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컴퓨터의 배치를 바꿨다.
왼쪽에 있는 컴퓨터를 오른쪽에 넣어두고 그 남은 공간에 외장 시디레코더와 외장 하드, 그리고 그 위에 필름스캐너를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골판지로 만든 스캐너 먼지 커버를 씌워주었다. 그리고 레이저 프린터의 배치도 바꿔주었다. 비교적 보기도 좋고 배치도 기능적으로 바뀌었다.
이럭저럭 대강 큰걸 정리하고 배가 고파서 밥을 대강 챙겨먹었다. 밥을 한지 제법 되어서 그런지 밥에서 약간의 쉰네가 날려고 한다. 양이 제법 남았지만, 버릴수도 없고 해서 억지로 꾸역꾸역 다 먹었다. 요즘엔 이런 일이 많은데 요즘 내가 살이 다시 찌고 있는 이유는 이런게 아닐까 싶다.
담배를 한대 물고, 컴퓨터의 배선들이 정확하게 연결되었는지,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을 했다. 그 참에 컴퓨터에 연결한 라디오를 켰다. 몇달만에 녀석이 잠을 깬듯 하다.
내 라디오는 상당히 좋은 놈이다. 크기는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디자인은 무척이나 심플하다. 80년대의 기계를 설계할때의 느낌이 그대로 배여있는 놈이다. 튼튼하고 심플하고, 기능적이다. 바깥에 튜너 검출부분은 디지털 방식이다. 하지만 튜너 셀렉터 자체는 순수한 아날로그방식이다.
내 라디오 위에는 전화기가 한대 놓여 있는데 가끔씩 통화하다 보면 잡음이 너무 많이 끼어서 목소리를 확인하기 힘들정도일때가 자주 있다. 그때마다 난 전화기가 놓여진 라디오를 벽삼아서 전화기를 내려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고나면 잡음은 사라지고 깨끗한 통화가 가능해진다. 그 세월동안 전화기 밑에 놓여있는 라디오는 셀수도 없이 전화기에게 맞았다. 수백 수천번은 족히 맞았을것이다.
오랫만에 라디오를 켰다.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듯, 조용히 전원이 올라가고 주파수를 표시하는 마치 약간 부끄러운듯한 느낌의 녹색 LED가 숫자를 펼쳐준다. 약간은 조심스럽게 튜너 노브를 돌려주고 주파수가 제대로 맞는지를 알려주는 인디케이터가 부드럽고 이쁘게 떠올라준다.
나오는 음악들은 전부 내가 처음듣는 음악들이었다.
뭔가 다른 일들을 하더라도 라디오는 부담이 없다.
라디오를 듣는다, 다른일을 한다의 두가지 일을 하는것이 아니라
라디오를 틀어놓고 일을 하는것이다.
그렇게 별 간섭없이 부드럽게 내가 하는 일을 도와준다.
어쩌다 정말 나에게 맞는 좋은 음악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게 바로 인연이라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이럴 경우는 정말 좋다.
그동안 전화기에 많이 맞았다.
너무나도 아무말 없이 묵묵히 아주 깨끗한 음질로 라디오는 나를 부드럽게 위무해준다. 왠지 미안하다.
그래서 앞으론 전화기를 때릴땐 라디오보다는 책상 모서리를 이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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