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내가 원하는 것

아마도 혹은 결코 외로움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하더라도 어디로 가더라도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부메랑 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오고야 마는 것이다.

때문에 외로워 할 필요도, 가슴 아파 해야 할 이유도 없다.
단지 순순히 그것을 이해 하고 받아 들이면 될 일이다. 어떤 의미부여도 시간의 흐름도, 마치 그것은 테이블의 왼쪽 끝에 있던 우유곽이 오른쪽 끝으로 위치가 바뀌어지는 것 뿐 일 것이다. 물건 자체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단지 그 물체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자체 혹은 순수성 만이 무기질 처럼 있을 뿐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실제로 그것이 \’실존\’하고 있는지 아닌지 조차 난 알 수 없다.

때문에 비통해 할 것도, 슬퍼 할 것도 없다. 그저 묵묵히 보는 것이다. 무엇인가 의미를 부여 한다는 것은 그것을 소유함에 다름이 아니다. 무엇에 의미를 부여 함으로써 그것은 자신만의 소유물이 되어버린다. 공통된 기호를 사용 하고 있지만, 실은 껍질만 그럴뿐 각자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정확히 겹쳐 질수도 붙일 수도 없다. 무엇과 무엇이 서로 통한 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단지 우리는 열심히 오해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왜 그 사람은 날 이해하지 못하는거죠? 라고 소란을 떨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혹은 어째서 그 사람은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죠? 라며 분노하거나 가슴 아파 할 수도 있다. 자신만이 알고있는 소유물에 공용의 레테르를 붙임으로 인해서, 언제나 사람들은 마음 아파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해, 소통 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과연 가능 한 것인가.
서로 언어가 다르지만 한자어는 통하는 아시아권 캐릭터가 나오는 시시한 영화조각 한편을 보던 중에 \’이해\’ 라고 어설프게 쓴 한자어를 보며, 난 어째서 심장의 피가 터져버려 역류하는 듯한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 것 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마음을 가다잡으며 희망을 버리려 하지 않고 있다. 무심해 보이는 사소함 속에 \’그 무엇\’ 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저편 넘어 그 어떤 것은 틀림없이 존재 하고 있을 것이라고 난 믿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난 숨쉬는 것 조차도 너무나도 힘들 것이다. 온기를 믿으며 사랑을 믿는다. 이러한 것 마져도 오해라는 것을 난 감지 하고 있지만, 실로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난 믿고 싶다. 이 세상이 생성되고 이루어지고 움직일 수 있는 이치는 사랑일 것이다. 라고 난 믿고 있다.

지독스러울 만치 잔인한 고독과 외로움이 내 살과 피와 뼈를 먹어치운다 할 지라도, 오해의 파편들로 인해서 내가 짖겨 찢어진다 할 지라도, 난 내가 사랑 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한 댓가는 어쩌면 외로움과 고독일 수도 있겠다. 그 댓가를 통해서 난 어쩌면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자유는 또 다시 외로움과 고독을 불러 올 것이다.

어쩌면 삶에 대한 집착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춥고 슬프고 외롭다.
진득하게 술에 취해 토악질 하며 주정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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