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靑春 F5

대강 8년 전의 일 이다.

사용하던 카메라를 도난 당하고, 새로 살 돈도 없었다.
조금씩 돈을 모아 F90X를 구입하고 싶었다. 당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F4보다도 더 좋은 기능과 성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F4보다는 가격이 저렴했다. 게다가 F4에 비해서 조금은 작고 가볍다. 특히 당시 F90X에 있어서 \’노출은 칼\’ 이라는 짧은 말이 나에겐 깊히 박혔다. 게다가 카메라로써의 카리스마는 F4에 비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단단한 느낌이 드는 F90X에 대한 관심은 매우 깊었다.

어느날엔가 F5의 발매를 알게 되었다.
가지고 있는 돈은 F90X와 50mm f1.4D 렌즈를 구입하는 돈을 겨우 맞추던 때였다. 처음엔 그다지 관심도 없어서, 내가 저런걸 쓸 필요가 있을까 가격은 또 왜저리 눈 튀어나오게 비싼건지.

현실적으로 봤을때 F5는 나완 관계 없는 카메라였다.
당시 카메라 샾의 분위기는 현재에 비해서 오히려 더 좋았던 건 아닌가 라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모 샾에선 History of Nikon이라는 초대형 판넬이 할로겐 조명을 받으며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Nikon F5의 초대형 포스터 판넬이 붙어 있었다. 그 판넬이 붙어있는 위치는 내키의 두배쯤은 높은곳에 붙어 있어서 샾의 문을 여는 순간 보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볼 수 밖에 없는. 하지만 손으로는 만질 수 없는 그런 높이에 붙어있었다. 이쁜 할로겐 조명을 받으며.

그 판넬을 볼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가지고 싶다. 저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다. 말도 안되게 매력적인 느낌이다. 저 카메라로 찍으면 도대체 어떤 사진이 나오는 걸까.

F5라고 이름 불리어지는 \’그것\’은 나에게 있어 그런 존재였다.

이미 F90X를 구입할 돈은 모였지만 우습게도 돈을 손에 꼭 쥐고만 있었다. 정신차리고 보니 F5를 구입 할 수 있는 금액을 겨우겨우 맞출 수 있었다. 그 돈이 마련된 순간 바로 샾에 뛰어가서 덜컥 사버렸다.
우습게도 렌즈 살 돈이 없었다. 바디만 구입해버린 것 이다. 렌즈가 없어도 좋으니까 바디만이라도 사고 싶다.

이건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로써의 카메라 라기 보다는 단순한 열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니콘 종이 가방속엔 유치하리만치 찬란한 금빛 종이 박스 표면,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졸렬 하리만큼 강렬한 금빛으로 로고 내부가 채워진 검은색 라인으로 F5로고의 내부를 채워주고 있었다. 침착하지 못했다. 바로 필름 두껑을 열어 셔터박스에 있는 주의문을 떼어내고 배터리를 채우고 셔터를 눌러보았다.

눈물이 날 만큼 좋았다.

렌즈도 없이 반투명의 우유빛 바디캡만 덩그러니 붙어있는 카메라.

그렇게 하루 하루 지나가고, 드디어 50mm 렌즈를 구입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처음 넣은 필름은 Kodak Plus-X 필름. 왠지 그러고 싶었다. Tri-X, T-Max 필름도 있었지만, 왠지 꼭 그래야만 할것 같았다. 렌즈를 구입하기 위한 기간 동안 렌즈없는 바디를 수도 없이 만지고 눌러보고 메뉴얼은 5번은 넘게 정독했었던듯 싶다. 잘때는 배게 곁에 놔두고 잠을 자기도 했었다.

렌즈를 F 마운트에 끼우고 완벽한 정착을 위해 렌즈를 완전히 돌리는 순간, 바디에선 소리도 되지 못할 정도의 작은 소리로 \’틱\’ 하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이미 심장은 터지기 직전이다. AF-S 모드로 맞추고 AF를 가동해보는 순간, 심장이 터지는 것 따위 아무런 상관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문득 난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F5가 날 주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내가 번 돈으로 내가 구입을 했다. 법적으로는 당연히 내가 주인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아무리 만지작 거려도 감정의 전달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난 우습게도 조그만 상처를 받았다. 어쩌면 내가 너무 과욕을 부린건지도 모르겠다.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사진도 못 찍는 놈이,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할 능력도 없는 놈이, 이런 바디를 사서 상처 받은 것이다.

그래. 친해지자. 그리고 익숙해지자. 그러다 보면 몸에 붙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난 너의 주인이다. 하지만, 속절 없는 성냥개비 같은 마음속 메아리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듯 싶다.
녀석도 나도 서로에게 조금은 익숙해졌다. 녀석은 처음으로 렌즈를 마운트 하던날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서로에게 익숙하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조그만 돌맹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표정도 있고 감정도 있다. 심지어 사람이 만든 카메라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녀석은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아무 말이 없다. 무뚜뚝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무기질. 바로 그 느낌이었다. 아무런 에고도 느낄 수 없는 카메라 라니…         그리고 언제 부터인가 어디를 가든 항상 녀석은 나와 함깨였다.

어느날, 카메라가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히 손에 들고 있는건 맞는데 카메라가 느껴지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고 있어도 셔터를 누르는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있어도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나의 몸.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약간의 돈이 생기면 필름, 약품, 인화지값을 제하고 나서 조금씩 모은 돈으로 악세사리를 붙여주었다. 녀석의 기분(애당초 그런게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악세사리를 붙이는 순간, 그 자체도 무기질로 되어 버렸다.

8년이란 시간동안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 내가 바라본 것, 내가 희망했던 것, 내가 표현하고 싶어 했던 것을 녀석은 아무런 방향성도 감정도 따뜻한 혹은 차가운 말 한마디도 없이 그대로 받아주었다.

난, 사랑을 했었다. 숨쉬는 것의 절밤함을 느꼈다. 증오를 했고 숨쉬는 것에 대한 절박함을 느끼기도 했다. 갈곳 없이 떠돌기도 했고, 분노를 하기도 했다. 방향성과 정체성을 찾지 못한체 나 자신을 괴롭게 만들기도 했다. 애증에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있기도 했으며, 쳐다보기도 싫고 생각하는 것 마저도 싫은 것 들을 찍었다. 고독하고 외로웠다. 칼바람이 에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남포동의 이른 새벽을 묵묵히 계속 걸으며 폐속 깊이 따가운 공기를 들이마시곤 했었다. 조그만 애정 한조각을 동정 받기도 했다. 고통스럽고 괴로운 나날이 계속 되기도 했다. 무관심과 염세주의에 질퍽거리기도 했었다. 때론 어쩌다 따뜻한 온기어린 시선을 가지기도 했다.           내가 \’본 것\’들……을.

녀석은 아무런 여과 없이 필름속에 녹여냈다.

8년 동안 그렇게 녀석과 나는 같이 지냈다. 그 기간 동안 녀석은 딱 두번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난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단지 잠자코 듣고만 있을 뿐이다.

어제 오후, 녀석을 보내기 전에 나의 흔적들을 나의 청춘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녀석의 모습을 찍었다. 세월이 제법 흘러서인지 녀석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노긋노긋 해진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여전히 무기질 이었다. 최후의 최후까지도.

녀석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데엔 조금은 아니 매우 우습게도 – 그리고 눈물이 날 만큼 슬프게도 – F6가 날 도와주었다. 나의 청춘을 그렇게 바라보고 느끼고 찍었다. 하지만 느꼈던 만큼 찍질 못했다. 미처 1롤도 채우지 못한체 촬영을 끝냈다.

그리고 녀석은 마지막 3번째로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하다가 아무말 하지 못하고 – 어쩌면 정말 나에게 간절히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느낌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아무말 하지 않은체 입을 받아버렸다 – 녀석이 처음나와 대면하던 장소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악세사리는 다 떼어내고 원래 있던 필름 백커버를 녀석에게 돌려주었다. 셔터박스에 있는 주의문을 다시 붙이고 – 난 그것을 버리지 않던 것이다 – 원래 있던 배터리하우징 속에 새 건전지를 채웠다. 침착하지 못했다. 손에서 식은땀이 난다.

그렇게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지고 유치하리만치 찬란한 금빛 종이 박스 표면,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졸렬 하리만큼 강렬한 금빛으로 로고 내부가 채워진 검은색 라인으로 F5로고가 찍혀 있는 종이 박스속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남아있던 보루지 박스에 다시 넣고 택배회사 접착테이프 속에 봉인이 되었다.

택배직원이 차가운 겨울밤의 칼바람을 뚫고 박스를 가져갔다.

아마 지금쯤 어딘가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굴 모르는 어떤이의 어께위에 걸쳐질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 광경이 상상되지 않는다. 똑같은 F5지만 같은게 아니기 때문이다. 똑같은 겉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느낌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정말로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일어 날 수 있는 일이고, 내일 점심께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靑春은 끝났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는 처음부터 녀석과 함께한   – 적절한 단어가 모두지 생각나지 않는다 – 구형 50mm 렌즈가 붙어있는 F6가 오도카니 나를 보고 있다.

Prev I don't want to open it, it'll be boring, dumbass.
Next c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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