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과 다름이 느껴지지 않는 오늘에, 아는 동생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고기를 먹자고 하여 대략 이십년 넘게 단골이였던 돼지갈비 집엘 가기로 했다. 이 집은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영업하다가 일년 반 전에 홀연히 사라졌는데 당시 나의 침울한 마음을 달래줄 것을 찾던 나에겐 무척이나 슬프게 느껴졌을 정도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모조리 사라진다며 당시 동행 했던 친구녀석에게 울분을 토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에야 어딘가에서 영업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결국 여러모로 검색해서 그 가게를 찾았다. 그 사이 여러가지 일이 있었음을 짐작게 하는 주인 아주머니의 얼굴. 하지만 그런것 보다도 그냥 반가웠다. 가게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으나 정말 오랫만에 얼굴을 봤기에 그저 반가웠다.
기본적인 밑반찬이 나오는데 구성이 어딘가 달라졌다. 뭐, 그럴수도 있지. 이십년 넘게 먹어왔던 맑고 시원한 시레기 된장국의 맛이 변했다. 갑자기 마음이 침잠해진다. 하지만, 뭐 그럴수도 있지. 그러다 불을 올리는데 숯불이 아니라 가스불을 올린다. 아.. 이런.
고기의 두께도 조금 변했다. 기본적인 간장 베이스의 양념은 크게 변한것 같진 않다. 고기를 굽고 밥과 함께 먹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맛이 변해버렸다. 원래는 동생이 저녁을 사기로 하고 나온것이고 그렇다면 기왕 맛있되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된 맛을 느끼고 싶었다. 평소 새로운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간혹 그럴때 있잖은가. 결국 맛이 변해버린 음식을 별 말 없이 묵묵히 다 먹고, 계산은 내가 하기로 했다. 이런 음식을 동생에게 얻어먹고 싶지 않았다. 한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나의 경우 애정이 생기는 가게라는 느낌이 들땐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경우 주인장에게 부드럽고 정중하고 약간 가벼운 느낌으로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오늘의 경우 값을 치르고 그대로 나왔다.
밖에 나오니 어마어마한 인파들이 흘러다닌다. 한창 사람 많을때 종로의 느낌이다. 길을 건너는데 한 남여 커플이 머리 3개 정도의 사이를 두고 서로의 눈을 말똥거리며 처다본다. 남자는 남자대로 섭섭한게 있었고 여자는 여자대로 이해하기 힘들어 하면서 섭섭해하는 눈이다. 격양된 어조를 억지로 참아가며 말하는 여자. 짜증의 일선을 넘어서 그 감정이 목소리에 묻어나는 남자의 목소리. 몇분이고 그 자리에서 똑바로 선체 싸움을 하고 있다. 오늘 같은 날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서글픈 느낌이 많이 들텐데, 어쩌다가.. 라는 생각이 들다가 아무렴 어때. 라는 마음이 들었다.
거리엔 수많은 사람들이 꽉꽉 채워진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날이 날인지라 남녀 커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어찌된게 남자와 여자간의 얼굴 표정의 온도차가 괜히 거슬린다. 그리고 그런 표정의 온도차이가 느껴지는 커플들이 무척 많았다. 어림잡아 절반은 되어 보였다. 그 수많은 커플들 중에 서로간의 온도가 비슷한 것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온도가 뜨거운 것이든 따뜻한 것이든 부드러운 것이든 날카로운 것이든 차가운 것이든 망가진 것이되었든 서로 비슷한 표정의 온도를 가진 커플들이 별로 없었다.
각자 다른, 엇갈린 시선과 생각과 감정들이 보여지는 것만 같다. 팔짱을 끼고 걷는 커플인데도 그런 것이 보여지곤 하면 살짝 등골이 시렵게 느껴진다. 정말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평일과 다름이 느껴지지 않는 오늘.
농담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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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시를 만났던 때가 8년 전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근본은 어느하나 달라지는 것 따위 없었다.
쉽게 바뀌는 근본을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떻는가는 남겨두더라도.
또한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또한 어제와 오늘이 그랬듯
내일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이 시의 제목이 \’농담\’ 인것을 되새김질 하였다.
일어난지 5시간 후에 둑이 터진듯 잠이 왔다. 의자에 앉은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침대로 들어갔다. 수일사이에 갑자기 추워졌다. 차가운 이불을 뒤집어 쓰고 그대로 잠들기를 기다렸다.
닫혀있는 얇고 투명한 둥그런 막이 갑자기 터지면서 속의 내용물이 마구 쏟아져나온다. 여러가지 잡상들이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붉은 눈으로 내 주위를 둘러 본다. 등과 발이 무척 차갑다. 그렇게 한시간을 누워있었다. 너무나도 피곤하다. 결국 잠이 들지 못하고 나는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결국 침대에서 도망쳐나왔다. 생각해보니 오늘 일어나서 하루종일 먹은 것은 식빵 3조각이였다. 배가 고파도 밥 생각이 없었다. 배가 고픈건 인식이 되었지만 여전히 밥 생각이 없었다. 무척이나 긴 밤이 될것 같았다. 머리가 무겁고 몸이 으슬거린다.
라면을 끓여 위속에 대강 쓸어넣었다. 발바닥이 조금 따뜻해졌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단지 배가 부른것으로 나의 잡상은 여전히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잠이 오질 않는다. 잠이 오질 않는다.
한없이 탁함에 가까운 투명이다.
Utupe leo chakula chetu tunachohitaji
우투페 레오 차쿨라 체투 투나초히타지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Utusamehe makosa yetu, hey!
우투사메헤 마코사 예투 헤이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Kama nasi tunavyowasamehe (milele) waliotukosea
카마 나시 투나비요와사메헤 (밀렐레) 왈리오투코세아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영원히) 용서하오니.
Usitutie katika majaribu, lakini
우시투티에 카티카 마자리부 라키니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다만
Utuokoe, na yule Mwovu, milele (na milele)
우투오코에 나 율레 므워부 밀렐레 (나 밀렐레)
영원토록 (또 영원히) 악에서 구하소서.
Baba yetu, yetu uliye
바바 예투 예투 울리예
우리 우리 아버지시여,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우리들은 또 다시 고독하게 된다. 그렇게도 같은 것이다. 그곳에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야.”
“네. 알고 있어요. “
라고 조제가 말했다.
제법 호사스러운 경험을 했다. 산책을 하고 수영을 하고 그대로 잠도 들었고 맥주도 마셨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제법 비싼 교통비를 치뤄서 거리를 달리고 한밤의 바다를 봤다. 그런데 이런 시간도 혼자서 하니 어딘가 마음이 허허롭다. 좋은 것은 함께 할때 더욱 즐겁다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세삼 떠올렸다. 밤은 길었고 침대는 푹신했지만 많이 외로웠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이런곳에 혼자 오는 사람 따위 나 정도 였을것이다. 게다가 밤 10시 넘어서 체크인 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 것이다. 이미 짐작도 했고 심지어 일종의 각오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실제 일어나는 일은 예상을 넘기 마련이다.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혼자 왔다는 것을 말하자 담당자가 아주 일순 멈칫 했던것이 생각났다. 방의 세팅도 커플에 맞춰 무척 세심하게 되어 있었다. 실소가 터졌지만 배낭을 던져놓고 사진을 몇 장인가 찍어내고 담배를 피웠다. 몸이 너무 피곤했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샤워를 하고 배낭에 넣어두었던 진베를 입고 산책을 했다. 무척 긴 밤이였다. 책이 옆에 있었지만 도무지 읽을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몇번이나 책을 열었다 닿았다. 그리고 그 일을 체크 아웃 하기 전까지 반복 하였다.
다음날 미니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시내로 숙소를 잡았다. 호사스러운 곳에 있었다고 해도 겨우 이틀이다. 그리고 그 이틀만에 지겨워졌었다. 그럼에도 도착했던 게스트 하우스에 침대에 앉아서 멍하게 10분간 앉아 있었다. 웃기는 일이다. 그래봤자 이틀 있었던 것 뿐인데, 어딘가 미묘하게 곰팡이 냄새가 나고 창문이 없어서 햇볕이 들지 않으며 어딘가 슬픈 느낌이 드는 방에서, 침대에 앉아서 느껴지는 이 낙차감에 나는 당황하였다. 나라는 인간은 비교적 이러한 것에 자극받지 않는 편이였는데, 어째서인지 이번은 그 낙차감이 무겁게 나를 눌렀다.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이 낙차감을 몸 구석 구석에 새겨 넣었다. 배낭을 풀고 다시 카메라 가방을 챙겨서 로비로 내려갔다. 그제서야 조금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가격에 비해 위치가 제법 좋은 곳이였는데 어째 사람이 거의 없다. 그 게스트 하우스에서 봤던 사람은 독일인 커플 한쌍, 일본인 할머니 한명이 전부였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서 사진을 조금 찍었다. 아무래도 시내다 보니 차도 사람도 많았다. 걷다가 배고프면 적당히 들어가 밥을 먹고, 갑자기 비가 내리면 적당히 아무곳에나 들어가는 김에 내부를 돌아다녔다. 밤에 전철을 타고 재즈바에 가서, 어딘가 모르게 적당히 모자라고 적당히 즐겁게 연주하는 재즈 라이브를 듣고 숙소로 돌아갔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고 이야기 하고 들었다. 다들 어떤 종류의 공통점을 새삼 느꼈다. 약간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쓸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난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다음날 소개로 한분을 만났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것 같은데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한것 같지 않다. 반대로 많은 이야기를 한것 같지 않은데 많은 이야기를 나눈듯 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듯 한데 맞닿은 부분이 어딘가 많아서 그런 느낌이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영화를 보러가자는 이야기가 되어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각자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조금 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것 같은데, 때문일까 다음 약속 장소로 가는 발걸음이 그다지 가볍지 못했다.
약속장소에서 사람을 만났다. 다음날 귀국하는 분인데 마지막 밤에 할일과 관련하여 관련 안내와 시스템을 알려주었다. 무척 좋아한듯 하여 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겸사 겸사 나도 맥주를 얻어 마셨다. 적당한 타이밍에 빠져나와서 숙소에 돌아오니 뭔가 무척 지친다.
다음날 일어나니 일본인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나이때 분들 특유의 쉴새없는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딸과 같이 왔는데 이리저리 딸에 대한 자랑이 보통이 아니다. 실제로도 그럴만 하겠다 싶다. 어떻게 같이 오시게 되었냐고 하니, 나의 예상을 넘은 대답이 나왔다. 걱정되어 따라왔다고 한다. 그런데 따님은 지금 어디 있으냐 했더니 저 혼자서 지금 다른곳을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순간 몇가지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서는데, 그 생각을 입으로 옮기지 않으려 무척 신경을 썼다. 그리고 할머니가 다녀온 장소로 화제를 돌리는데 성공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체크아웃 시간을 초과하여 나가봐야 한다고 하니 일순, 그 나이즈음의 여자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얼굴에 그늘지고 아주 엷은 시니컬함이 보였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다음 숙소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배낭을 매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길을 걷고 있으니 명백하게 이방인이 된 기분이 든다. 카메라 가방을 매고 걸을때와는 또 다르다. 웃기다면 웃긴 이야기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또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맥주를 마셨다. 이럭저럭 벌써 밤 시간이 되었다.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내를 떠나기 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멘탈이 많이 상해있었다. 재차 확인하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단지 체력이 많이 소진되어 그랬었을 뿐이라고 안심하고 싶었던 것과 동시에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덮어둔다고 한들 여기서 뭔가 더 달라지거나 좋아질만한 요소가 없다고 판단했음에도, 어딘지 숨이 답답하다. 돈이 아까운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시 한번 마음에 상처와 비슷한 것을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 되진 않을런지 두려웠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나로선 너무나 가소롭고 우스웠다.
일부러 최대한 마음을 가볍게 하려 노력했다. 요컨데 소위 관광객 모드를 발휘하고자 했다. 바보 같이 커다란 배낭을 맨채 들어가고 두시간 후에 나왔다. 나는 다시 한번 더 확인을 했고 그 결과가 나로서는 무척이나 아팠다. 내가 스스로 인지하고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나에겐 시간이 더 필요 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사람은 스스로를 잘 속일 수 있다. 네가 믿던 믿지 않던 자신의 머리도 마음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몸은 속일 수 없다. 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 났다. 그리고 몇년 후 그 말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정신 위생상 심리적 방어기재에 의한 올바른 일이라고 자위를 했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정면으로 인식하는 순간, 느껴지는 아픔이라는 것은 입술을 굳게 다물로 걷는 것으로 버티기엔 여전히 힘들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다. 어쩌면 난 이것을 이미 예감 했었기에 다음 숙소를 정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밖에서 움직일때 나름의 사소한 두가지 원칙이 있다. 숙소에 머무르는 것은 최대 3박까지. 그리고 한번 갔던 곳은 다시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가졌던 이 원칙을 깨기로 결심했다.
밤 1시가 되어 이전에 갔었던 게스트 하우스를 갔다. 일단 1박만 하기로 했다. 이대로 죽어도 별 이상이 없을것 같은 피곤함이 쏟아졌다. 샤워를 하고 눈을 감았다. 죽음 같은 잠이 쏟아졌다. 다음 날 뭔가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누군가 침대에 얼굴을 걸터 놓고 나를 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정신 차리고 다시 보니 그곳의 매니져였다. 나를 기다렸다고 한다. 포옹을 했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왠지 잠이 약간 더 편해진 기분이다.
얼마나 잠을 잤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니 온몸에 송곳을 찔러 넣은듯 아프다. 머리도 아프다. 시계를 보니 체크아웃 시간은 이미 지났다. 매니저가 어쩌면 배려 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다른 곳으로 갈까, 아니면 며칠 여기에 더 있을까 하다가 매니저가 나와서 담배 한대 같이 피운 다음 숙박을 연장하기로 했다. 내가 없던 사이 장기 여행자들은 전부 귀국했고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세삼스럽지만 어떤 장소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느꼈다. 배가 고파 매니저를 꼬셔서 같이 밥을 먹으러 나갔다. 제법 이것 저것 시켜서 먹었다. 내가 없던 며칠 사이 (웃긴 소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물을 마시고 바람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밤에는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쓸때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안타깝게도 여행자는 기본적으로 비겁하다는 것을 상기하는 시간이였다. 종국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여행자를 비겁하게 한다.
새벽까지 천천히 맥주를 마시고 한국에 돌아가 식당을 개업하고 싶다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가지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가 가면 갈수록 이렇게 서로 이야기가 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여행지에 와서도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어딜가나 비율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숙소에 머문지 삼일째가 되자, 몸이 근질근질 해서 결국 카메라 가방을 매고 어딘가를 하루 동안 기어나갔지만, 소위 관광지에서 보여지는 시니컬한 내 마음만 잔뜩 찍고 왔다. 관광안내 팜플렛과 실제로 그 곳에 관광하러 온 사람들의 표정은 다르다. 어설픈 상업화와 진심과 동물원 구경 같은 것이 개체 없이 버물려 피어오르는 비릿함과 멀리서 봤을때 느껴지는 화려함과 가까이서 봤을때 깨진 유리 조각과 비루한 전선과 기업 광고가 새겨진 접혀있는 파라솔들은 어찌 보면 차라리 순수하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지 않은데도 이런 것들이 자꾸 보여진다. 말 없이 또 몇시간인가 걸었다. 무척 넓고 풀밭이 있는데도 황무지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드는 공원을 걸었다. 매연 냄새가 시큼하다. 계속 이리저리 걷다가 다시 숙소에 돌아왔다. 이 느낌이 싫지 않다. 마치 이 따위 세상 모조리 수몰 시켜버리겠다 싶을 정도의 스콜이 왔고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 봤다. 밤이 되자 맥주를 마시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곳의 라이브를 듣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페점 시간을 계산하니 도착하면 십여분 정도면 끝날듯 하다고 하자, 단 10분이라도 좋으니 지금 기분은 음악을 듣고 싶다고 해서, 결국 숫컷 일곱명이 조그만 오토바이를 개조한 3륜 차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블루스 라이브 바에 가서 정말 십여분 정도의 라이브를 듣고, 맥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죽을 먹었다.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어서 좋았고 쓸쓸했다. 다음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숙소 바깥에 의자에 앉아서 풍광을 봤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날이 더우면 샤워를 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에도 조급함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답답하지도 않았다. 그런식으로 4일을 그곳에서 보냈다. 내가 가진 원칙을 깨긴 했지만, 그것이 난 제법 좋았다. 귀국날 아침이 되었음에도 전날과 다름 없이 똑같이 지냈다. 마치 오늘이 귀국날이 아닌것 처럼.
여태껏 나름 게스트 하우스를 전전했지만, 그곳을 세운 사람과 매니저와 투숙객이 환송을 해주는 것은 처음이였다. 나는 애써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고맙다는 마음을 건냈다. 차 안에서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어포트 레일링크에 도착했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바깥의 경치를 제법 찍었다. 특히 아무것도 없는 회색의 거대한 빌보드를 많이 찍었다.
에어포트 레일링크에서 내려 공항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 바로 정면에서 보였다. 배가 고팠던 참이라 살짝 구운 빵, 몇가지 재료와 소스를 선택하곤 내가 기어왔던 길들을 되돌아 보며, 사람들이 나에게 밀려오는 것 처럼 보이는 좌석에 앉았다.
한입 베어물고 우물거리며 내가 걸어왔던 무빙워크를 정면으로 봤다. 무심히 왼쪽을 보자, 헤어지는 연인이 보였다. 딥 키스를 하고 얼굴을 부비고 그 와중에 남자의 손은 여자의 몸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려는듯 허리에서 가슴깨로 그리고 엉덩이로 유턴하듯 흘러갔다.
남자는 웨스턴으로 보이고 여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숏컷에 금발로 물들인 것만 볼수 있었다. 음료도 없이 샌드위치를 건조하게 씹으며 그 커플을 보던 중 여자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자세히 보니 현지 여자로 보인다. 여자는 우는것 같다가도 다시 끌어안고 그러다 다시 딥 키스를 한다. 상황만 보면 남자가 떠나는 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여자는 현지인으로 보이지만 남자, 여자중에 어느쪽이 떠나는건지 알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둘 중에 어느 쪽이 떠나는 쪽인지 알기 어려운 쪽이,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다.
샌드위치를 먹기전부터 그 커플은 계속 그랬던듯 했고, 내가 건조하게 전부 먹어치울때 까지 시간은 대략 9분 이였다. 나에겐 건조하고 지루한 9분이지만 그들에겐 짧고 아련한 시간이겠지, 그런식으로 그 커플은 이별의 안타까움이 연출 되고 있다. 아주 짧은 찰나 끌어안은 남자의 시각이 사각인 곳에서 비행기 표를 내려다 보는 여자의 눈이 달라진 것을 본듯한 느낌이 들지만, 지금 나의 마음이 몹시 비틀려 있어서 그렇게 보였으리라고 생각했다. 잠시간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남은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고 나올때 까지도 그러고 있다. 자리를 나서며 나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절레절레 좌우로 주억거렸다.
멍청할 정도로 거대한 공항에서 보딩패스를 받기 위해 천천히 걷던 중 아까 봤던 남자가 성큼 성큼 크고 빠른 걸음으로 내 앞을 질러간다. 난 걸음을 멈추고 그 남자를 살펴 봤다. 그 남자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방향을 돌리자 얼굴이 정면으로 생생하게 보였고 그것은 마치, 모든것이 적절히 마무리 되었다는 표정이였다. 그 어떤 아픔이나 아쉬움도 없는 표정이다. 마치 출장을 떠나는 얼굴 이다.
아무래도 좋을, 나와 아무 상관 없는 것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순간 이것이 착각이였으면 하고 나도 모르게 바랬다. 그와 동시에 그 남자와 함께 했던 현지 여자는 공항을 떠나며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순간 섬�하여 생각하기를 그만 두었다.
비행기에 앉으니 옆 좌석엔 귀여운 느낌에 한껏 멋을 낸 모자를 쓴 조그만 여자 꼬마와 가슴에 한살도 안된 아기를 안고 있는 베트남 어머니가 앉았다. 아기의 울음을 달래고 여자 꼬마의 소리를 들으니 베트남어가 같이 들린다. 그런데 중간에 \’모자 벗고\’ 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꼬마를 보고 아기를 안은 어머니를 보며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이가 뭐라고 엄마에게 말하더니, 그 말을 나에게 번역하여 나에게 물어보길, 나보고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보는 거였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라고 한국말로 대답을 했다. 그리곤 재차 아이를 천천히 봤다. 너무나 선명하고 깨끗한 노란색의 웃옷과 핑크색의 쉬폰 치마를 입은 소녀의 얼굴. 짧은 숏컷이 아이 특유의 동그랗고 또렷한 커다란 눈을 더욱 강조하는 느낌이였다.
아이는 마치 오랫동안 연습 한듯 고개를 숙이고 한국발음이 익숙치 않은 작고 여린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나이는 여섯살 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을 위해 준비한 것인지,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기 전 나에게 예행 연습을 한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난 분명 무슨 말이라도 했었어야 하는게 옮다. 하다 못해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면서 칭찬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나는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웃으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게 나의 최선이였다.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억지로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 많이 피로했다. 겨우 잠이 들었다. 몇시간이 지났을까 소란스러워 잠에서 깼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아침이 되었다. 비행기 바깥 온도는 영하 37도를 가리켰다. 꼬마 아가씨가 서러운듯 울고 있다. 잠들기 전 까지만해도 이쁘게 정돈 되었던 머리카락도 부시시 하다. 한참을 목도 했다. 울음이 무척 길다. 알아들을 수 없는 베트남 어로 엄마와 아이가 한참을 이야기 한다. 어느덧 공항 도착하기 30분 정도 남았다. 아이의 엄마에게 목례를 하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세가지 정도의 상황을 유추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제발 맨 마지막 세번째에 상황이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버스 정류장에 갔다. 어딜가도 다르고 어딜 가도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또 몇가지 생각들이 일어났지만 애써 생각을 누르고 담배를 한대 피웠다. 도착하여 철문을 여니, 별천지 같았다. 이 곳이 정말 내가 있었던 곳이였나 싶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 중에 삼분의 이는 필요 없거나 버려도 될것 같았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감이 들었다. 급격한 피로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덮쳤다. 배낭을 그대로 바닥에 던져두고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우려 마셨다. 빨래를 하고 먼지 쌓인 것을 걷어내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바깥에 나가 있는 동안 그렇게 먹고 싶었던 두툼한 돈까스를 먹었다. 도착한 날 몇명에게 연락이 왔고, 인터벌 타임 없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인사를 했다. 고맙고 감사하다.
순식간에 밤이 되어 익숙하고 마음 불편한 침대에 누웠다. 익숙하고 불편한 천장을 잠시간 보고 있다가 눈을 감으니 정신을 잃어버리듯 잠에 빠졌다. 다음날 일어나 천천히 주위를 둘어 봤다. 에스프레소를 뽑아서 마시고 담배를 태워내고 잠시간 의자에 앉아서 멍하게 허공을 봤다. 공기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어제 막 돌아왔을때 느꼈던 별천지 같은 느낌은 사라지고, 삼분의 이는 없어도 될 것 같은 느낌 따윈 사라졌다.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디까지 간사한 것인가. 약빨이 하루도 가지 않는다. 적응이 빠르다고 한다면 참으로 빠르다.
시간이 흘러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삼일도 걸리지 않았다. 쌓여있는 일들과 해결되지 못한 일들과 답답한 일들과 어떻게든 꼭 되었으면 하는 일들이 있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데 차로 이동하는 것 보다 1시간이나 더 소요되는 열차를 선택했다. 총 소요 시간은 4시간. 단순히 가격이 더 싸서가 아니다. 열차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시스템을 보면 그 나라의 일부가 보여버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탄 열차가 출발지에서 약 50키로미터 지점에서 기관차의 엔진이 터졌다. 그리고 다른 어나운스먼트도 없이 (못들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냥 열차가 멈췄다.
내 왼쪽 자리에 앉았던 인문학, 언어를 연구하는 스페인계의 아름다운 눈동자와 말끔하게 정돈된 대머리를 소유한 40대 중반 대학 교수가 짜증을 웃음으로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내 오른쪽에 앉았던 60대 초반의 프랑스인 여류화가는 에밀 졸라를 읽으면서 오늘밤 까지 이럴지도 모를거라고 했다. 희안하게도 이 좌석 라인을 제외한 다른 승객은 현지인들이다. 에드워드 호퍼가 아편에 쩔어있다면 좋아할 것 같은 광경이다.
열차의 실내는 아주 낡고 오래된 모노륨에 실내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거기에 보수 페인트를 몇번이나 덧발라 두꺼운 질감이 느껴진다. 창문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방식으로 유리가 뿌옇고 당연 에어컨은 없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얇팍한 선풍기가 천장에서 맥아리 없이 돌고, 사람들도 꽉 차있고 온도와 습도 모두가 높다. 햇볕의 광선이 거친듯 부드럽다.
운행중에 기관차 엔진이 주저앉은 것은 여러가지를 시사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 보다도 이후의 후속 조치를 생각해보면 이 곳이 가진 일면이 드러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였지만, 지금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은 초조함과 조바심을 들게 한다. 할일이 없어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왜 이런 조바심이 드는가에 대해서 생각 해보기로 했다.
생각 해볼수 있는 원인은 무척 다양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부터 사회과학적인 관점을 둘러 5살때의 특정한 일 부터 시작해서 이유나 원인의 가짓수는 줄잡아 백가지는 넘을듯 했다.
나의 초조함은 어디서 왔는가. 혹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가 어찌하여 난 이 상황을 여유롭게 대하지 못하는가. 열차가 멈춘지 3시간 후가 지나도 여전히 기색이 없다.
바깥 광선이 달라진 것을 느끼고 하늘을 창문 너머로 보는데 꺄르륵 거리는 여자 아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지금 나의 상황과 너무 이질적이라 창문 밖으로 목을 빼고 봤는데 교복을 입은 여중생 정도로 조이는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는다던가 서로 재잘거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이 낮고 두껍게 깔려 어둡지만 빛이 남아 있던 기묘한 빛의 퍼짐이 있었고 결국 목을 빼어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밝은 표정으로 화답을 하고 하트 표시를 하기도 한다. 나도 잠시 카메라를 내리고 손을 흔들어 화답을 했다. 아이들은 더욱 즐거워 한다. 몇장인가 윤율을 타듯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찍고 나서 카메라를 다시 넣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몇분인가 후에 애들이 노래를 부른다.
갑자기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싶더니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열차가 멈춰 심기가 불편했던것 부터 시작해서 비가 쏟아져 아이들의 소리가 멈춰버린 그 순간까지, 일련의 과정들 전체가 나는 좋았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있던 자리에 빗소리가 들어왔다. 짜증이 무척 줄었다.
본디 4시간을 소비해서 가야할 시간 만큼, 4시간을 그곳에서 기다린 후에야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 즈음에서 초조함에 관한 생각을 그만두었다. 의자에 앉아서 할 수 있는 놀이 였던거거든.
그렇게 40분 정도 달리나 싶더니 갑자기 열차가 또 멈춘다. 아…..
매일 12-16Km씩 걸었다. 발가락에조그만 물집이 생겼다. 한국에서 샀던 발목을 잡아주는 끈 달린 샌들의 옆 고리가 터졌다. 그렇게 털럭거리는 신발을 신은체 또 하루를 걸었다. 희안하게도 물집이 아프지 않다. 걷는 동선 중에 사람들에게 들었던, 먹어보라는 음식을 먹었다. 나로선 추천의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와 비슷한 것을 몇번 겪으며 새삼스레 이런일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어렴풋이 보였다. 길거리 지나가면서 우연하게 만나게 되는 음식들 중에 유일하게 만족 스러웠던 것은 갓 짜낸 귤과 비슷한 쥬스 였다. 시원하고 싸고 굵은 질감이 느껴지는 맛이다.
너덜거리는 신발을 그대로 둘 수 없어 마침 근처 한인 여행사에 들어가 근처에 신발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신발 수선방이나 구입 할 수 있는 곳을 물었다. 이 근처에는 전부 샌들 종류밖에 없다고 한다. 신발을 빌려 주겠다며 크록스 비슷하게 생긴 신발을 빌려주겠다고 한다. 무척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난 이 신발을 고치고 싶어 수선하는 곳을 재차 물었다. 시간이 맞지 않아 당일 수리는 하지 못했고 다음날 위치 찾지 못해 근처 양장점에 앉아있던 인도사람에게 물어 위치를
정확하게 찾았다. 무척 친절하게 알려주어 고마웠다. 찾아 고치러 갔다.
본드를 붙이고 구멍을 뚫어내고 실을 묶는 심플한 작업을 빠르게 했다. 인도사람으로 짐작되는 흰머리가 가득한 마른 얼굴의 영감님이 수리를 마치고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 받고 서로 잘 통하지 않는
타국어로 농담을 주고 받았다. 수리비는 무척 쌌다.
돌아오는 길에 양장점 인도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여행사에 들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이야기 중에 여행사 사장님이 그거 금방 다시 망가질것이라고 했다.
날은 많이 덥고 습도가 높았다. 이 나라 전체 국가 수입의 1/3을 벌어들이는 산업이 모여있는 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중 교통 시스템 중에 전철이 무척 궁금하여 굳이 전철 플랫폼까지 가서 관련 시스템이나 플랫폼 시스템의 형태와 표정,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 봤다. 어느곳에서도 흔하게 볼수 있는 특유의 표정이다. 약간 쓸쓸해질것 같은 기분이 드려고 하다가 어느덧 나도 그들과 비슷하게 되었다. 카메라 가방과 카메라를 어깨에 맨채 목적지에 도착하여 거리를 걸었다. 정신없는 네온사인과 음악과 게이트
키퍼들이 보인다. 거리 전체를 한바퀴 쭉 걸었다. 적당한 가게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흐물흐물 별 동작 없이 춤추는 아가씨와 투명 천장에서 매우 짧은 플레어 스커트를 두르고 팬티를 입지 않은체 춤을 추는 아가씨를 보고 그 안에 가득찬 남자들의 얼굴을 봤다. 지쳐보이는 남자는 없었다. 장난감 혹은 사탕가게에 들어온 아이들 표정 같다. 그리고 희안하게도 무척이나 해맑은 표정들이었다. 고개를 쉽게 들지 못하던 몇몇 서양인들도 수줍게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맥주도 한모금 하며 나름을 즐기는 듯 했다.
음악 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앉을곳은 가득차서 답답한데도 남자들의 표정은 해맑고 순수해보였다. 서양인 늙은 노부부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얼마동안 그 노부부를 유심히 살펴봤다. 몇분인가 지나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데 도대체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잠시 눈물이 날것도 같았고 깊은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그 노부부는 거의 미동도 하지 않은체 스테이지를 같이 보고 있었다. 이 느낌을 제대로 표현 할만한 적절한 문장이 지금 나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는 그
광경을 견디지 못하고 남은 맥주를 한번에 들이키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숙소에 들어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와중에 느껴진 미묘하게 불편한 기분을 털어내려 샤워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다시 마시고 또 갈곳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움과 동시에 비열한 외로움이 흘러넘치는 시간을 건너서 다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다음날 기분이 무척 이상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진을 시작한 이후로 바깥에서 카메라 없이 걸었던 것은 처음이였다. 걸음의 템포가 너무나 다르다. 기분이 좋지 못했지만 어쩐지 불안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배가 고파 뭔가를 먹었지만 여전히 별 맛은 없었다. 밥을 먹다 말고 도로와 가득찬 차와 사람을 봤다. 음식을 남긴체 값을 차르고 다시 길에 올랐다. 문득 걷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어딘가 적당히 앉았다. 쓰레기가 보이는 더러운 강물과 거기서 낚시를 하는 사람과 배가 지나간다. 날씨는 무척 화창하여 구름이 그림 같다. 기분이 좋지 않다.
담배를 많이 피웠다. 책을 무척 읽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마저 문득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시 한번 여행자들의 메카라고 하는 곳을 걸었다. 주스를 마시고 환전을 약간 하고 볶음 국수를 먹고 수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오른쪽 어깨가 허전했지만 단지 허전한것 뿐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약간 쓸쓸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채워 카메라 없이 하루를 보냈다.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찍고 싶은게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다가 그만 두었다.
다음날 카메라 가방과 카메라를 다시 어깨에 얹었다.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불쾌했다. 제임스 낙트웨이가 작업했던 곳에 갔다. 시장에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아이들을 많이 찍었다. 그렇게 무작정 걷다가 어느덧 학교에 흘러들어갔다. 아이들 표정이 한국과 사뭇 다르다. 호기심이 생겨 잠시 생각을 하고 학교 매점을 찾았다. 역시나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피로감과 씁쓸함이 살짝 씻겼다. 학교 안을 한참 돌다가 빛이 좋아 아무런 의미 없이 몇장 찍었다. 기분이 제법 괜찮다. 더 걷다보니 10대 미혼모 근절 캠페인 보드가 학교 축구장 옆에 크게 걸려 있다. 그 뒤를 넘어 가니 강이 보인다. 잠시 다리를 쉬고 아이들의 움직임과 걸음, 표정과 목소리를 목도 했다.
빛이 좋아 의미 없는 사진을 다시 몇장인가 찍었다. 참으로 덧없는 느낌이 드는데 이상하게도 약간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강으로 가서 조그만 배를 타고 반딧불을 보고 새까맣게 어두운 밤의 하늘속에서 파란색과 붉은색의 색을 뽑아서 사진을 찍었다. 마치 조각을 한다던가 금속을 정제하는 듯한 느낌이다.
오늘은 숙소 체크아웃 하는 날이었다. 내 신발은 며칠전 여행사 사장이 말했던 것 처럼 끈이 다시 너덜거리기 시작하고 있다. 조만간 다시 완전 끊어질듯 하다. 모든 것이 어지러워 숙소를 하루 더 연장하고 숙소에 있던 여자 두명이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여 가까운 시내로 나가 밥만 먹고 다시 돌아와서 담배를 몇 까친가 태워내고 무겁게 쏟아지는 잠에 나를 맡겼다.
그렇게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찍 서둘러 떠났다. 공항에서 몇시간을 보내는 동안 사람들을 봤다. 그간 있었던 일을 복기 했다. 사진들을 보고 운율에 올라타기 위해 셔터를 뉼러야만 했던 사진들을 정리했다. 메모리 여유가 약간 늘어난듯 했다.
사람이 그렇게 많던 공항임에도, 아무도 없다고 해도 좋을만큼 조용하고 멍청하도록 넓고 조명이 없어 새벽처럼 어두운 공항 2층 자리를 발견했다. 입을 닫은체 한시간 넘도록 빈 공간을 지켜봤다. 유리벽 너머 손톱만하게 깃발이 펄럭인다.
사진을 찍고 1층에 다시 내려가 맥주캔을 하나 사곤, 다시 그자리에 돌아와 앉아서 기묘한 광경을 목도 했다. 비오는 날 에어컨이 미지근하게 나오는 수족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끄러지는 듯한 몸으로, 아무도 밟지 않은 바닥을 청소하는 모습이 보인다. 창문 밖은 천하가 하얗고 창문 안은 여자 청소부의 검은 모습만 보인다. 바깥에는 여전히 깃발이 늘어지듯 펄럭이고 여자 청소부의 그림자는 바닥에 반사가 되어 두개가 되었다. 아무도 밟지 않는 바닥을 커다란 밀대로 닦으며 움직이는 모습이 순간 미끄러지듯 춤추는듯 했다. 사진을 찍었다. 깃발도 같이 넣어서.
어제 아가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비 오는게 멈추지 않을것이라고. 왠지 신경이 쓰여 날씨를 확인해보니 앞으로 10일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 비가 내린다. 그 아가씨의 말이 맞았다.
지루한 시간을 지나 비행기를 타고 다시 내리고 전차를 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그리고 다시 걸었다.
여행자의 성지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곳이다. 그 일대를 세바퀴 돌고 지쳐서 적당히 밖에 테이블이 있는 곳이 앉았다. 맥주를 시키고 내 뒤에 뒤에 앉아있던 남녀커플 한쌍중에 여자가 한국말로 내 맥주 주문을 받아준 이쁘장한 레이디 보이를 보며, 전혀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경멸감을 담은 이야기를 남자에게 해댔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세바퀴를 돌았지만 여기가 왜 여행자의 성지인지 나로선 이해 할 수 없었다. 담배를 다섯가치 피우며 거리를 봤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인다. 나쁜 의미로 찌질이를 모아놓은 3종 세트 숫컷 무리부터 시작해서, 늙어 여자로서 성적 매력이 거의 사라진 부인과 함께한 중년의 남자들과 웃는 표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잡상인들의 호객행위(은근히 신사적이다)와 뭐라도 있을까 싶어 흘러들어온 혼자 온 여자들과 혼자 온 남자들과 정신 없이 쿵짝거리는 음악 소리와 정체 되어있는 흐름들이 답답했다.
시간은 이미 밤이고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느낌이 들어 다시 두바퀴를 반복해서 걸었다. 난 이해가 안된다. 참 많이 다르지만 어딜가도 비슷하다. 배가 무척 고파서 볶음 국수와 돼지꼬지를 먹었는데도 모자라서 숙소도 돌아가는 길목에 있던 닭케밥을 먹었다. 맛이 없었다. 숙소 현관에 서서 담배를 두개비 연달아 피우고 음료를 사서 마시고, 오늘도 제법 걸어서 몸이 피곤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도착해서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컷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내일도 여기서 묵을테니 다시 한번 찬찬히 다시 걸어 보자. 라고 생각했다. 아는 동생에게 연락이 와서 잡담을 조금 했다.
그리고 샤워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