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끝난 후 갤러리 오피스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에 비추어진 통계 수치 중, 일일 평균 관람객 수 200여 명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매일 200여 명이 내 작업을 보고 나서 어떤 기분으로 갤러리 문을 나섰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갤러리에 있는 동안 많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어설픈 일본어로도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한 갤러리 관련에 업무를 하고 있는 분과의 식사와 술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던 나의 작업 그리고 일본과 그 외의 나라에 대한 전개와 현실에 관한 것을 나눈 것 또한 의미가 있었다. 또한 당신의 작업이 마음에 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이름, 주소, 이메일 혹은 감상이 쓰여진 방명 카드가 내 생각 이상으로 많아서 놀랬다.
그리고 나의 작업을 갤러리에서 직접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과 적지 않은 여비까지 써서 한국에서 일본까지 와주신 분들에겐 격려 이상의 큰 힘을 받았다.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재차 전하고 싶다. 또한 직접 방문해 주신 분 중에 아주 오래전 부터 나의 작업을 봐주시고 힘을 얻었으며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해주셨던 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그간 내가 무엇을 만들고 있었는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또한 작품을 구입 해주신 분들에게 재차 감사의 마음 올린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수많은 생각 들이 있었으며 수많은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다음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또한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현실에 대한 인식의 결을 조금 더 넓힌 경험이기도 했다. 전시를 하게 되어 기뻤고 또한 마음이 가벼워졌으며, 전시가 끝난 지금에는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현실적 상황 인식에 따른 행동 결정과 그에 따른 필요한 댓가의 무거움이 더 커지기도 했다.
내가 일본에서 개인전을 함으로 인해 주위의 수 많은 분에게 민폐 끼친 것과 그리고 그 민폐를,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들의 마음, 나를 도와주고 있는 분들의 마음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인간으로서 지난한 삶이나 현실과는 별개로 나는 제법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실감을 느끼기도 했다.
전시가 결정된 수개월 전, 나의 가슴속에는 이미 끝난 전시였다. 하지만 실제 전시를 하여 몸으로 느껴지는 것은 가슴의 그것과는 다르다. 많은 것들이 정리되어 가벼워졌으며, 이번 전시로 얻은 것들에 의해 더 무거워진 것도 있다. 다음 걸음 앞에 펼쳐진 현실은 나에게 현실적 행동을 종용한다. 나는 그것이 그리 틀린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작업을 한다는 것, 그것을 펼쳐나간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다만 그것을 구체화할 큰 그림은 그려졌지만 그것을 구체화 현실화하는 지평의 풍광은 칠흑같이 캄캄하다. 하지만 멈추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칠흑에 녹아버릴 것이다.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삶의 결말 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 어떤 누구에게도 공평한 것 중 하나는 끝이 온다는 것이다.
의식적이였던 무의식적이였던 한 패로서 당신이 어쩌면 나에게 종용 한 것인지도 모른다. 새삼스럽지만, 걸을 수 있을 때 까지 힘을 내어 더 걸어보려 한다. 그것이 이번 전시를 통해 얻은 것 중 가장 큰 것일지도 모른다. 그 뒤에 끝을 생각해도 틀린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 생각하려 한다.
전시장에 와주신 분과 작품을 구입 해주신 분과 저의 작업을 꾸준히 보아주신 분들에게 깊이 고개 숙여 감사한 마음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어떤 노래의 가사가 생각난다.
\’아지랑이에 몸을 빌려 길을 가리키는 처녀를 쫓아
높은 곳에 나타난 이름모를 광야는 그립게도 그립게도,
그것이 꿈속에서 보였던 거리라고 그림자가 속삭였다
다가올 날도 그리 다가올 날도 몇천의 분기를 넘을때
어두운 곳의 현인이 버려진 날들을 모아서
바닷가에 바닷가에 이름 모를 불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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