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카메라로 촬영한 것을 프린트 할 일이 있어 확대기에 필름을 걸었다. 예전에 아주 급히 프린트 한다고, 포커스가 나간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식의 일 처리는 정말 마음에 안들지만 시간의 제약이 원망스러웠다.
덩치가 정말 큰 대형 확대기를 싸메고 4시간 넘게 끙끙거렸다. 덕분에 나사 하나하나의 위치와 그리고 왜 그곳에 그 나사들이 있어야만 하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확대기 라는 것은 본디 원리 자체가 대단히 심플하기 때문에 딱히 복잡할 것도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예를 들어 카메라의 기본 원리가 간단하다고 해서 모든 카메라가 간단하지 않은것과 마찬가지다. 특히나 대형 확대기는 그 크기와 무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의 스테빌리티가 대단히 중요하다. 때문에 그에 따른 부가장치들이 설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35mm나 120포맷용 확대기의 경우 베셀러 급은 확실히 섹션이 구분되어 있어서 이것은 콘덴서 렌즈의 집광을, 저것은 렌즈부의 포커스 틸트 조정을. 이라는 식으로 구성 되어 있어서 한눈에 보더라도 직관적으로 파악이 가능하지만, 오메가의 D시리즈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결국 최종에는 헤드 모듈을 뜯어내고 샤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면밀히 검사하며 나사들을 하나 하나 풀어가며 각 기능과 역활을 직접 익힐 수 밖에 없었다. 메뉴얼 따위 없었기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게 된다.
게다가 제대로 된 공구도 거의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건 롱로즈 플라이어, 일자 드라이버, 포켓 형광등 밖에 없었다. 이전에 사용했던 십자 드라이버는 날이 무디어 제대로 쓸 수 없었고, 너트를 조이고 풀기 위한 렌치도 사이즈가 맞는게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확대기의 조정이 다 끝날때 즈음엔 손가락 끝이 너덜너덜 해졌다.
결국 수시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전 이미지 영역에 있어서 고른 포커스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결과가 어쨌던 좋았으니 괜찮다 라는 생각이 안드는건 아니지만, 역시나 만반의 사전 준비를 한 후에 필요한 공구들을 주루룩 늘어놓고 차근 차근 해나아가는 일련의 흐름을 만끽하는 즐거움에 비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너덜너덜 해진 손가락은 그렇다 치더라도 반복되는 짜증은 위장에도 좋지 않다.
이제 남은건 다이크로익 필터부의 가동을 정상화 시키는 것과 확대기 렌즈를 제대로 된 것으로 구하는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렌즈는 조리개의 유악현상이 엄청나고 렌즈부 또한 육안으로 봐도 뿌옇게 보일 정도로 상처가 많다. 조리개를 조인다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실컷 대형 카메라로 고생스럽게 촬영해놓고 막상 프린트가 샤프하지 못하면 이게 무슨 고생인가.
어쨌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한번쯤 생각해보자 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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