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생전 생부와 이런 말을 나눈 적이 있다. 지금껏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당신도 예외 없이 언젠가 죽음이 찾아올 텐데, 그날 풍경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로부터 다시 수년이 흐른 어느 날, 어머니도 생부도 나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이렇게 말을 했다.
향은 하나 피워 올려드릴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벼리고 벼려 겨우 만들어낸 끈에 찌그러진 식물의 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끈은 하나의 풍경 혹은 죄의식 혹은 복수 혹은 용서와 나의 흔적으로 이루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구성이 뭐가 되었던 어쩌면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그 끈이 무슨 재료로 어떤 색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세세하게 따질 만큼의 사치스러운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끈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매듭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살아가기 위한 매듭을 묶어가는 끝은 거의 최종 단계에 이르렀다. 찌그러진 식물의 섬 전시는 중반을 지나 대략 일주일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생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시를 마치고 이후 매듭을 묶기 위한 최종 국면에 계획들도, 문자 그대로 사라졌다. 몇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앉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게 멈췄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인연을 끊은 생부의 혈육들에게 소식은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최소한의 할 만큼은 했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 계속 연락을 취해 봤지만, 연결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혼자서 향을 피웠다.
오늘로 생부가 사망한 지 1년 되었다.
여전히 이날이 되도록 목과 심장에 박혀있는 굵게 녹슨 못은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다. 이미 일어난 일로서 확정된 일이다. 이미 확정이기에 어떻게 노력한다고 해도 그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계속 아플 뿐이다. 계속 아프면 사람은 언젠가 결국 망가진다. 나는 아직 마음속에 끈질기게 남겨진 작업이 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라도, 생각해 봐야 별수 없는 일을 계속 생각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매듭을 만들기 위한 끈을 만들었고, 매듭을 묶기도 전에 끈이 사라졌다. 별수 없다. 이 자체를 받아들이기로 하자. 달리 선택 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겐 없다.
찢겨나가 사방에 튄 육편이 길바닥에 토사물 찌꺼기처럼 되어 버린 페르소나의 잔해물을 손바닥으로 대충 쓸고 주섬주섬 주워 담아 다시 바늘과 실로 잇고 기워갔다. 시간이 꽤나 걸리는 일이다. 묵묵히 계속하다 보니 겨우 손바닥 하나 가릴만한 정도의 프랑켄슈타인처럼 기워진 천 쪼가리 하나가 만들어졌다. 어찌 되었건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그것을 눈앞 둬서 하늘을 가리는 것이 나에겐 필요했다. 하늘을 가린 덕분에 멈춰 있던 일상은 어떻게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돌아간다. 나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예상보다도 꽤나 효과가 좋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요 몇 달 전부터 삐걱거리는 소리가 커지더니 여기저기서 쇠가 비틀릴 때 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생부 사망일이 되기 3주 전, 누더기 같은 페르소나를 쓴 것에 대한 청구서가 내 앞에 착착 쌓여갔다. 나는 지불 능력이 없었다.
81억 명의 세계가 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개인의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세상은 그대로 흘러간다. 세상이 그렇듯 나 또한 어찌 되었든 1/8,100,000,000 정도의 Life goes on 이다. 성질 더러운 놈이랑 영영 헤어질 수도 없으며, 죽을 때까지 같이 있어야 한다면 어찌 되었든 조금씩 어르고 달래가며 함께 가야 할 일이다. 이것이 삶을 너무나 끔찍하게 만들어 고통스럽다면 담백하게 삶을 마감해도 그리 나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침 창문 커튼 사이로 던져진 엷은 빛 조각이 무심히 입구에 드리누워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 내쉬고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딱히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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