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오고 문득 자신의 관한 일이 생각났다. 시간들 속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흘러갔고 어딘가 기억의 변방같은 곳에서 쌓여있다가 점토처럼 녹아서 사라지는 일들.
문득,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할때 몸도 마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지게 된다. 담배를 태우고 더블 스트레이트로 바카디 3잔을 연거푸 마시면서 담배를 다 태워 없앴다. 주둥아리 근처는 미지근한 얼음으로 계속 문질렀을때 느껴지는 느릿느릿하고 지릿한 마비의 이글거림, 몸과 마음은 이미 손을 놓아버린 듯한 이탈감 따위들이 내 몸을 감싸돈다. 그것은 따뜻함도 차가움도 아닌 그저, 단지 그럴 뿐인 사사로운 것이다.
담배를 끊겠다던 수십번의 시도도 수포로 돌아가고 마지막 남은 한개비를 주둥아리에 물고 멍하니 있었다. 나의 발과 하늘이 흔들거리도록 만든 술. 남은 한방울 까지 혀로 빨아 마시고 그 사이, 다 태워버리고 남은 빈 종이 담배각이 남았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어디서 부턴가 사라진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그것대로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의 세계와 그 세계속에선 이미 사라져 없었음에 마치 존재하지 않은듯 되어버렸다. 세삼스러울 것도 없다. 당연한 것이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다 예전 나의 기억과 그리고 나와 어떤 사람이 연결된 음악을 들었다. 이런 음악들은 언제나 그렇듯 필요 이상의 침묵을 만들어낸다. 불쾌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쩐지 매정하게 음악을 끊어버릴 순 없다. 괄태충이 지나간 자리에 미끌거리며 끈끈한 점액이 남듯 마치 언제까지고 계속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나를 괴롭힐 수 있다는 듯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음악을 틀어놓은체 바깥엘 나갔다. 조그만 컴팩트 카메라를 어께에 걸고 호주머니에 담배값이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새벽도 아침도 아닌 시간을 걸었다. 걸어가는 동안 3장의 사진을 찍고 더듬거리듯 걸어 24시간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는데 우습게도 배가 고프다.
이건 정말 우스운 일이다.
처음보는 삼각김밥이 있길레 그걸로 결정했다. 전자렌지에 30초간 데우고 촛점 없는 손길로 비닐을 벗겨내고 입에 넣어 씹으며 편의점의 문을 밀쳐내고 다시 거리로 돌아왔다.
맛이 없다.
작업실로 돌아와 문득 봤다. 탁자위에 놓은 카메라를 다시 손에 쥐고 머뭇거렸다. 찍고 싶지 않다. 찍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이런 것은 찍고 싶지 않다. 하지만 조용히 초점을 맞추고 석장을 찍었다.
사람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온기가 부드럽게 덮었던 마음의 천도 녹아내리고 계획을 세우고 사기를 당하고 계획은 엉망이 되고, 믿음을 자기 편할대로 만들어버린 사람도 아무런 응답없이 사라졌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내가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것에 대해서 무력감을 느낄때, 그래서 새벽에 독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무거운 둔통을 느낄때 우습게도 난 배가 고팠고 끈기없는 진흙덩이 같은 삼각김밥을 씹으며 다시 돌아와 담배를 피워 재끼는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음악을 다른 것으로 바꾸었고, 광목천 사이로 창백한 햇볕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삼십대고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고 시간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 질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공중에 흩어져 재 처럼 쌓이고 그 동안 내가 행하고 저지른 죄값을 받게 될것이다.
이제 음악을 끄고 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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