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쓰던 일기를 지우고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해보자.

오늘 기분도 그렇고 해서, 아는 동생에게 커피 한잔 사달라고 했다.

입구가 그리 눈에 띄이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못한, 미묘하게 약간 작다 싶은 입구를 가지고 있는 커피점에 갔었다.

평소엔 항상 아메리칸 스타일로 커피를 둘러마셔버리지만, 밖에 나가서 마실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로 에스프레소를 마시곤 한다.
이리저리 커피전문점을 조금씩 돌아다니며 마셔본 결과 적어도 내 취향엔 스타벅스에서 만드는 에스프레소가 가장 좋았다. 고급스럽다던가 그윽하고 깊은 향은 아니지만 어딘가 사람을 진정시켜주고 푸근하고 안심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어쩐지 드라이 한 맛이 느껴진다. 그래서 좋아한다.

당연히 난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주문했다.
여기의 커피맛은 어떠냐! 어디 한번 만들어 보시지. 라는 감각으로 커피를 기다렸다. 몇분후 커피가 오고 한모금 마셨을때, \’흥. 그렇지 뭐\’ 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

이것은 에스프레소가 아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을 농락하고 있거나, 좋게 생각한다 치더라도 에스프레소가 뭔지 모르는 우매한 사람들을 위한 눅눅한 에스프레소 였다. 분명 나쁜 맛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나의 왼쪽눈썹이 올라갔다.

리필이 된단다.
그래서 부탁했다.

\’저기, 조금 진하겐 안될까요?\’

주문 받는 분은 기분 좋게 받아주었다. 어디 한번 만들어보시지. 라는 기분으로 커피를 기다렸다. 역시 몇분 후 에스프레소는 도착했고, 나의 입맛에 정확히 맞는건 아니지만, 에스프레소에 아주 가까운 커피가 나왔다. 난 흡족했다. 기분이 좋았다.

얼마후 주문받는 사람이 (주인장이었다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왠 커피를 한잔 더 내어준다. 점도나 색깔, 향을 봤을때 드립핑 커피다.

좀 강한것을 좋아하신다면, 마음에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면서 마셔보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주위 일행에게 에스프레소와 맛이 강한 커피에 관해 설명을 해준다. 난 그 설명을 듣는둥 마는둥 남아있는 에스프레소를 다 마시고 찬물로 입을 헹군후에 그 드리핑 커피를 한잔 마셨다.

어?!

좋은데?!

드리핑 커피에서 이런 맛이 나온다는 것이 놀라웠다. 세상은 놀랄 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주인장도 은근히 흡족해 하는 눈치다. 마음에 들지 않을리가 없다.라는 얼굴이지만 자만이라던가 하는건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기뻐하는 것을 자신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가지 다양한 취향의 커피를 만들어 내어 줄 수 있다고,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굉장히 기뻤다.

원두콩을 직접 볶아내고, 갈아서 내어준다. 기계로 볶아내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맛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매우 기뻤고 흡족했다.

오늘 좋았던 일은 이것 밖에 없다.

추신 : 왠만하면 앞으로 여긴 나 혼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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