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의 상태가 좋지 못해 병원엘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2~3주치 정도 받아왔다. 다 먹었지만 썩 좋아질 기미는 없다. 의사가 말한데로 결국 내시경을 받아야 할 듯 하다.

아르바이트 삼아 일요일에 일을 하러 갔다. 오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일이 끝난 밤 10시 까지도 비는 쉴세 없이 계속 내렸다. 비옷을 입는다던가 하는 호강은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그냥 계속 일 했다. 끝나고 뒷정리를 하며 짐을 옮기다가 모레인지 유리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내 왼쪽 눈에 들어갔다. 침착하게 눈을 잠시 감고, 눈물이 흐르는 것을 놔두었다. 단순히 눈에 들어간 것 뿐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였다. 평소 같으면 이내 사라질 통증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점점 고통이 심해지면서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기 시작한다. 흐르는 물에 씻고 물을 담아서 그 속에서 깜박거려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때야 알아차렸다. 동공쪽에 박혀버렸다. 어쨌든 일을 하고 있는 중이였기 때문에 한쪽 눈을 감고 일을 하는데 깊이감이 사라진 상태라 그런지 몇번인가 작은 실수를 했고 한번은 사고가 날뻔 했다.

겨우 겨우 일을 마치고 작업실로 돌아와 모조리 다 젖어버린 옷을 벗어 던지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러고 보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전에 누군가 그랬다. 자신에게 있어서 최소한의 사치라고 한다면 뜨거운 물로 목욕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재차 그 말의 감촉을 느꼈다.

왼쪽 눈엔 계속 짠물이 흐르고 흰자위는 이미 붉은색으로 가득차서 더 이상 흰자위로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늦은 밤이였으므로 안과에서 치료를 받는다던가 할 수 없다.
자고나면 괜찮겠지 싶어서 잠에 들었다. 아주 늦게 일어났는데 몸에 몸살기운이 돌았다. 할 일도 있었는데 모조리 엉망이 되었다. 병원 문 닫을 시간 40분을 남겨두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빠른 걸음으로 한쪽 눈을 감고 거리로 나섰다.

눈을 다친날 부터 병원을 가는 그날까지 입체감각을 상실해버린 상황에서 왼쪽 눈을 계속 감은체 거리를 걷고 움직인다는 것은 몸의 반을 세로로 잘라 남은쪽 몸뚱아리의 밀도가 낮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박힌것을 빼내고 세균에 감염이 되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늦장을 부리고 오지 않았다면 실명이 될 수 도 있었음을 이야기 했다. 그러고 보면 요 몇주 전에도 왼쪽 눈이 자꾸만 뻑뻑하고 아리고 아파서 안과에 갔었다. 안압 검사와 조정을 하고 몇가지 약을 넣고 역시나 꾸준히 약을 먹고 나니 괜찮아 졌었다.

생각해보면 어째서 매번 왼쪽 눈 인 것일까..

예전에 어딘가에서 들은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사진을 찍을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기 위한 것이라고. 좀 유치하고 졸렬한 이야기 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최소한 사진을 만들어 갈때에 대한 하나의 마음 가짐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하기에 그냥 쉬이 흘려 들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난 사진 찍을때 대체로 양눈을 다 뜨고 찍는 편이고 가끔 몇가지의 이유로 왼쪽 눈을 감고 찍는 경우가 있다. 유독 나의 왼쪽 눈만 이런 저런 이유로 감기게 되는 것을 보면, 그 무엇인가가 나에게 좀더 마음에 눈으로 보라고 채근하기 위함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나선 피식 웃었다.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작업실에 돌아와 아무말 하지 않은체 시들어 있는 꽃을 잠자코 가만히 보고 있다가 대형 카메라를 꺼내서 찍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비어 있었으며 강인했고 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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