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겨울 나무들로 섰다.

우리 삶의 한 부분은 늘 젖어 있어
떠나가는 사람의 등 뒤에 비를 내리게 하고,
젊은 나이에 번지는 낙동강 하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친구들의 이름을
뼈만 남은 겨울 진눈깨비로 돌아오게도 한다.
우리가 미신 같은 바람을 온통 물고
스크럼을 짠 쑥밭이 된 남포동 거리를 뛰어 다니거나.
폐결핵으로 혼자 콜록거릴 때도
목숨 한 호흡은 젖어 떠돌다
공중 금새 사라지는 빛깔 속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어두운 자취방 낡은 벽지에 곰팡이로 번지기도 하다가

삶은 깊어서
들판 가득 태우는 매운 연기속에 황홀하게 증발하고 남은
겨울 나무들로 섰다.

– 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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