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kon F6 이전에, 8년 동안 꽉 채워 사용했던 Nikon F5는 내가 생각하는 카메라로서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F5는 가장 무감하고 무기질적이다. 그야말로 내 이상에 가장 가까운 카메라였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서 카메라 라는 개념을 현실로 완성한 것이 F5였다. 난 아직도 F5를 뛰어넘는 카메라를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이미 완성 돠었기에 완성을 뛰어넘을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F6는 완성애서 한발자국 뒤로 물러남으로서 생기는 여유 공간에 보다 친절하고 상냥한 느낌이 들었다. F5보다 맑고 밝은 파인더는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봐도 자신을 속이는 일은 어닐거라고 말해주었고, 셔터음과 셔터 진동이 몸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 주는 느낌은, 너무 분노하지 말고 너무 실망하지 말고 너무 기대하지 말고 그저 내면에 떨어지는 물방울들의 소리를 조금 더 들어봐라고, 내가 도와줄 수 있다고. 카메라와 랜즈와 너의 눈과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거리는 F5가 해줬을지 모르지만, 무릇 뼈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어닐터이니 거기엔 살과 피가 있어야 할 것이기에 반발짝만 뒤로 물러나서 촬영해도 괜찮다고… 그렇게 나에게 말하는 듯 했다.
그로 부터 8년 동안 꽉 채워 F6와 함께 했고, 다시 그 뒤로 11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F6를 뛰어넘는 카매라를 만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 작업이나 사진이 변했는가 하면 그리 달리진건 없다. 결과물만 보자면 관점에 따라선 더 정제된 것들이 나오기도 한다. 한가지 다른게 있다면 F5나 F6와 함께 할땐 작업적 외로움이 크지 않았다면 지금은 그 외로움이 커졌다는 것이다. 말 없이 항상 그 자리에 같이 있는 동료나 조력자 혹은 이해자와 함께 하는 느낌이 도무지 들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말이 많고 미리 준비해둬야 하며, 분주하기에 멀리 투명하게 보려하면 언제나 중간에 눈먼 소리를 끼워 넣는다. 이건 이것 대로 그리 나쁘진 않지만 그저 카메라를 통해 생을 목도 하고 싶을땐 언제나 방해가 된다.
그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셔터를 누른다는 이 단순한 일련의 행동 조차 이리 민감한 일인데, 살아내간다 라는 것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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