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마실을 나갔다.
딱히 큰 일도 없거니와 겸사겸사. 얼굴도 볼 겸. 그렇게 겸사 겸사.

팩토리에서 맛보는 원두커피 냄새가 중단된건 제법 오래전 일이다.
여차 저차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거겠지만. 항상 그렇듯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가지다.

몇개월 전부터 팩토리에서 커피를 마셔야지 마셔야지 했지만, 그냥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 날은 왠일인지. 나갈때 부터 원두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찌되었건 내 자금 사정상 상당히 사치를 부리고 말았다.

저녁에 돌아와서 오랫만에 혼자 오도카니 커피 마실 생각을 하니, 가끔은 이런 사치를 부린 자신을 책망하는게 조금은 누그뜨려졌다. 그런데, 한가지 잊은게 있었다. 드립핑 페이퍼가 한장도 없다.

왠지 김이 팍 세어버렸다.

다음날 느즈막이 나가서 페이퍼를 샀다.
커피 냄새가 제법 좋다. 게다가 원두도 상당히 고급이다.
물맛도 좋지 않고, 천천히 드리핑 하는것도 아닌 메이커에서 뽑아내는거라 제대로 된 커피맛이 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좋은 기분이다. 오랫만이라서 그런지 맛도 괜히 좋게 느껴진다.

약 2년간 고장난체 그대로 방치해둔 전기스탠드가 있다. 디자인은 아주 단순해서 특별히 멋있다던지 하는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70~80년대의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쇠로된 갓전등. 그런 느낌이다.

언제부터인가 고장난 뒤론 고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계속 그렇게 방치해둔체 먼지만 폴폴 쌓여간다. 그렇게 쌓이면 쌓이는데로 손대지 않고 가만히 두었다. 아마 앞으로도 고칠 날은 없을듯 싶은 느낌이다. 솔직히 이 전등은 나에게 있어선 조그만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냥 가만히 놔두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전조도 없이 전자부품상에 들려서 220v 토글 스위치 하나를 구입했다. 그렇게 부품만 구입하고 또 몇일을 보냈다. 어쩐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그 \’스위치\’는 책상위에 가만히 누워만 있다.

오늘 잠시 밖을 나가서 시금털털한 바닷내음을 느끼며 거리에 나섰다. 언제나 그렇듯 카메라를 울러메고. 언제나 그렇듯 귀에는 이어폰이 울린다. 타박 타박 타박…

서점에 들려서 책 두권을 샀다. 와아. 완전 거지다.

테스터기로 저항을 체크하고, 전기줄 역시 끊어진 곳은 없는지 세심하게 체크를 했다. 그리고 전등을 뜯고, 인두기의 열을 미리 올려놓고, 배선을 새로하고 납땜을 깔끔하게 다시 해주었다.

불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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