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문법.

‘xx법’ 이런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작을 함에 있어서, 사진의 문법이라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위대한 사진가들의 사진적 문법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서구식의 테이스트가 물씬 느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비교적 요즘의 일이다.
그렇게 한번 느껴지고 나니, 뭔가 상당히 짜증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예전의 내 사진들이 서구식의 사진적 문법을 차용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주 영향이 없었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많든 적든 영향을 받았을 것임에 분명하다.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다시 동양적인 문법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라던지, 그렇다면 그 ‘동양적’ 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해봄직도 하지만,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직관적인 느낌으로 ‘이러한 것은 아닐것이다’ 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 이유 말고도 또 한가지 짜증나는 것은 이미 기성화 된 – 일정한 form으로써 – 상태로써의 문법을 수용하려고 해도, 어떤 분들이 들으면 역정을 낼지도 모르겠지만,  좀더 세련되고, 그럴듯한 말들 속에 사진은 비명도 없이 말라죽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발상(?)은 사진과 말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니냐? 라고 질문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소위 ‘말’이라는 것 또한 사진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 중의 하나 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컨셉츄얼 아트에 있어서 ‘말’이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물론 난 이러한 것을 부정 하지 않는다. 어떠한 종류의 작품은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고, 오히려 지지하는 쪽이다. 하지만 내가 너무 구시대적인 발상에 젖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진, 그 자체의 순수성을 소중히 생각하는 예술가’라면, 요즘의 트렌드에 대해서 반감을 완전히 가지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만의 문법 – 문법에 있어서 ‘나만의’ 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지만 – 이라는 것은 과연 어떠한 것을 베이스로 성립되었었는지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제법 심각하게 고민을 해 봤지만, 처음부터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산재해 있다. 이러한 작업들을 하다보니 문득 생겨난 의문이 있었다.

누구를 위해서 사진을 찍고 있었나?

나에게 있어서 그 해답은 자명하다.

그래서 ‘나 답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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