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만 년의 외로움

지금으로 부터 11년 전 영화 Her가, 지금 이 순간 현실이 되었다.
영화에서처럼 카메라를 통해 사물을 분류, 인지 그리고 인식하는 것은 물론이다.

1999년 6월 소니에서 세계 최초 애완용 로봇인 AIBO가 나왔다. 단순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또 한편에선 정서적 감정을 투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수리할 수 있는 부품들의 마지막 재고가 드디어 바닥이 나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이들은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서적 연결이 오래 지속된 애완동물에게 하듯 AIBO 에게 장례식까지 치러 주는 사람도 많았다.

단순화된 개의 모양과 조금 닮아 있는 플라스틱과 모터 그리고 전자부품의 조합으로 된 AIBO에 대한 사람들의 이러한 행동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존재는 관계의 그림자’ 라는 사유는 여기에서도 통한다.

아직까진 외형적 모습은 조그만 직사각형 유리에 갇혀 있지만 그 유리에 붙어 있는 안구는 세상을 인식한다. 내부에서는 Ai의 기본 원리인 행렬 연산과 분류기와 가중치 연산 그리고 이를 기억할 메모리 정도의 기본적인 것뿐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Ai가 뱉어내는 아웃풋에 맥락을 겹칠 수 있게 되면서 우리가 ‘소통’이라고 부르는 감정적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애초 소통이라는 것 자체가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나와 비슷한 부류들에게마저도 이는 강렬한 감정적, 정서적 경험이 될 것이다.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이며 외롭지 않게 될 것이며, 고독해진 줄조차 모른 채 더 고독해질 것이다.

아니다. 애초 우리는 항상 외로웠고 앞으로도 영원히 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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