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가정 불화, 폭력, 이혼 그리고 양육권 문제와 금전적인 이유로 부모 없는 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아주 어릴때 부터 여름을 무척 좋아했다.
맑고 한 점 얼룩 없는 하늘과 땅의 투명한 열기에 세계 전체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야트막한 뒷산을 외삼촌의 크고 굵은 손을 잡고 걸으며 봤던 풍경은, 이름 모를 수많은 억센 풀들과 커다란 나무 밑의 그늘과 끝이 보이지 않는것 같은 호수에서의 낚시와 태어나 처음으로 잡은 물고기가 있었다. 밖에서 한참 놀다가 집에 돌아오자 마자 옷을 집어 던지며 지붕 그늘에 시원하게 식혀진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툇마루에 팬티만 입은체 뒹굴거리며 몸을 식히다가 누워있던 몸의 모양따라 땀으로 그림이 그려진 툇마루를 보면서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보면 때론 수박화채라던가 설탕과 소금이 약간 그리고 얼음을 넣은 토마토 같은 것을 먹고나서 파란색의 고무호스가 물려 있는 수도 꼭지를 틀어서 몸 전체가 충분히 들어가는 큰 고무 다라이에 물을 채워서 놀다가 그것도 질리면 밖에 나가선 친구를 불러선 오늘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 까지 가보자며 저 멀리 보이던 산을 가리키고 걷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한참 만에 겨우 동네 입구에 다시 돌아왔을 즈음에 저녁 놀이 보여주면 하늘의 색이라던가, 간혹 비라도 많이 오면 뒤에서 들리는 잔소리를 뒷등으로 흘리고 밖으로 뛰어나가 부드럽고 따뜻한 비의 온기를 느끼면서 몇시간이고 참방거리면서 고인 물웅덩이 속에 나무가지를 찔러 넣으면서 뭔가 튀어나오길 기대한다던가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는 것을 멍하게 보고 있다던가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 아래로 가서 나뭇잎에서 들리는 빗소리를 듣는다던가 마침 주머니에 동전이 있는게 기억나서 젖은 그대로 근처 코딱지만한 크기의 오락실 문을 열었을때의 항상 사람들이 있어야 할 그곳에 횡하니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젖은 공기와 눅눅하게 퍼지는 너구리 게임의 단색 음악이 나에게 줬던, 당시로서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던 기묘한 감정이라던가, 태풍이라도 온다치면 다들 긴장감이 가득한 몸동작으로 뭔가를 준비하고 대비하던 분주함이라던가, 태풍 올때 밖에 나가고 싶은데 못나가게 해서 엄청 울며 때를 쓰다가 외삼촌이 함께 나가줘서 겨우 밖에 나갔을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꼈던 종류의 공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쁨이라던가.
언제 부터인가 여름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기분이 들면 내 마음엔 슬금슬금 안심감이 들어온다. 딱히 돈이 없어도 무엇을 꼭 해야하지 않더라도 땀이 몸을 끈적끈적하게 해도 밤의 열대아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단지 여름이기 때문에 좋았다. 눈을 뜨면 몸이 땀으로 끈적거렸지만 선풍기에서 들리는 바람과 소리가 좋았고 귀찮지만 않으면 물 한바가지 몸에 뿌리면 그걸로 충분했다.
온 세계의 풀이 비명 지르듯 악을 쓰며 자라는 자리의 색은 검은색 같은 녹색이 가득차있고 아랑곳 하지 않는 해바라기가 있으며 교미를 위해 비명을 지르는 매미, 차비 몇 천원으로 충분한 바닷가의 수영, 시원한 맥주, 나른하게 있어도 아무런 문제 없을것 같은 여름 밤의 푹신함, 기묘한 느낌을 주는 다대포, 강가의 시원한 바람, 태풍.
오늘 침대에서 눈을 뜨자 여름이 끝난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우울했다. 쓸쓸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커피와 담배를 손에 들고 물끄러미. 바닥에 누운 햇빛을 오랫동안 봤다.
사랑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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