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요즈음 들어 항상 기분이 저기압이었다.
몇일 전 부터였는지, 몇주 전 부터 였는지 알 도리가 없다.
물론 평소엔 딱히 저기압이라고 할것도 우울해 할것도 없것만, 어쩐 일인지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다 보면 눅눅하게 젖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게다가 그저께 굉장히 중요한 필름을 현상중에 원인 불명의 이유로 360컷을 날린 이후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주 조금 과장을 해서 말하자면 암실을 다 때려 부셔버릴뻔 했다.
오늘 늦은 저녁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고 단촐한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이 가고 M군과 조금은 조용한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커피를 주문하고, 묵묵히 천장을 바라보고 커튼에 드리워진 해바라기 핀을 찍고 테이블의 다리를 찍었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들었다. 어떤 음악이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았지만 무엇인가 익숙하게 조용히 허밍을 했다. 그 허밍이 꼭 울음소리만 같아서 그만두었다. 천천히 아득해지는 기운이 느껴지고 눈을 감고 있음에도 앞에 무엇인가 보여지는 기분이 든다. 많은 것들이 왔다가 사라지고, 들어왔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더 침잠해가고 M군이 말하는 이야기는 소리도 되지 못한체 아무런 자극마저 되질 못했다. 점점 더 빨려들어간다. 소파에 온 몸을 녹여낸체 벽에 머리를 기대고 커피를 조금씩 빨면서 새하얀 찻잔은 입술에 계속 묻어있다.
몇분이나 흘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상태로 줄곧 오랫동안 있었던듯한 느낌이다. 몸속에 눌러 붙어있던 찌꺼기들이 조금씩 녹아가고 있는 느낌이 분명히 들었다.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지면서 나머지 커피를 훌훌 둘러마셨다.
무엇인가 정화된 기분이다. 커피에 취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다. 아-주 오랫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주인장에게 약간은 경박스럽게도 (왠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최대한의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주인장은 오히려 미안스럽다는 눈치다. 오늘 로스팅이 맘에 들지가 않아서 커피 맛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다음엔 정말로 맛있는 커피를 꼭 내어주겠노라고. 지금 계속 공부하고 있는 중인데 언제고 커피에 취하는 느낌의 제대로 된 원두를 볶아서 드리겠노라고, 그렇게 나에게 답례를 했다.
다른 할 말이 없었다.
진심을 담아, 잘 마셨다고 말하고 미묘하게 좁다 싶은 계단을 올라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여전히 기분은 가라앉은 상태지만, 무엇인가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받은 기분이다.
몇일 전엔가 누군가 주인장에게 이렇게 물어본것을 들었던것 같다.
\” 이렇게 해서 가계 운영을 어떻게 합니까? 남는것도 거의 없겠어요. \”
약간 기묘하게 어눌한듯 밝고 담담한 목소리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괜찮아요. 조금만 남기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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