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주 개인전 ‘찌그러진 식물의 섬’ 전시가 끝났습니다.

이 세상 수많은 ‘상투적’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봐주셨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관객이 울음을 삼키거나 숨을 삼키는 소리가 갤러리의 여기저기서 들리기도 했습니다. 또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상투적 가정에 관한 경험은 그야말로 우리네의 상투적 경험이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갤러리 토크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이 작업에 있어서 작가 개인의 생각과 희망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이 작업을 보면서 별 다른 감정 없이 유유히 갤러리를 나가는 관객이 제일 좋다는 생각입니다. 저마다 자신만의 지옥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곤 하나, 그 와중에도 적어도 이번 작업이 와 닿을 일이나 필요 없는 삶이 주어지고 이어 나가는 분들인 것이지요. 다행인 일이 좋은 일 입니다. 이러한 분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이번 작업을 보면서 누군가가 떠오르는 경우입니다. 그 대상은 친구, 연인, 부모 혹은 관객 자신인 경우도 있겠습니다. 떠오르는 것이 자신의 경우, 어느새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의 자신이, 작업이 마주하여 그 안에서 벌어지는 기억의 호출과 내적 감정 그리고 환기되는 고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관객 중엔 작업을 다 본 이후, 마음이 눈물의 무게를 견디기 버거워 그대로 갤러리를 나가는 분도 있었고, 어떤 관객은 그대로 나간줄 줄 알았는데 갤러리 바로 몇 발치에 있는 바다를 보며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있다가 다시 갤러리에 와서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는 분도 있었습니다. 다시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을 터인데, 차오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아도 느린 걸음으로,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을 보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때론 특정 사진 앞에서 오래도록 서서 보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도록 서서 보는 장면은 저 마다 다 달랐습니다. 어떤이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가운데에서도, 기묘하게도 위안과 위로를 받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당연하지만 저 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특정 영역에 길게 수렴하는 것을 목도 했습니다. 때론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하며, 어머니를 남겨두고 도망쳤던 친구에게 질타했었는데 이제서야 그 친구의 마음이 어땠었을지 이해가 된다며 그 친구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은 분도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해준 분들이 서로 전부 다른 사람임에도, 내용을 텍스트로 바꾸고 말하는 사람을 지운 것을 본다면 누가 이야기를 했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또한 ‘상투적’ 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대로 도망치듯 갤러리를 나간 분도, 밖에 잠시 앉았다가 다시 갤러리에 와서 재차 마주하는 분도, 고통 속에서도 기묘한 위안과 위로를 받았다는 분들도. 친구의 고통을 이제야 알 것 같다는 분들도. 그것은 아마도 관객이라는 개념을 넘어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서 작업을 보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찌그러진 식물의 섬’ 을 갤러리에서든 책으로든 접했던 분들이 떠오르는 이가 있어서 이것을 보여 주고 싶다고 생각 했을 때, 바로 건네는 것 보다는 이 작업을 받을 분을 생각하며, 이것을 보이는 게 좋을까? 어떤 말로 전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고 전시든 책이든 전하는 것까지가 저의 이번 작업의 범위라고 생각 했습니다.
비록 전하는 행동이라는 그 자체는 결과적으로 같더라도 잠시나마 생각하고 전하는 것과, 바로 건네는 것의 차이엔 의미가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업의 출판과 전시가 결정되었을 때부터 품었던 희망이 있었습니다. 전시가 끝나고 난 뒤, 책을 들고 병원에 가서 치매에 걸려 자신의 죄에 따른 형별에서 자유로워진 생부를 만나는 일 이였습니다. 저로서는 어떤 감정이 들지 예상 할 수가 없었기에 몇 가지 상황에 대한 것만 생각 할 수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처음엔 먼 발치에서 생부를 보다가 책을 그대로 가방에 넣은 채로 돌아온다던가, 혹은 뭔가가 느껴져 중간 즘 거리에서 보다가 역시 그대로 돌아온다던가, 아니면 좀 더 가까이 가서 눈동자를 본다던가 라는 그런 것 말입니다. 치매 환자를 경험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과거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미래가 사라지기에 현재와 과거는 더욱 가속하여 망실이 됩니다. 하지만 뇌의 가장 깊숙한 속에 자리 잡아 그 사람을 구성하는 핵심 기억의 파편들이 명확하게 노출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생부를 이해하는 것까진 힘들더라도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생부를 알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핵심 기억의 파편들을 수집하고 관찰하고 조합하여 이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것에 따라 저는 화를 내거나 분노하거나 저주하거나 혹은 넓은 의미에서의 자비이거나 또는 용서 같은걸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몇 가지 상황에 따라 책의 특정 페이지를 보여주려는 준비도 했습니다.

그렇게 매듭을 지어야 하는 일이였습니다. 매듭을 묶는데 쓰이는 끈의 소재는 따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애초 내가 특정 소재의 끈을 원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닐 뿐더러, 길게 생각해 보면 이것은 결국 주어지는 것이기에 매듭을 묶는 끈의 소재가 화가 되었던 분노가 되었던 저주가 되었던 자비가 되었던 용서가 되었던 따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장장 40여 년에 걸친 일련의 궤적과 4년에 걸친 발버둥 끝에, 그저 매듭을 묶는 끈이 있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싶은 마음이였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그 끈의 소재에 따른 뒷감당은 제가 오롯이 받아내야 하는 것이라 생각 했습니다.

하루하루 전시가 끝나는 날을, 고대하고 고대하던 와중 전시가 끝나기 얼마 남지 않은 날, 생부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여 옆에 사람이 있는 것조차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어떤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힘 같은 게 있어서 전시 끝나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올 때마다, 저의 발자국 소리가 쿵 쿵 울리며 다가오는 것을 생부가 알게 되어 하루 지날 때마다 나의 발자국 소리가 무서워 도망이라도 쳤나보다. 내가 매듭을 짓는 것조차 이 양반은 싫었구나. 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참으로… 최후의 마지막에 끝자락 까지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삶의 모습이라 생각 했습니다. 혼자 장례식을 마치고 바로 그다음 날 있는 갤러리 토크에 나갔습니다. 생부의 사망을 알릴 수는 없었기에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2회차 갤러리 토크를 마쳤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매일을 두고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직 결정되지 않아 지금 말 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이 내용은 형태를 달리하거나 혹은 처음 떠오르는 대로 결정되거나 할 것 같습니다. 매듭을 묶을 끈이 없으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매듭을 지어야 제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이 되었건 제가 해야 하는 매듭이 되리라 생각 합니다 그리고 결국 전시 마치는 날이 왔습니다.

전시 철수 중에 학교 후배들이 왔습니다. ‘찌그러진 식물의 섬’ 작업에 위안과 위로와 용기를 받은 것처럼 보이는 후배의 잔잔한 말과 행동 속에서 저를 향한 깊은 감사와 선의 그리고 호의에 의한 모습들이, 제 마음의 깊은 곳에 있는 매듭과 관련된 무엇을 헤집어 놓았습니다. 이마저도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어쩌면 저는 조금은 휴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방명록을 다시 보는 것도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불모지라 불리는 예술 서적 출판이라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출판사 헥사곤의 조동욱 대표와 조기수 에디터 그리고 전시 진행을 함께 해주신 김영호 관장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신 관람객분들과 책을 봐주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모쪼록 작업을 접하시고 잠시간이나마 어떤 종류의 ‘환기’가 되었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 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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