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제 한나절 걸려 설치하고, 기계가 온도 습도에 적응해서 수축 팽창이 잦아들도록 하루 정도 안정화시킨 후에, 9,600개의 노즐이 붙어 있는 헤드의 착탄 포커스와 급지 옵셋 등 기초 셋팅을 맞춘 후, 색상별 농도값 측정 위한 작업 준비 중이다.
기초 작동 및 묘화 최적화를 하면서 조금 더 기간을 두고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이전에 비해 작동이 안정적이다. 길게 봐서 통계를 만들어 봐야 알 수 있는 거겠지만 확률적으로 꼭 발생하는 프린트 불량 Loss도 아직까지 없다. 아마도 이전 보다는 나을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쉐도우의 로컬 콘트라스트 분리력 향상에 더해 광색역 프린트가 가능해졌다.
여름이 끝난 가을 초입의 어느날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조우한, 세상에 모든 오렌지색을 졸여낸 듯 처연한 붉음이 가득한 속에서, 나직히 숨 쉬는 창백한 살결의 그 사람이 투명하게 웃던 모습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푸른 겨울, 상처 처럼 돋아난 싱그러운 녹색의 생물이 아스팔트를 깨고 일어나는 모습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깊은 물 속 검푸른 울렁임 위에 한오라기 실 같은 빛이 누워 있는 새벽, 미지근한 체온속 오래도록 스민 단단한 고독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뽀얀 복숭아 빛 같은 그 사람의 볼살에서 나던 향기를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하늘에 박힌 별들도, 검녹색의 바탕에서 빛나는 초록과 분홍의 오로라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오후 2시에 무겁게 내린 회색 비들 속에서 각양각색의 무심히 가라앉은 듯한 색깔의 우산들과 그림자처럼 씌어 있는 사람들과 투명하게 비치는 물빛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두껍고 텁텁한 회색 나무들과 설득에 실패한 현재 같은 보도블럭 위에 하얀 나비가 앉아 있는 모습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그리스의 조그만 항구 마을에 사람들과 함께 자유롭게 살고 있는 하얀 숫컷 고양이의 분방함과 천진난만과 요염함도 이젠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다 표현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넓힌다는 것은, 그보다 안에 있는 것들은 더욱 정제된 표현에 도움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소중한 작업 원고를 품고, 이 공방에 오는 그리고 올 작가들도, 그리고 나의 작업들도 새로 함께할 이 친구와 함께 만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몽글몽글해진다.
이와 관련해서 현실적으로 남은 문제는 생산성과 품질의 밸런스다. 나의 오래된 나쁜 버릇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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