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지 몇년 후의 일 이였는지 쉬이 기억나진 않는 일이다.
아마 다섯살 혹은 일곱살. 그 즈음 이였는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 안에 내용물이 뭔지는 상관 없이
단지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좋았고 단지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좋았다.
한편으론 조숙했던 것이였는지 아니면, 소위 유년 시절의 설익은 꿈이 이미 깨진 탓이였는지 산타의 존재는 이미 내 가슴속에서 사라진 그 때 즈음이였다. 그런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건지 어떤진 모르겠지만, 산타로 위장하지 못한 아버지 혹은 어머니께서 나에게 직접 선물을 주셨던 것이다. 리본까지 묶여있던 상자였던 걸로 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리본은 요즘 처럼 리본모양으로 미리 만들어진 것을 양면테잎 따위로 붙인게 아니라 끈을 이용해 제대로 묶은 리본이였다. 어째서 이런 쓰잘때기 없는 것까지 좁살영감 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지..
상자를 열고나니 파란색의 커다란 박스가 보였고 영어가 커다랗게 몇줄 인쇄되어 있었다. 읽을 수 있을리가 없다. 분명한 것은 박스에 인쇄된 노오란 색의 워키토키가 들어 있다는 것 이였다. 박스를 열고 내용물을 집어들었다. 사각형 모양의 12볼트 전지가 하나가 들어가는 타잎의 것이다. 은색의 빛나는 안테나를 길게 길게 주욱 뽑고 그 자리에서 시험해봤다. 어쩐지 시큰둥해졌다.
시험 상대는 아버지였는데 내가 시큰둥 해진것을 눈치 챘는지 저기 방 끝으로 가서 해보자고 재촉했고 난 군말 없이 그렇게 했다. 그런데 어쩐지 조금 재미 있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달랐다. 갑자기 신이 나서 계단을 내려가 집 밖에서 해보았다. 된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 거린다. 특히 말이 끝나고 나서 붙여주는 \’오바\’ 라는 말은 어디서 줏어들었는지 빼먹지 않고 꼬박 꼬박 잘도 붙인다.
왜 그렇게 두근 거리고 신이 났던 것일까.
멀리 떨어져서도 중간에 아무런 연결 없이 목소리가 전해진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졌던 것인지 아니면 그때 즈음 이미 외로움이 남기고 간 자국 냄새를 맡아버렸던 것인지. 어쩌면, 어렸을적 가정불화로 인해 몇가지 일들이 있었고 누군가 항상 옆에 있다는 안도감 같은것을 이미 기대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느꼈던 것일지.
누군가 눈앞에 보이지 않고도 연결 되어 있다는 느낌은 어린 나에겐 불가사의에 가까운 놀라운 일 이였다. 물론 전화가 있긴 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와 닿는다. 그래서 그토록 \’오바\’ 라는 말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붙였던 것일까.
가슴에 어떠한 것들이 파도가 되고 물살이 되어 가슴에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 들었다.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중에도 뭔가를 이야기 하고 계단을 오르는 중에도 뭔가를 이야기 하고 끝에 항상 \’오바\’를 붙였다.
하지만 워키토키 놀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친구들과의 워키토키 놀이도 몇번했지만 어쩐지 그때의 감흥과는 다른 거리감이 느껴졌다. 분명 신나야 할텐데, 분명 가슴 두근거려야 할텐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느낌은 점점 엷어지기 시작했고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아무런 감흥이 없어졌다. 얼마 뒤 워키토키는 장난감 따위가 모여있는 소쿠리에 쳐박히게 되었고 다시 몇개월이 흘러 어느날 부셔졌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발에 밟혀서 부서지게 되었던 걸로 난 기억한다.
부셔 졌다고 한들 별 감흥은 없어 부서진 잔해를 치우고 튀어온 12볼트의 사각형 건전지 역시 버렸다. 그 이후로 얼마간 시간이 흘러서 집에 최초로 무선전화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많은 시간이 흘러 내 개인 핸드폰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이야기를 한 뒤에 \’오바\’라는 말은 붙이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붙일 수 있을리 따위 없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흥은 어렸을 적 워키토키로 처음 느꼈고 아마도 몇몇 소소한 것을 제외하면 그토록 강렬한 느낌은 그때가 마지막이 아니였을까 라고 생각한다.
\’오바\’ 라고 말하는 것이 난 참 좋았다. 이상 이라는 뜻이지만, 끝났다 라는 느낌도 있다. 자, 내 할말이 끝났으니 너도 말해봐. 라는 느낌은 상대편이 나에게 무엇인가 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살아가면서 끝나게 되는 경우는 참 많다. 무엇을 시작하는 것이 많은 만큼 끝내야 하는 것도 많은 것이다. 무엇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 종국엔 \’끝\’으로 완결되거나 완성되기 나름이다. 변화되고 변화하는 것은 있을지언정 끝나지 않는 것은 전쟁과 매춘 외엔 거의 없을 것만 같다. 그래 사랑도 시대를 관통하며 사라지지 않고 계속 지속 되겠지.
시간이 훌쩍 흘러 삼십대가 되어버린 지금
갑자기, 뜬금없이 부셔져버린 노오란 워키토키가 생생히 생각 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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