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bit

대강 한두달 전쯤부터 사용하던 CDP의 리모콘에 문제가 생겼다.
내가 사용하는 기기는 본체엔 버튼이라곤 아무것도 없고 오직 리모콘으로만 조작이 가능하다. 당연하지만 음량조절도 그렇다.

어느 비오는 날 우산없이 비를 한껏 맞으면서 길거리를 주적주적 걸어가던 때가 있었다. 당연하지만 (?) 음악듣기 최고로 좋은 시간 중에 하나다. 아마 그때 빗물이 리모콘으로 흘러들어갔나보다. 그 다음날부터 음량조절에 문제가 생겼으니까.

고치기가 너무나도 귀찮아서 그냥 놔두었는데, 오늘 리모콘을 조작하다 너무 짜증이나고 무엇보다 짜증을 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끔찍하게 귀찮아진 덕에, 완전분해를 해버렸다.

무감하게 드라이버를 돌려서 모두 들어내고 뜯어내고 속 알맹이가 보였다. 볼륨부위를 들어내고 천천히 무감하지만 조심스러운 느낌으로 정리를 하고 닦아주었다.

테스트 해보니 새것처럼 작동이 잘 된다. 기분탓이겠지만 음질도 예전에 비해서 조금 더 클리어 한 느낌이다.
두껑을 닫고, 무표정하게 드라이버를 돌리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5시간동안 연속으로 듣고 있다는걸 방금 눈치챘다. 이런건 오랫만인듯 한데, 아마 무의식적으로 난 음악을 들으면서 볼륨조절을 많이 했었던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예전엔 음악듣다가 뭔가 귀찮아져서 꺼버렸적이 몇번이고 있었던것 같다.

아주 작고 사소한 수리행위였지만, 난 그 이상의 크고 부드러운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하루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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