 니치 시장이었다. 고객 수는 작고, 개별 판매가는 높고, 요구 품질은 매우 높고, 지원 비용도 높았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패널 선별, 공장 보정, 보증, 장기 지원까지 생각하면 운영 부담도 컸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런 제품을 사는 사람은 2~3년마다 바꾸지 않는다. 7년, 10년씩 쓴다. 좋은 제품을 만들수록 오래 쓰이고, 오래 쓰일수록 반복 매출이 줄어든다.
그게 시장의 역설이다.

제품은 훌륭했지만, 시장 구조가 그 훌륭함을 유지할 만큼 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EIZO가 살아남은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고 느꼈다.

EIZO는 일반 모니터 회사라기보다, 의료, 관제, 산업, 보안, 크리에이티브 분야를 겨냥하는 고신뢰 디스플레이 회사에 가깝다. RadiForce, CuratOR, DuraVision, ColorEdge가 모두 같은 논리 안에 있다.

‘우리는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장소의 화면을 만든다.’

NEC PA도 품질은 훌륭했지만, Sharp/NEC Display 통합 후 회사 전체의 중심이 컬러 크리티컬 데스크톱 모니터에 남아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EIZO는 ColorEdge가 회사 정체성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었고 이것은 고신뢰도로 브랜드를 더욱 강화했다.

NEC PA는 훌륭한 제품군이었지만 회사 전략 안에서 보호받지 못했고, EIZO ColorEdge는 EIZO라는 회사의 정체성과 강하게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성능, 품질, 신뢰성, 가격, 철학적 접근이 경쟁사보다 좋아도 제품은 사라진다. 이런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다.

품질이 더 좋은 제품이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철학이 더 깊은 제품이 반드시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가격 대비 가치가 더 좋아도 사라질 수 있다.
좋은 제품이 반드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는 이런 일이 반복된다.

진짜 필요한 사람은 적다.
그 사람들은 오래 쓴다.
오래 쓰면 교체 수요가 느리다.
기능이 깊을수록 설명이 어렵다.
설명이 어려우면 마케팅에서 불리하다.
지원 비용은 높다.
시장은 깊이보다 회전율을 선호한다.
경영진은 기술적 완성도보다 반복 매출, 자본 효율을 본다.

이런 구조에서 NEC PA 같은 제품은 불리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좋은 제품의 가치는 때론 써본 사람만 알게 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스펙표에는 넓은 색역, Delta E, HDR, USB-C, 공장 캘리브레이션,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같은 문구가 적힌다. 하지만 그 문구들이 실제 작업에서 신뢰 가능한 체계로 묶이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전문 장비가 주는 신뢰는 스펙표에 드러나기 힘든 부분이다. 이런 신뢰성은 사용 중에 드러난다. 그래서 작업자가 장비를 의심하는 피곤한 일 없이,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진짜 차이다.

이런 건 직접 써보기 전엔 잘 안 보인다. 시장도 잘 측정하지 못한다.
요즘엔 리뷰도 영상 형식으로 넘어가면서 잘 다루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얕은 스펙 경쟁이, 깊은 제품 철학을 밀어낸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이 살짝 냉소적으로 된다. 새 제품을 봐도 설레기보다 먼저 의심하게 된다. 리뷰를 봐도 ‘그래서 제대로 측정은 했고?’ 부터 묻게 된다. 제조사 설명을 봐도 ‘이 문구가 실제로 뭘 의미하지?’ 하고 파고들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조사 설명 자체가 의도적으로 애매한 경우도 있다.

‘제대로 만든 물건’ 감소에 대한 감각.

이번 ProArt 경험에서 실망한 지점도 사실 이 부분이었다.
ProArt는 스펙상으로는 전문가용 모니터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운용에서는 그 언어를 끝까지 책임지는 느낌이 너무나 약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은 느슨했고,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 추적은 어려웠다.

NEC PA는 시스템을 만든 느낌이었다.
ProArt는 스펙 좋은 모니터에 전문가용 기능을 끼얹은 느낌이었다.

둘 다 ‘Pro’라는 말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의미는 달랐다.

NEC의 Pro는 반복성, 예측 가능성, 장기 운용성에 가까웠다.
ProArt의 Pro는 스펙, 기능 목록, 브랜드 포지션에 가까워 보인다.

이 차이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도 드러난다.

모니터 베젤과 로고에서 이런 부분을 볼 수 있다.
컬러 크리티컬 모니터의 전면부는 그냥 외관이 아니다. 판단 환경의 일부다.

모니터 앞에 앉았을 때 보는 것은 화면 이미지뿐이 아니다. 화면을 둘러싼 베젤, 하단 로고, 버튼 표식, 표면 반사, 화면과 베젤 사이의 경계, 전원 LED, 주변 시야까지 모두 함께 들어온다.

좋은 장비는 이 모든 요소가 조용해야 한다.

중립적이어야 하며, 로고가 튀지 않아야 한다. 하단부가 시선을 끌지 않아야 하며, 제품이 아니라 작업할 이미지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NEC PA는 이 점에서 명확하다.

NEC 로고는 왼쪽 상단 구석, MultiSync 제품명은 오른쪽 상단에 배치하고 작고, 얌전한 무광 그레이로 차분하게 안착해 있었다. 사용자의 시선을 훔치지 않고 거의 사라지는 방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MultiSync라는 유구한 이름을 가지고도 NEC는 그것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건 겸손이라기보다 정확한 이해였다.
이 장비의 주인공은 브랜드가 아니며, 사용하는 사람이 보는 화면 안의 이미지다.

반면 ProArt의 이 모델은 전면 하단 중앙에 큼지막한 회사 로고가 광택 입체 금색 양각으로 로고가 박혀 있다. 사실 처음 봤을 때 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이 조합은 컬러 크리티컬 장비에서는 도움 될 일은 전혀 없다.

프린트 작업에서는 흰 여백, 회색 톤, 암부, 미묘한 색온도, 중립성 판단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바로 아래에 금색 광택 로고가 있으면, 그것 자체가 불필요한 색 자극이 된다.

따라서 컬러 크리티컬 모니터의 전면부는 광고판이 아니라 판단 환경의 일부다. 물론 ProArt의 금색 로고 하나만 보고 제품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중에 겪은 일들과 겹쳐놓고 보면, 그 로고는 이상하게 정직했다.

전면 중앙의 금색 로고, 유니포미티 보정의 이상한 동작, 불안정한 캘리브레이션 소프트웨어, 원인 모를 간헐적 정상화, 시리얼 미표시. 전부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장비는 진짜 판단 및 결정 도구로 끝까지 정렬된 물건이 아닐 수 있다.

물론 제조사가 의도적으로 속였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선 오히려 더 피곤한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정말 이것을 ProArt라고 믿고 팔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가 모니터에 요구하는 Pro의 의미와, 그들이 제품화한 Pro의 의미가 달랐다.

내게 Pro는 조용함과 반복성이며 예측 가능성이다. 또한 시각적 중립성과 장기 안정성이며, 최종적으로는 해당 카테고리의 모니터를 주로 사용할 작업자에 대한 이해다.

ProArt에서 내가 본 Pro는 스펙, 기능, 브랜드, 디자인, 마케팅 언어, 크리에이터 시장 포지션에 가까웠다. 둘 다 Pro라는 말을 쓰더라도,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번 경험은 단순히 이러한 장비와 만났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NEC PA 같은 장비가 왜 좋았었는지, EIZO가 왜 계속 마음에 걸리는지가 정리 되었다. 여기에 더해 리뷰 시장이 실제 운용 신뢰성을 얼마나 깊게 다루지 못하는지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장비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내가 원한 것은 단순했다.

화면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 반복 가능한 기준 환경.
작업자가 자신의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조용한 장비.

그런 장비는 드물다.
그리고 점점 더 드물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과거가 전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엉성한 물건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제대로 만든 물건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시절의 감각은 분명히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NEC PA가 그리운 것은 단순한 추억 미화가 아니다. 사소한 것들까지 작업자를 방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었으며 장기 운용성까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런 장비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더 비싸거나, 덜 믿음직하거나, 임시방편에 가까운 선택지들이다.

그래서 짜증이 났고 조금은 허허로웠다.

제대로 된 물건은 자신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안다.

컬러 크리티컬 모니터가 파는 것은 패널도, 스펙도, 브랜드도 아니다.
작업자가 화면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리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내 앞에 놓여진 대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함이다.

결국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NEC라는 브랜드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아는 제품이다.

스펙표의 문구가 아니라, 사용자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한 물건. 자기 존재 과시보다 사용자의 작업 뒤로 조용히 물러날 줄 아는 장비. 문제가 생겼을 때 미로에 빠뜨리지 않는 시스템.

좋은 전문 장비는 사용자의 시야에서 사라질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남겨야 할 유일한 것은, 신뢰다.

미소

달이 이뻤다.

달에 드리운 뿌연 안개가 지상의 것이 아니라 우주의 것 같았다.
선연하고 창백하고 너무나 밝았다.

사람 홀리는 달이다.
터무니 없을 정도로 야하다는 느낌도 들고 동시에 처연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입에서 조용히 욕이 나왔다.
씨발 이러니까 사람이 홀리지.

그리고 말 없이 몇 촌가를 계속 고개를 꺾어 봤다.
무척, 슬펐다.

이렇게 조용한 가운데 어깨의 카메라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조용히 억누르고 그냥 조금 더 봤다.

꼭, 그러고 싶었다.

길에서 돌아오는 동안에도 계속 그 달이 떠나지 않는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꾹 눌러 담았다. 단 한 방울도 허투루 다루고 싶지 않았다.

달이 이뻤다.

도착해서 담배를 한 대 피우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비명을 지르던 카메라는 침묵과 함께 썩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멀겋게 보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안타깝고 안타까워 도무지 이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버거웠다. 단순한 돌 덩어리 하나 찍지 못했다고 큰일 날 일 같은 건 있지 않다. 있어서도 안된다. 하지만 나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학교 다닐 때 동아리를 하나 만들었는데, 지금도 이어지는진 모르겠지만 당시 제일 하고 싶은 말을 캐치프레이즈로 만들었다. 단순하다.

‘사진에게 자유를’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든다.

사진에게 자유를, 이전에 나는 언제 사진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우문이다.

Pale Blue Dot

세상이 어지럽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심각하고 치명적이며 지속 가능성의 근본 자체를 위협하는 수많은 문제가 눈을 가늘게 뜨며 우리를 보고 있다. 그 속에 수많은 사람이, 이유를 알아도 이유를 몰라도 시체의 산이 쌓아 올려지고 있거나, 미래의 시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정서적으로 인지 교류할 수 있는 범위와 거리와 깊이는 매우 한정적이다. 그래서, 어쩌면 덕분에 우리는 별일 없이 살아간다. 오늘 하루에 있었던 시덥잖은 일들과, 그 시덥잖음 속에 깊이 상처를 받기도 하는, 때로는 시덥잖음에 깊은 위로를 받으며 하루를 살아내어 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개인의 깊은 고통도 타인에게 온전히 왜곡 없이 전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 자기 자신의 고통을 아는 것 조차 힘들다.

나는 힘없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이 영상을 건조하게 보다가, 왜 전조 없이 콧물과 눈물이 났는가? 특정 포인트에서는 비린내가 느껴질 정도로 직설적인 순진함을 가장한, 철저히 정밀하게 조율된 장면도 있다. 게다가 광적인 기술적 집착으로 완성된 장면들은, 단순 서사도 고도로 정제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한 모범에 가깝다. 나는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뻔하디 뻔한 것에 마음이 흔들릴 일인가. 몇 분간 생각했다. 사실 생각이라기보다는,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아 옆으로 돌린 고개를 천천히 다시 돌리는 에너지를 소모했다. 나는 눈물이 나오려는 기미가 보이는 순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눈물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애쓴 것도 왜인지 알고 있었다.

건조한 냉소로 가장한 체념을 재차 생생하게 인지한다는 것은 꽤나 아픈 일이다. 그 결과가 무엇이 되었건, 지금과는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 바람, 욕심, 상상, 예측, 예상, 환상, 믿음, 착각, 집착, 맹목 등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 반대로 저런 것들 중에 어느 비슷한 것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비록 그 생존의 모습은 달라도 적어도 살아는 있다고 볼 수 있다. 살아 있음을 견딜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미래로 한 움큼씩 걸어가진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미끄러져서라도 가고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한. 설령 그것이 매우 순진한 낙관론이라 할지라도 무언가를 태어나게 하는 것은 언제나 냉소가 아닌 낙관이었다.

혹은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

제멋대로

오래전 컬러로 촬영했던 필름을 정리할 일이 생겼다.
라이트 테이블에 불을 올리고, 필름 스트립 전체를 빠르게 훑는다.
때론 정리의 목적과는 관계없는 것을 루빼로 찬찬히 보기도 한다.

며칠 동안 이것을 반복하던 중, 문득 컬러로 촬영했던 필름을 정리하게 했던 이유가 바스러지듯 힘을 잃어간다.

정말, 새삼스럽지만 사진이라는 형식미는 잔인하다.

극도

‘수학의 가장 순수한 형태로 발전한 수학에 대해 수학자들은 그 수학이 아무런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논리 구조일 뿐이지. 좀 재밌죠. 수학은 의미 없는 것들에 대한 극도로 논리적인 사고인 거예요.’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무척 로맨틱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다

길고 지루한 단순 반복 노동의 연속이다.
하루 종일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그저 잉크와 종이의 데이터를 뽑고, 형광 증백제의 영향으로 일어나는 시각적 색 왜곡을 한계 안에서 중성화하고, 농도와 컬러를 확인하고 또 다시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시간은 그야말로 순간이라, 한 달이 거의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기기를 조율 중이다. 꽤나 성과도 있었고 때론 만족할 만한 지점까지 닿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 남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은 계속해 나갈 뿐이다. 이럭저럭 절반 정도는 온 것 같다. 데이터를 잡기 위해 지금까지 사용한 용지는 약 81제곱미터 정도다. 기기가 바뀌면서 이전과 다른 사소한 몇 가지 동작의 차이로 인해 귀중한 용지를 날려 먹은 것이 의외로 된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나의 나쁜 버릇 중 하나가 튀어나온다. 그레이스케일이 부동소수점으로 쪼개진 다음 반올림되는 것이 싫어서, 51 스텝으로 나눠 정수로 움직이는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하다 보니 결국 시간과 돈은 더 들어간다. 그래서 결과물 차이가 드라마틱하게 다르냐 하면 들인 수고에 비하면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 차이가 작업 전체의 어조를 결정하는 경우는, 경험상 흔하게 있다.

흑백도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다. 용지 특성에 따라 적절한 계조 선형성을 갖되 쉐도우 디테일의 뭉개짐을 최대한 방어하면서 선형성을 찾아가기 좋은 시작점을 찾는 것부터 살펴본다. 용지 자체의 색조가 있고 이에 따라 흑백의 색이 어느 정도 따라간다. 이것을 캐릭터로 인정하고 적절하게 맞춰갈 것인가 아니면 한계까지 밀어붙여 중성화시킬 것인가도 고민하던 부분이다. 최근엔 되도록 용지의 캐릭터를 존중하되 기본적으로 달성해야 할 구간을 닿도록 하고, 너무 삐쳐나간 것을 살짝 정돈하는 정도의 범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거의 20여 년 가까이 해왔던 암실 작업에서 필름과 인화지의 데이터를 뽑고 나서, 그 이후엔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작업하던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그 암실이 지금은 명실로 바뀐 것뿐 근본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지만 그중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옛날 암실에서처럼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처음 뭔가를 배우고, 익힌 만큼 세계가 넓어지는 감각이 컸던 청춘의 차이일까, 익숙한 정도의 차이일까, 아니면 이런 노력의 결과 끝에 내가 닿을 수 있는 것에 대한 미지의 기대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까. 아니면 그저 검붉은 암등 아래서 현상 트레이에 담궈진 하얀 인화지 위에, 유령처럼 올라와 현실이 되어가는것을 목도하며 미동없이 올라오는 반복된 고동의 차이 일까.

다만 그래도 이렇게 흑백 프린트에서 농도가 정돈된 걸 보면 프린트 때문에 짜증 날 일이 없다는 것과, 그렇기에 주변의 것은 주변으로 두고 그저 작업에 오롯이 집중하면 될 뿐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을 말해주는 농도 데이터의 비포/애프터를 보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쉬어야겠다고 생각 했다.

다음 순서는 면화지 기반의 형광증백제가 들어 있지 않은 화이버 베이스를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아주,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기준을 만든 후, 기준을 잊기 위한 준비

색과 농도를, 명확한 형태가 있는 것으로서 손에 쥐어 사용 할 수 있는 물감과 붓으로 만들기 위해 먼저 2,033개의 컬러 칩세트를 만든다.

대략 16년 전에 컬러 칩 갯수를 800여 개부터 5200여개 까지 다양하게 시험해 본 적이 있다. 예상과 달리 갯수가 너무 많으면 일종의 노이즈 처럼 되어서 특정 구간에서 색이 튀고, 갯수가 작으면 인터폴레이션이 심해져 정확도가 떨어졌다. 그로부터 대략 8년 이후 장비 성능과 프로그램 알고리즘이 개선되면서, 앞에서 했던 것처럼 컬러칩 갯수를 800여개 부터 5200여개 까지 다시 다양하게 시도해 봤는데, 알고리즘이 개선된 덕에 예전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역시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다. 결국 돌고 돌아, 시작 하기 좋은 출발점으로서 2033개가 합리적이었다. 여기에 필요에 따라 3~1000개 정도의 컬러 칩을 추가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측정을 위한 컬러칩 세트는 크게 다음 요소에 따라 결과 값이 다르게 나온다.
헤드 이동 속도 / 프린트 렌더링 해상도 / 쉐도우 로컬 콘트라스트 확장 / 스펙트럼에 UV 포함 관능평가용 / 스펙트럼에 UV와 편광을 제거한 관능 평가용에 따른 셋팅 조합은 대략 40가지 정도 되는데 작품 프린트 범위 안에 들어오는 기초 조합은 대략 16가지 정도다.

그 중 기본 특성을 고려하고 경험상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을 선택해서 2033개의 컬러칩 세트 6개를 만들었다. 이런 접근을 통하면, 하지 않은 나머지 10개의 조합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유추 가능하다. 설령 드물게 6개 세트의 결과가 전부 기준 이하가 되더라도 최종적으로 2~3개 셋트만 추가로 작업을 더 하면 보통은 기준 범위 안에 들어온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최적화용 패치 셋을 만들어 보충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만든 컬러칩 세트는 건조가 매우 중요하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건조 시키는 동안 색상과 농도가 계속 변화한다. 때문에 프린트 하자 마자 나온 것을 손에 들고 곧바로 색상, 농도 판단하는 행위가 적절치 않은 이유다.

암실에서 프린트 할때 트레이의 물 속에서 보는 것, 스퀴즈 하고 나서 바로 보는 것, 완전히 건조되고 나서 보이는 콘트라스트 특성은 확연히 다르다. 드라이 다운 현상 때문이다.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이는 스퀴즈 하자 마자 바로 보는 톤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스퀴즈 할 때는 약간 맞지 않더라도 최종적으로 드라이 다운 되었을때의 변형 정도를 미리 예상하여 작업한다. 경우에 따라선 셀레늄 토닝할때 D-Max 변화를 고려하여 작업 하기도 한다.

같은 이유로 프린트 전반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특히 색상과 농도의 기준을 잡기 위한 측정 작업엔 건조라는 요소는 정말 중요하다. 컬러칩 세트를 만들 때도 되도록 표준 온습도 범위인 습도 40~60%, 온도 15~25도 범위 안에 들도록 환경을 만들고 이를 추적 체크 하기 위해 데이터 로그 기능이 내장된 온습도계로 확인한다. 흑백 프린트의 경우 온습도의 차이에 따라 톤이 제법 달라지기도 한다. 종류 따라 다르지만 통상 3일 가량 건조 과정을 추적 계측 해보면, 색상 이동 평균값은 대체로 허용 범위 안으로 수렴한다. 그렇게 3일을 건조 시켰고 이제 측정이 가능해졌다.

분광광도계로 12,198개의 컬러 칩을 꾸역꾸역 계측 했더니 5시간이 사라졌다.
단순 반복 작업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편이지만, 컬러 칩을 읽고 있을 땐 약간 신경질적으로 멍해진다. 이 느낌이 나쁘지 않다. 멍한데 신경질적이고, 신경질적인데 멍한 상태라는 것은 마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물 속에서 마시는 것과 비슷 감각이지 싶다.

컬러 칩을 읽을 때 분광광도계의 위치를 제대로 잡으면서, 동시에 읽는 속도가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안 되고, 중간에 튀어도 안 되니까 생각보다 꽤나 신경 쓰인다. 게다가 분광광도계와 컬러칩 사이의 거리가 조금 달라지기라도 하면 측정값이 살짝 튄다. 물론 이런 휴먼 에러에 대비한 몇 가지 절차적 안전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안전장치는 평소엔 꽤나 잘 작동한다.
하지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절차적 안전장치는, 그 안전장치를 만든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안전장치를 만들고, 예외 처리를 꼼꼼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상상 이상의 일들이 벌어진다. 때론 이런 일들이 창조와 창의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안전장치를 만드는 사람으로선 그저 재앙일 뿐이다. 프로그램 만들어본 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렇게 측정한 2033개의 컬리칩을 3차원 색 공간 좌표에 올려두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모델이 깨지거나 흐트러진 곳은 없는지, 잉크 조합 커브에 튀는 영역은 없는지, 톤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선형적으로 증가하는지, 중성 채널에 잡색이 끼어있진 않은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순서상 제일 먼저 하게 되는 3차원 색 공간에 데이터를 올려서 나온 결과가 이거다.

이 짓거리를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럭저럭 20년은 해왔는데 이렇게 선명하고 깊은 구멍이 난 것을 만든 적은 처음이다. 처음 측정 시 허리가 아파서 중간에 살짝 튀었는데 그게 원인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원인이야 워낙 다양할 수 있다. 컴퓨터 접지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한 누설전류가 케이블을 타고 분광광도계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하필 전압이나 전류 변동이 발생해서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접지를 잘 해두었기에 이게 원인일것 같진 않았다. 혹시나 싶어 누설전류 계측기를 꺼내서 케이블을 직접 측정 해보니 문제 없다. 그 밖에 원인을 생각해보면 컬러 칩을 읽을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기에 찌그러진 곳의 하이라이트 옐로우, 하이라이트 마젠타 구역에서 측정 좌표가 어그러진 곳의 좌표를 보고 측정 데이터의 순서를 찾기 위해 데이터를 눈으로 훑어보는데, 에러 난 곳을 찾기 어렵다.

잠시 눈을 감고, 밖에 나가서 숨을 들이 마시고 담배를 한대 태우고 음료수 한 캔을 마신 다음 의자에 눈 감은 채로 잠시 앉아 있다가 해당 컬러칩 셋트를 처음부터 다시 측정했다. 값이 멀쩡하게 잘 나왔다.

이런 상황이 생기기도 하다 보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멍함과 신경질적인 것이 공존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분광광도계의 시그널 케이블이 혹여나 컬러칩 셋에 쓸려서 반사율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기에 이를 방지하며 어정쩡하게 허리를 굽혀서 하다 보니 허리가 아프다. 멍한데 신경질적이고, 신경질적인데 멍한 이 느낌이 그리 나쁘지 않다.

이것을 총 6회 반복한다.

이렇게 다시 측정한 2033개의 컬러칩을 3차원 색 공간 좌표에 올려두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모델이 깨지거나 흐트러진 곳은 없는지, 프리머리/세컨드리 컬러 좌표 경로가 지나치게 휘는 곳은 없는지, 잉크 조합 커브에 튀는 영역은 없는지, 톤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선형적으로 증가하는지, 중성 컬러 채널에 잡색이 끼어있진 않은지를 면밀히 살펴본다.

데이터 확인이 끝나면, 이를 바탕으로 각기 적용한 6개의 테스트 프린트 만들고 다시 3일을 건조한다. 현장에서 테스트 프린트를 뽑아서 보더라도, 앞서 말한 드라이 다운 현상 때문에 컬러와 농도를 제대로 판독 할 수 없다. 때문에 3일 건조가 끝나면 표준 뷰잉 부스에서 관능평가를 한다.

너무 극단적으로 표현되진 않았는지 혹은 너무 중성적으로 표현되진 않았는지 다시 말해 용지가 품고 있는 어조와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지,
형광 증백제가 들어 있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용지의 경우 조명에서 나오는 UV 광에 반응 정도에 따라 보이는 어색함이 허용 범위 안에 있는지,
만약 형광 증백제 영향으로 어색함이 허용 범위를 초과할 경우 이를 다소 중화할 방법과 도구로 어떤 식의 접근을 할 것인지,
형광 증백제 무첨가의 고급 용지 경우 페이퍼 화이트와 하이라이트 영역 색상 및 밝기 전환 그라데이션과 선형도가 매끄럽게 잘 연결 되는지,
쉐도우 분리력은 용지 특성을 고려하여 스펙 범위만큼 나오는지,
데이터와 실제 프린트 사이의 괴리는 없는지,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방법과 도구로 더 나은 것을 만들 것인지를 고려한다.

이렇게 6개를 평가하여 용도에 따라 2~3가지를 선택한다.
그리고 나면, 오롯히 자신의 작업에 더욱 순도 높은 매진을 할 수 있게 된다.

때론 아주 엷고 투명한듯 하이라이트의 미묘한 어조는 그냥 볼때는 아주 사소해보이지만, 이 하이라이트의 예민한 어조 차이가 작업 전체를 결정 할때가 있다. 깊고 무거운 쉐도우의 중량감, 맑고 폭신거리는 쉐도우의 찰랑거림이 작업 전체의 어조를 결정 할때가 있다. 종종 어조라는 것은 내용에 한없이 가깝다.

위와 같은 기초 작업을 통하고 나면, 최종 프린트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할 필요 없이 결과물을 실시간으로 공방에 모니터를 통해 시뮬레이션 결과값을 확인 할 수 있다. 일부 특수 매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눈에 본대로 나온다. 건조가 덜된 테스트 프린트를 들고 잘못 판단하여 최종 완성작품의 어조가 다르게 나올 일도, 추가 비용도 들지 않으며 더 정확한 예견이 된다.

이것을 각 용지 종류별로, 기준안에 들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지금까지 컬러 작업만 이야기했다. 흑백 작업 이야기는 시작하지도 않았다. 흑백은 이와는 또 다른 식으로 별도 진행 해야 한다.
컬러 보다는 흑백이 난이도가 더 높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색과 농도를, 명확한 형태가 있는 것으로서 손에 쥐어 사용 할 수 있는 물감과 붓 그리고 캔버스를 만들었다.

이렇게 기준을 만든 후, 기준을 잊기 위한 준비를 하나씩 녹여간다.

 

조금 더 잘

그제 한나절 걸려 설치하고, 기계가 온도 습도에 적응해서 수축 팽창이 잦아들도록 하루 정도 안정화시킨 후에, 9,600개의 노즐이 붙어 있는 헤드의 착탄 포커스와 급지 옵셋 등 기초 셋팅을 맞춘 후, 색상별 농도값 측정 위한 작업 준비 중이다.

기초 작동 및 묘화 최적화를 하면서 조금 더 기간을 두고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이전에 비해 작동이 안정적이다. 길게 봐서 통계를 만들어 봐야 알 수 있는 거겠지만 확률적으로 꼭 발생하는 프린트 불량 Loss도 아직까지 없다. 아마도 이전 보다는 나을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쉐도우의 로컬 콘트라스트 분리력 향상에 더해 광색역 프린트가 가능해졌다.

여름이 끝난 가을 초입의 어느날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조우한, 세상에 모든 오렌지색을 졸여낸 듯 처연한 붉음이 가득한 속에서, 나직히 숨 쉬는 창백한 살결의 그 사람이 투명하게 웃던 모습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푸른 겨울, 상처 처럼 돋아난 싱그러운 녹색의 생물이 아스팔트를 깨고 일어나는 모습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깊은 물 속 검푸른 울렁임 위에 한오라기 실 같은 빛이 누워 있는 새벽, 미지근한 체온속 오래도록 스민 단단한 고독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뽀얀 복숭아 빛 같은 그 사람의 볼살에서 나던 향기를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하늘에 박힌 별들도, 검녹색의 바탕에서 빛나는 초록과 분홍의 오로라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오후 2시에 무겁게 내린 회색 비들 속에서 각양각색의 무심히 가라앉은 듯한 색깔의 우산들과 그림자처럼 씌어 있는 사람들과 투명하게 비치는 물빛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두껍고 텁텁한 회색 나무들과 설득에 실패한 현재 같은 보도블럭 위에 하얀 나비가 앉아 있는 모습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그리스의 조그만 항구 마을에 사람들과 함께 자유롭게 살고 있는 하얀 숫컷 고양이의 분방함과 천진난만과 요염함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다 표현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넓힌다는 것은, 그보다 안에 있는 것들은 더욱 정제된 표현에 도움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소중한 작업 원고를 품고, 이 공방에 오는 그리고 올 작가들도, 그리고 나의 작업들도 새로 함께할 이 친구와 함께 만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몽글몽글해진다.

이와 관련해서 현실적으로 남은 문제는 생산성과 품질의 밸런스다. 나의 오래된 나쁜 버릇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6 과 6 그리고 Z

또 하나의 역사가 마무리 되었다. Nikon의 플래그쉽 디지털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 D6가 2025년 5월 13일 공식적으로 단종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새로운 DSLR 플래그 쉽 카메라는 나오지 않았다.

Nikon 최초의 SLR 카메라는 1959년에 발매된 Nikon F였다. 그로부터 40년 후, 최초의 상업 DSLR 카메라인 Nikon D1이 1999년 6월 15일 발매 되었다. 다시 그로부터 26년 후 Nikon의 SLR 형식 카메라는 66년 역사를 거쳐 종결 되었다.

Nikon의 마지막 플래그쉽 필름 카메라인 F6, Nikon의 마지막 플래그쉽 디지털 카메라인 D6. 그리고 Nikon SLR 역사 66년. 셋 다 6으로 끝났다는 게 우연일 수도 있지만 Nikon F5와 8년을 함께 하고, F6도 8년간 함께한 이후, Nikon DSLR과 13년간 함께한 Nikon 팬으로서 이런 사소한 우연에도 괜히 가슴이 뜨거워지는 지점이 있다.

소니의 a, 니콘의 Z.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 혹은 완결이자 완성이라는 포부를 담고 있을 것 같은, F와 D를 이어 Nikon 최초 미러리스 풀 프레임 카메라의 이름인 Z는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8년 여름에 공개 되었다. 이후 기간을 거쳐 202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Nikon 플래그쉽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인 Z9이 발매 되었다. 첫 인상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서적 영향을 주었던 Nikon F5와 얼마간 닮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본능에 가깝게 바로 가슴이 뛰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요구 기준에 부족한 4600만 화소가 안타깝게도 문제였다.

Nikon SLR의 역사가 끝난 오늘, 언젠가 다시 Nikon으로 돌아갈 날이 오길 여전히 내심 기대하고 있다.

자그마한 봄

근처 편의점엘 다닌 지 이럭저럭 3년이 되었다. 그 사이 주인이 한두 번인가 바뀌는 듯했지만, 그것이 주인이 바뀐 것인지 어떤지 사실을 알 길은 없다. 단지 그렇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그 어딘가 길목 즈음인것 같은 편의점 점주는 언제부턴가 내가 카운터 근처에 가면,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항상 내가 피우는 담배를 먼저 집는 짧은 동작과 함께, 짧게 인삿말 같은 안부를 나누게 되었다.

도대체 언제 쉬는지 모르겠지만 낮에 가도, 한밤에도 있었다. 때론 검은 새벽녘 밀어닥친 물건들이 정리되지 못한 체 모진 피로에 밀려 카운터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볼 때가 많았다.
담배 한 갑 사려 굳이 사람을 깨우는 게 맞나, 담배 한 갑 마진이 얼마 안 된다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그냥 다른 편의점엘 갈까, 그래도 매출이 나오니 여기서 사는 게 더 좋을까, 아니 그 이전에 한 겨울 강원도에 쌓인 눈 더께 처럼 쌓인 피로를 조금씩 녹이고 있는 단잠의 가치와 담배의 매출을 애초 비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소심하고 시시한 생각이 들 땐, 나도 피곤한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항상 그랬던 것 아니었지만, 때때론 혹여 깰까 싶어 조용히 그 자리를 나와 에둘러 다른 편의점엘 가곤 했다. 어느 게 더 좋은 건지 나로선 판단이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하는게 간혹 내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라는 이기적 이유일 것이다.

계절이 한 바퀴 도는 동안 새로 머리핀을 한 모습이 잘 어울리신다던가 같은 말도 건넬 정도가 되었다. 새벽 담배 사러 갈 때 잠들어 있는 점주를 조심스럽게 부르니 선잠에서 번뜩 깨어나 담배를 바로 꺼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듣기론 마진도 얼마 안 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깨워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저 오시는 것으로도 감사하다고 화답을 해주기에, 고맙다고 화답하며 괜히 옆에 있던 빵도 하나 더 샀다.

다시 시간이 흐른다. 특별할 일은 없다. 편의점과 나와의 특별할 일이 생긴다면 어떤 형식이 될까 상상해도 쉽게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단조롭고 평화적이며 조용하다. 이 사사로운 짧은 틈새의 고요함 그리고 변화하지 않음에 나는 감사했다.

오늘은 기분이 좋습니다. 라고 인삿말을 건넸다. 뭔 일로 기분이 좋습니까? 라기에 그냥 좀 기분이 좋습니다 라고 대답한 지 1초도 안 되어, 난 기분이 나쁩니다. 라고 화답이 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라고 물으니,

이게 틀린 일인 것 같은데 와 그리됐는지 그래서 영 기분이 벨롭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이게 무슨 말인지 해석이 안되어, 상대방의 눈을 봤는데도 2초 정도 걸린 것 같다. 아아… 이런.. 평소와 다르게 고맙습니다라는 말 없이 조용히 담뱃값을 계산하고 편의점을 나왔고, 내 어깨 뒤에서 늘 들리던 감사하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2025년 4월 4일 14:43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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