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df_Mu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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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와 사랑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야만적이다.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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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던 봄이 끝났다. 골골히 들어찬 둔통이 아릿하게 남아있지만 그래도 봄이 끝났다. 그저 부드럽게 눈을 감고 그대로 길고 긴 잠을 잘 수 있으면 했다.

밤의 길이가 짧아졌다. 조금 더 잘 수 있게 되었다. 적당히 습도가 낮을때의 태양은 제법 나쁘지 않다. 걷고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아무 의미없는 하늘과 구름을 잠시 보았다. 좋았다.

날이 흐리다 비가 왔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살짝 열린 창문에서 비가 보인다. 먼지가 뭍어있는 검은색 블라인드엔 물방울이 단 한톨도 묻어있지 않다. 20초 동안 물끄러미 처다보다가 커피를 끓였다. 너무 먼 세계로 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목구멍에 붙어있는 성대부터 발톱까지 흐물거렸다. 잠시 누워 습기로 두꺼워진 천장을 보고, 무겁고 두꺼운 회색 공기를 뚫어지게 봤다. 이대로 영원히 눈을 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일어나 식은 커피를 마시고 셔플 모드로 음악을 틀었다. 아주 미끈하고 신경질적인 느낌의 아주 잘생긴 젊었을적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평균율 클라비어 1권의 첫번째 트랙이 나왔다.

가슴속에서 소리없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동자가 뜨겁게 시큰하다가 침착을 찾고 다시 조용히 돌아갔다. 무겁고 두꺼운 회색 공기속에 음악이 섞여들어갔다. 큰 종이에 나비 박제용 핀으로 고정되어 박힌 느낌이다. 화장실에서 똥과 오줌을 싸고 담배를 피우고 수염을 조금 자르고 물을 마시고 적당히 아무 포르노를 틀어놓고 자위하고 입을 다물고 잠을 잤다.

기억

일주일 전 즈음 친가에서 받아왔던 돼지 고기를 구웠다. 뭔가를 이 자리에서 구워먹는다는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 나지 않을 정도다. 몇 년간 써온 조그만 후라이팬에서 지글거리는 소리와 고기에 배어든 양념이 함께 익는 냄새가 달콤하게 퍼진다.

저녁때였다. 조용하고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그 냄새가 행복했던 기억을, 그리고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았던 그 어느때 보다도 행복했던 풍경이 아랫 눈꺼풀에 붙어버렸다. 눈의 초점을 건조하게 고정하고 기름이 배어나오는 것을 봤다. 최대한 최대한 건조한 기분으로 고기를 구웠다. 여기서 나도 모르게 아랫 입술을 질끈 깨문다던가 하면, 오히려 흘러넘칠것  같은 느낌이 거의 확실하기에 그저 건조한 마음으로 기름이 반질반질하게 노릇노릇하게 고기를 구웠다.

밥을 그릇에 퍼담고 고기와 함께 먹었다. 맛있었다. 그 풍경이 나의 정수리에서 귀쪽으로 옮겨간다. 고기를 씹고 밥을 씹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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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주 시인 어머니가 남긴 편지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 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 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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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분했다.

오후에 거리를 걸었다.
봄이 왔다.

구토감을 다시 밀어 넣었다.

구토

전화를 끊은 후 구토감이 느껴졌다. 때로는 인간이 풍기는 비린내와 행동들에 대해 비교적 면역이 되어 있다고 생각함에도 간혹 소장과 위장이 뒤집혀서 명치 부근에서 부터 끓어오르는 구토감이 목구멍 근처까지 잠길때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토감은 적어도 나의 경우 항상 높은 확률로 가족과 관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는 것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 존재인지, 얼마나 연약하고 비린내 나는 존재인지 그 일면을 너무나 과장되게 보여주고 만다.

일상속에서 매일 마주하는, 하루 하루 주변이 너무나 시끄럽고 오물냄새로 가득하다. 이건 그래도 그려러니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화기에 가족의 이름이 뜰때마다, 그렇게 수화기를 들고 목소리를 들을때 그때 마다 좋은 이야기 따위 들은 적이 없다. 결국 가족의 이름은 무거움, 지침, 분노, 허탈, 짜증, 무기력으로 대치 된다. 그리고 전화기에 뜬 이름만 봐도 언제 부터인가 멘탈이 갈려나가는 분명한 촉감을 몸으로 똑똑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한때는 나 나름의 노력을 한적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해라려 노력하고 잘 들으려 부단히 노력 하기도 했다. 제법 나름의 기간 동안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쏟아부은 에너지에 비하면 사소한 것들이 조금 변했을 뿐이였으나, 모든 것은 작고 사소한 것 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기에 사소한 변화가 무척 기뻤다.

하지만 결국 변한것은 그 어느 하나 없었다. 나의 노력이 부족 했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실제 따지고 보면 현실적으로 내가 한 것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어느 시계든 그 중 하나는 사라졌으면 한다.

2012년에서 이제야 겨우 2013년으로 나의 시계는 접어들었다. 하나씩 태워 나가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힘이 드는 일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괜찮을거라 바랬던 자기 암시의 위안은 삼분의 일 정도 맞았다.

이미 마무리가 된 작업은 공중에 떠 있고 내가 바라는 풍경의 그림은 아직 안개 넘어에 있는듯 하다. 낮은 맥박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격렬하게 땅을 칠때엔 오직 빨리 털어버리고 싶다는 뼈가 으스러질것 같은 충동에 적당히 타협해서 하는게 어떨까 그게 현실적이지 않은가? 라는 무게가 온다. 그렇다고 심장이 터질것 처럼 열심히 찾고 있냐면 그렇지 않다.

나에겐 3개의 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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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대부분의 날들은 평범하다.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나고 그 사이에 남겨지는 추억도 없이 대부분의 날들은 인생에 있어서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는다. 5월 23일은 수요일이었다.

톰이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면 그건 전 우주적 의미를 단순히 지구적 이벤트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우연. 항상 일어나는 그것이다. 우연, 그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톰은 마침내 기적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명 같은 건 없다.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건 없다. 그는 알았다. 그는 지금 그것을 확신했다. 톰은.. 그는 거의 확신했다.

– 500일의 썸머 중.

평일과 다르지 않던 오늘.

평일과 다름이 느껴지지 않는 오늘에, 아는 동생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고기를 먹자고 하여 대략 이십년 넘게 단골이였던 돼지갈비 집엘 가기로 했다. 이 집은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영업하다가 일년 반 전에 홀연히 사라졌는데 당시 나의 침울한 마음을 달래줄 것을 찾던 나에겐 무척이나 슬프게 느껴졌을 정도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모조리 사라진다며 당시 동행 했던 친구녀석에게 울분을 토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에야 어딘가에서 영업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결국 여러모로 검색해서 그 가게를 찾았다. 그 사이 여러가지 일이 있었음을 짐작게 하는 주인 아주머니의 얼굴. 하지만 그런것 보다도 그냥 반가웠다. 가게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으나 정말 오랫만에 얼굴을 봤기에 그저 반가웠다.

기본적인 밑반찬이 나오는데 구성이 어딘가 달라졌다. 뭐, 그럴수도 있지. 이십년 넘게 먹어왔던 맑고 시원한 시레기 된장국의 맛이 변했다. 갑자기 마음이 침잠해진다. 하지만, 뭐 그럴수도 있지. 그러다 불을 올리는데 숯불이 아니라 가스불을 올린다. 아.. 이런.

고기의 두께도 조금 변했다. 기본적인 간장 베이스의 양념은 크게 변한것 같진 않다. 고기를 굽고 밥과 함께 먹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맛이 변해버렸다. 원래는 동생이 저녁을 사기로 하고 나온것이고 그렇다면 기왕 맛있되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된 맛을 느끼고 싶었다. 평소 새로운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간혹 그럴때 있잖은가. 결국 맛이 변해버린 음식을 별 말 없이 묵묵히 다 먹고, 계산은 내가 하기로 했다. 이런 음식을 동생에게 얻어먹고 싶지 않았다. 한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나의 경우 애정이 생기는 가게라는 느낌이 들땐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경우 주인장에게 부드럽고 정중하고 약간 가벼운 느낌으로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오늘의 경우 값을 치르고 그대로 나왔다.

밖에 나오니 어마어마한 인파들이 흘러다닌다. 한창 사람 많을때 종로의 느낌이다. 길을 건너는데 한 남여 커플이 머리 3개 정도의 사이를 두고 서로의 눈을 말똥거리며 처다본다. 남자는 남자대로 섭섭한게 있었고 여자는 여자대로 이해하기 힘들어 하면서 섭섭해하는 눈이다. 격양된 어조를 억지로 참아가며 말하는 여자. 짜증의 일선을 넘어서 그 감정이 목소리에 묻어나는 남자의 목소리. 몇분이고 그 자리에서 똑바로 선체 싸움을 하고 있다. 오늘 같은 날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서글픈 느낌이 많이 들텐데, 어쩌다가.. 라는 생각이 들다가 아무렴 어때. 라는 마음이 들었다.

거리엔 수많은 사람들이 꽉꽉 채워진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날이 날인지라 남녀 커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어찌된게 남자와 여자간의 얼굴 표정의 온도차가 괜히 거슬린다. 그리고 그런 표정의 온도차이가 느껴지는 커플들이 무척 많았다. 어림잡아 절반은 되어 보였다. 그 수많은 커플들 중에 서로간의 온도가 비슷한 것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온도가 뜨거운 것이든 따뜻한 것이든 부드러운 것이든 날카로운 것이든 차가운 것이든 망가진 것이되었든 서로 비슷한 표정의 온도를 가진 커플들이 별로 없었다.

각자 다른, 엇갈린 시선과 생각과 감정들이 보여지는 것만 같다. 팔짱을 끼고 걷는 커플인데도 그런 것이 보여지곤 하면 살짝 등골이 시렵게 느껴진다. 정말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평일과 다름이 느껴지지 않는 오늘.

농담

농담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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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시를 만났던 때가 8년 전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근본은 어느하나 달라지는 것 따위 없었다.
쉽게 바뀌는 근본을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떻는가는 남겨두더라도.
또한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또한 어제와 오늘이 그랬듯
내일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이 시의 제목이 \’농담\’ 인것을 되새김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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