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눈이 와서 말이지……

2005년도에 들어서 부산에 눈온게 3번째? 4번째? 참 자주도 온다.

부시시 일어나서 어기적어기적 무엇인가 하고 있다 반투명 시트지가 발려있는 창문을 문득 보니 왠지 느낌이 이상하다. 눈이 온다. 메신저 에서도 눈이 온다고 누군가 메세지를 보냈다. 싫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반가운 기분이다.

오후 네시 반쯤 즈음 보니 눈이 내리는 하늘은 노랗더라. 왠지 전혀 알수 없지만 순간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위액이 역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을려고 하는데, 메신져에서는 자꾸 메세지가 들어온다. 왠지 꼭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탓인지 조금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오랫만에 CDP를 집어넣곤 이어폰을 귀에 꼽아둔체 거리를 걸으면 2~3롤 저도 사진을 찍었다. 그냥 눈이 찍고 싶어서 바닥에 있는 눈과 하늘에 있는 눈을 찍었다. 렌즈위로 눈이 조금씩 맺히더니 이내 녹아버린다.

너무 너무 추워졌다. 손가락이 얼기 시작했고 나중엔 손가락을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오늘은 왠지 장갑을 끼고 사진을 찍는다던지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카메라에 들려서 몸을 녹여야겠다 싶었다. G형이 한껏 눈맞으며 돌아다닌 몰골을 찍었고 내 카메라를 쥐어주어 다시 한장을 찍었다.

따뜻한 인스탄트 커피 한잔을 마시며 몸과 손을 녹였다. 아.. 이제 좀 살만하다. 사람들 얼굴을 보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했다.

K양이 저녁을 샀다. 거기 식구들 및 민폐쟁이들(나도 포함)과 함께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웃긴건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는 것이다. 기분이 눅눅했다고 하더라도 배가 든든하면 그런 기분이 좀 가시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기묘한 공기감을 느끼게 된다. K양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괜히 쓸떼없이 느껴지는 쑥쓰러운 때문에 그냥 잘 먹었다고만 말을 하고 말았다.

가계문이 열리고 중년 초입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가게에 들어왔다.
뭔가 카메라를 살것같이는 보이지 않는, 그냥 어중이 떠중이 같은 느낌의 손님.

무엇인가 들썩 거리면서 카메라를 물어본다. 보통 일반적인 사람들이 그렇듯 카메라를 보면서 내보이는 묘한 열기 같은건 느끼지지 않는다. 왠지 길거리 걸어다가다 발 닿는데로 온 김에 카메라 구경을 한다는 느낌의 남자다. 눈동자도 무겁고 어두운 빛이 감도는  어딘가 기묘하게 뒤틀려 있는 느낌이다.

5분인가 10분인가 상담을 하더니 조그만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며 메모리며 조그만 가방이며 그러한것을 챙겨가지곤 돈을 지불하고 나갔다. 뭘까. 싶어서 사장님에게 이야기를 해보니 눈이 와서 기분이 우울했다. 그래서 카메라를 샀다. 라는 것이다.

\’새로운 사진 인생이 탄생하는건지도 모르겠군요\’
\’글쎄 그래보이진 않지만.\’
\’그거야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겠죠\’

왠지 난 그 사람의 마음을 공감 할 수 있을듯 하다.

시간이 되어서 바깥을 나섰다.
여전히 눈은 계속 내리고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 로 시작하는 구절이 머리속에서 계속 맴돈다.

Prev 이야. 이거 정말.
Next 2005. 3. 3 목요일 밤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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