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언덕을 내려와 걸어가던 길 옆에 조그만 슈퍼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 다큰 잡종 고양이 한마리가 서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왼쪽어깨엔 낡아빠진 카메라 가방을 오른쪽 어깨엔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고양이를 찍고 싶었다. 다섯 발치 정도 거리에서 자세를 낮췄다. 어떤 고양이 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 다가가도 도망가거나 하지 않는다.
좀더 자세를 낮추어 바닥에 주저앉듯 더 자세를 낮추고 붙어 있던 105mm Micro 렌즈의 화각에 알맞도록 프레이밍을 했다.
신속하게 노출을 맞추는 것과 동시에 초점을 정확하게 잡는다. 고양이의 흰색털은
존6 1/2정도로 노란털은 존 4 1/2정도 떨어졌다. 아스팔트의 그림자는 존 3 1/2 정도로 되었다. 필시 아름다운 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모든게 순간 결정남과 동시에 한번의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그 뒤엔 필름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필름을 더 이상 감아내지 않았다. 필름 카운터에선 End가 뜨고 있다. 그 순간 지체할 것 없이 손이 자동적으로 카메라 가방에 있던 필름을 꺼내려 한다.
그때 고양이는 나에게 다가온다. 발소리도 내지 않은체 조용히. 살짝 경계를 하지만 녀석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녀석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 순간 이런 아무 의미도 없는 다가옴이 나의 손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녀석에게 나의 손을 맡겼다. 목을 손에 부비고 얼굴을 손에 부빈다. 그러자 녀석은 바닥에 아에 주저앉아버렸다. 난 녀석의 목을 머리를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조그만 울음소리 조차 내지 않는다.
기분이 좋은것인지 아닌 것인지 알 수 없다. 녀석은 아무 소리 없이 그렇게 아스팔트 위에 누워있다. 녀석이 기분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표정밖에 없다. 하지만 고양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얼굴표정으론 알 수 없는 생물이다. 가까이서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양쪽 눈에는 서로 크기가 다른 눈꼽이 끼어있었다. 때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진 않았다.
2분의 시간 동안 필름을 꺼낼지 그냥 계속 이렇게 있을지를 생각했었다. 이것을 찍고 싶었지만 그러면 흐름이 깨질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대로 흐름을 느끼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무말 없이 고양이와 나와 말 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난 필름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내 귀에 걸쳐진 헤드폰에서는 계속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어떤 음악이었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떤 외국인이 지나가면서 같이 앉아 고양이를 만졌다. 난 말 없이 그 사람에게 간단한 목례를 하고 그 사람도 나에게 목례를 했다.
20초 정도 그렇게 있다가 그 외국인은 잘 들리지 않는 말로 뭐라고 말하더니
일어서서 다시 자신의 갈길을 가려 한다.
그때 헤드폰을 벗었다. 고양이는 그 사람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난 가진게 없어. 아무것도 없다니까\’ 라고 말을 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길을 재촉한다.
40초 정도 그 광경을 멍하게 보고 있다가, 그제서야 정신 차린듯 카메라에 있던 필름을 천천히 빼고 새 필름을 천천히 넣어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사라진 길목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당연히 그 외국인도 고양이도 없다.
그 자리엔 조그만 꼬마 4명이 무엇인가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줄넘기를 하고 있었던가,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있었던가 혹은 그냥 축구공만 팅팅 퉁기던 것이었던가.
어쩐지 입안이 건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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