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2-16Km씩 걸었다. 발가락에조그만 물집이 생겼다. 한국에서 샀던 발목을 잡아주는 끈 달린 샌들의 옆 고리가 터졌다. 그렇게 털럭거리는 신발을 신은체 또 하루를 걸었다. 희안하게도 물집이 아프지 않다. 걷는 동선 중에 사람들에게 들었던, 먹어보라는 음식을 먹었다. 나로선 추천의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와 비슷한 것을 몇번 겪으며 새삼스레 이런일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어렴풋이 보였다. 길거리 지나가면서 우연하게 만나게 되는 음식들 중에 유일하게 만족 스러웠던 것은 갓 짜낸 귤과 비슷한 쥬스 였다. 시원하고 싸고 굵은 질감이 느껴지는 맛이다.
너덜거리는 신발을 그대로 둘 수 없어 마침 근처 한인 여행사에 들어가 근처에 신발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신발 수선방이나 구입 할 수 있는 곳을 물었다. 이 근처에는 전부 샌들 종류밖에 없다고 한다. 신발을 빌려 주겠다며 크록스 비슷하게 생긴 신발을 빌려주겠다고 한다. 무척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난 이 신발을 고치고 싶어 수선하는 곳을 재차 물었다. 시간이 맞지 않아 당일 수리는 하지 못했고 다음날 위치 찾지 못해 근처 양장점에 앉아있던 인도사람에게 물어 위치를
정확하게 찾았다. 무척 친절하게 알려주어 고마웠다. 찾아 고치러 갔다.
본드를 붙이고 구멍을 뚫어내고 실을 묶는 심플한 작업을 빠르게 했다. 인도사람으로 짐작되는 흰머리가 가득한 마른 얼굴의 영감님이 수리를 마치고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 받고 서로 잘 통하지 않는
타국어로 농담을 주고 받았다. 수리비는 무척 쌌다.
돌아오는 길에 양장점 인도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여행사에 들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이야기 중에 여행사 사장님이 그거 금방 다시 망가질것이라고 했다.
날은 많이 덥고 습도가 높았다. 이 나라 전체 국가 수입의 1/3을 벌어들이는 산업이 모여있는 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중 교통 시스템 중에 전철이 무척 궁금하여 굳이 전철 플랫폼까지 가서 관련 시스템이나 플랫폼 시스템의 형태와 표정,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 봤다. 어느곳에서도 흔하게 볼수 있는 특유의 표정이다. 약간 쓸쓸해질것 같은 기분이 드려고 하다가 어느덧 나도 그들과 비슷하게 되었다. 카메라 가방과 카메라를 어깨에 맨채 목적지에 도착하여 거리를 걸었다. 정신없는 네온사인과 음악과 게이트
키퍼들이 보인다. 거리 전체를 한바퀴 쭉 걸었다. 적당한 가게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흐물흐물 별 동작 없이 춤추는 아가씨와 투명 천장에서 매우 짧은 플레어 스커트를 두르고 팬티를 입지 않은체 춤을 추는 아가씨를 보고 그 안에 가득찬 남자들의 얼굴을 봤다. 지쳐보이는 남자는 없었다. 장난감 혹은 사탕가게에 들어온 아이들 표정 같다. 그리고 희안하게도 무척이나 해맑은 표정들이었다. 고개를 쉽게 들지 못하던 몇몇 서양인들도 수줍게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맥주도 한모금 하며 나름을 즐기는 듯 했다.
음악 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앉을곳은 가득차서 답답한데도 남자들의 표정은 해맑고 순수해보였다. 서양인 늙은 노부부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얼마동안 그 노부부를 유심히 살펴봤다. 몇분인가 지나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데 도대체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잠시 눈물이 날것도 같았고 깊은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그 노부부는 거의 미동도 하지 않은체 스테이지를 같이 보고 있었다. 이 느낌을 제대로 표현 할만한 적절한 문장이 지금 나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는 그
광경을 견디지 못하고 남은 맥주를 한번에 들이키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숙소에 들어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와중에 느껴진 미묘하게 불편한 기분을 털어내려 샤워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다시 마시고 또 갈곳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움과 동시에 비열한 외로움이 흘러넘치는 시간을 건너서 다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다음날 기분이 무척 이상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진을 시작한 이후로 바깥에서 카메라 없이 걸었던 것은 처음이였다. 걸음의 템포가 너무나 다르다. 기분이 좋지 못했지만 어쩐지 불안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배가 고파 뭔가를 먹었지만 여전히 별 맛은 없었다. 밥을 먹다 말고 도로와 가득찬 차와 사람을 봤다. 음식을 남긴체 값을 차르고 다시 길에 올랐다. 문득 걷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어딘가 적당히 앉았다. 쓰레기가 보이는 더러운 강물과 거기서 낚시를 하는 사람과 배가 지나간다. 날씨는 무척 화창하여 구름이 그림 같다. 기분이 좋지 않다.
담배를 많이 피웠다. 책을 무척 읽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마저 문득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시 한번 여행자들의 메카라고 하는 곳을 걸었다. 주스를 마시고 환전을 약간 하고 볶음 국수를 먹고 수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오른쪽 어깨가 허전했지만 단지 허전한것 뿐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약간 쓸쓸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채워 카메라 없이 하루를 보냈다.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찍고 싶은게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다가 그만 두었다.
다음날 카메라 가방과 카메라를 다시 어깨에 얹었다.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불쾌했다. 제임스 낙트웨이가 작업했던 곳에 갔다. 시장에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아이들을 많이 찍었다. 그렇게 무작정 걷다가 어느덧 학교에 흘러들어갔다. 아이들 표정이 한국과 사뭇 다르다. 호기심이 생겨 잠시 생각을 하고 학교 매점을 찾았다. 역시나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피로감과 씁쓸함이 살짝 씻겼다. 학교 안을 한참 돌다가 빛이 좋아 아무런 의미 없이 몇장 찍었다. 기분이 제법 괜찮다. 더 걷다보니 10대 미혼모 근절 캠페인 보드가 학교 축구장 옆에 크게 걸려 있다. 그 뒤를 넘어 가니 강이 보인다. 잠시 다리를 쉬고 아이들의 움직임과 걸음, 표정과 목소리를 목도 했다.
빛이 좋아 의미 없는 사진을 다시 몇장인가 찍었다. 참으로 덧없는 느낌이 드는데 이상하게도 약간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강으로 가서 조그만 배를 타고 반딧불을 보고 새까맣게 어두운 밤의 하늘속에서 파란색과 붉은색의 색을 뽑아서 사진을 찍었다. 마치 조각을 한다던가 금속을 정제하는 듯한 느낌이다.
오늘은 숙소 체크아웃 하는 날이었다. 내 신발은 며칠전 여행사 사장이 말했던 것 처럼 끈이 다시 너덜거리기 시작하고 있다. 조만간 다시 완전 끊어질듯 하다. 모든 것이 어지러워 숙소를 하루 더 연장하고 숙소에 있던 여자 두명이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여 가까운 시내로 나가 밥만 먹고 다시 돌아와서 담배를 몇 까친가 태워내고 무겁게 쏟아지는 잠에 나를 맡겼다.
그렇게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찍 서둘러 떠났다. 공항에서 몇시간을 보내는 동안 사람들을 봤다. 그간 있었던 일을 복기 했다. 사진들을 보고 운율에 올라타기 위해 셔터를 뉼러야만 했던 사진들을 정리했다. 메모리 여유가 약간 늘어난듯 했다.
사람이 그렇게 많던 공항임에도, 아무도 없다고 해도 좋을만큼 조용하고 멍청하도록 넓고 조명이 없어 새벽처럼 어두운 공항 2층 자리를 발견했다. 입을 닫은체 한시간 넘도록 빈 공간을 지켜봤다. 유리벽 너머 손톱만하게 깃발이 펄럭인다.
사진을 찍고 1층에 다시 내려가 맥주캔을 하나 사곤, 다시 그자리에 돌아와 앉아서 기묘한 광경을 목도 했다. 비오는 날 에어컨이 미지근하게 나오는 수족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끄러지는 듯한 몸으로, 아무도 밟지 않은 바닥을 청소하는 모습이 보인다. 창문 밖은 천하가 하얗고 창문 안은 여자 청소부의 검은 모습만 보인다. 바깥에는 여전히 깃발이 늘어지듯 펄럭이고 여자 청소부의 그림자는 바닥에 반사가 되어 두개가 되었다. 아무도 밟지 않는 바닥을 커다란 밀대로 닦으며 움직이는 모습이 순간 미끄러지듯 춤추는듯 했다. 사진을 찍었다. 깃발도 같이 넣어서.
어제 아가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비 오는게 멈추지 않을것이라고. 왠지 신경이 쓰여 날씨를 확인해보니 앞으로 10일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 비가 내린다. 그 아가씨의 말이 맞았다.
지루한 시간을 지나 비행기를 타고 다시 내리고 전차를 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그리고 다시 걸었다.
여행자의 성지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곳이다. 그 일대를 세바퀴 돌고 지쳐서 적당히 밖에 테이블이 있는 곳이 앉았다. 맥주를 시키고 내 뒤에 뒤에 앉아있던 남녀커플 한쌍중에 여자가 한국말로 내 맥주 주문을 받아준 이쁘장한 레이디 보이를 보며, 전혀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경멸감을 담은 이야기를 남자에게 해댔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세바퀴를 돌았지만 여기가 왜 여행자의 성지인지 나로선 이해 할 수 없었다. 담배를 다섯가치 피우며 거리를 봤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인다. 나쁜 의미로 찌질이를 모아놓은 3종 세트 숫컷 무리부터 시작해서, 늙어 여자로서 성적 매력이 거의 사라진 부인과 함께한 중년의 남자들과 웃는 표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잡상인들의 호객행위(은근히 신사적이다)와 뭐라도 있을까 싶어 흘러들어온 혼자 온 여자들과 혼자 온 남자들과 정신 없이 쿵짝거리는 음악 소리와 정체 되어있는 흐름들이 답답했다.
시간은 이미 밤이고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느낌이 들어 다시 두바퀴를 반복해서 걸었다. 난 이해가 안된다. 참 많이 다르지만 어딜가도 비슷하다. 배가 무척 고파서 볶음 국수와 돼지꼬지를 먹었는데도 모자라서 숙소도 돌아가는 길목에 있던 닭케밥을 먹었다. 맛이 없었다. 숙소 현관에 서서 담배를 두개비 연달아 피우고 음료를 사서 마시고, 오늘도 제법 걸어서 몸이 피곤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도착해서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컷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내일도 여기서 묵을테니 다시 한번 찬찬히 다시 걸어 보자. 라고 생각했다. 아는 동생에게 연락이 와서 잡담을 조금 했다.
그리고 샤워를 했다.
지금까지 내가 속고 살아온게 한두개가 아니지만, 그 리스트에 쌀국수를 추가하게 되었다.
물론 쌀국수가 맛있어 봤자 결국 쌀국수 일 뿐이다. 나에겐 이 것이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안심감이 드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안심감이 드는 종류의 것은 대부분 \”최소한의 기본\” 혹은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될때\” 가 지켜질때 나는 그렇게 느낀다.
가게안은 엉망진창이다. 위생을 따지듯 묻는 사람이 우스워지는 모양새다. 테이블은 4개. 나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확실히 주기 위해서 가게안을 두리번 거리며 말 없이 테이블에 앉았다.
안에는 대략 10대 중반의 아이 2명 후반의 아이가 1명 있고 후반의 아이는 문신을 했다. 게다가 전부 상의 탈의상태다. 보는 내가 호쾌해지는 기분이다.
그 나이때가 늘 그렇듯 불만 가득한, 하지만 생기있는 얼굴로 재료를 다듬고 생고기를 얇게 썰어내고 있었다.
땀에 검게 찌든 줄무니 난닝구(런닝이 아닌것이다), 피부는 붉고 검게 되어있고 팔뚝은 우람하면서도 쭉뻗은 근육을 가지고 있는 주인장과 눈이 마주쳤다.
사실 메뉴가 3-4가진가 있긴 했지만, 무심하게 면을 삶고 국물을 올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줬다. 극히 별볼일 없는 모양새의 쌀국수다. 언제나 그랬듯 후각을 총 동원해서 맛을 미리 찾는다. 전체적인 동선을 따서 그림을 그리는 듯한 감각이다. 그렇게 먼저 코로 맛을 보고, 그릇채 들고 국물을 한모금 마셨다.
허어.. 라며 한숨이 나온다. 이해가 안되어 다시 한모금 더 마신다. 역시 이해가 안되어 이번엔 면을 따로 먹었다. 그래도 이해가 안된다. 어째서 이렇게 별 볼일 없는 맛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거리게 하는지.
그래서 깊숙히 너무나 기뻤다. 그제서야 다른 양념들이 보인다. 양념에 코를 대어 냄새를 맡는건 잘 하지 않는다. 후에 다른 사람이 먹을때를 생각한 최소한의 예의다.
고민이 되는데, 일단 무난한 붉은 고추를 넣어봤다. 국물의 표정이 한층 밝아진다. 기뻤다. 약간 점도가 있는 액체에 담겨진 마늘편을 몇개 넣어보았다. 국물에서 깊은 표정이 만들어진다. 많이 넣으면 액체(식초류라고 추정)의 맛이 국물의 담백한 맛을 마스킹 할 수 있으니 주의하는게 좋으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놀랍다.
고기는 양지살로 추정된다. 매우 노련한 솜씨로 얇고 흐트러짐 없이 삶겨져있다. 그런데 이게 미리 삶아놓은게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지금껏 국물류에 담긴 이토록 제대로 된 양지살은 처음 먹어본다.
국물까지 다 비우고 난닝구 주인장에게 감사와 경의를 담아 목례를 했다. 묵묵하고 무표정한듯한 얼굴에서 나오리라 생각하기 힘든 활짝핀 웃음을 보여주었다.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강렬히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끝까지 난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무척 기뻤다. 엄지를 치켜들었다. 주인장의 표정이 어린아이 같던 얼굴속에 주름이 보인다. 주름이 같이 웃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어쩔수 있나. 난 원래 찌질한걸.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변으로 나가려하는데 계속 마음이 걸려 간판을 찍었다. 나의 쑥쓰러운 미련이다.
7시간을 걸었다. 매연으로 질식할것 같다. 시끄럽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오토바이가 너무 많다. 치일뻔 했는데 5분후에 적응했다. 흐름을 익힌 뒤, 도로 가운데 가까이 가서 나에게 달려오는 사진을 찍었다.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다.
사람을 찍었다. 앞 모습. 뒷 모습. 옆 모습을 찍었다. 길거리에서 맥주를 마시고 구깃구깃 숨겨놓은것 처럼 옆모습이 이쁜 여자를 찍었다.
갑자기 비가 엄청 쏟아졌다. 내 자리 낮은 편 난닝구에 반대머리가 된 살찌고 붉고 검은 갈색을 가진 터프한 아저씨가 담배를 피며 맥주를 마신다. 그러다가 난닝구 마져 벗고 빗속에서 목욕하듯 몸을 씻겨낸다. 그리고 또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마신다. 눈이 날카로운 육식동물의 눈이 되어간다. 그렇게 점점 상승하다가 완전한 육식동물의 눈이 된 정점에서, 어딘가 지독하게 외롭고 고독한 눈이 순간 겹쳐 보였다. 살의를 품은 눈속에, 동시에 빗물이 눈동자로 들어가고 빗속에서 우는것 같았다. 희안하게도 따뜻해 보였다. 사진을 찍었다.
비가 그칠기미가 없어 맥주를 마시며 사람들을 보고, 옆자리에 아가씨와 이야기를 했다. 비가 오는게 절대 멈추지 않을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순간 그 아가씨와 나 사이의 공간이 하나로 합쳐진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비가 계속 오니 나갈수도 없었다. 카메라가 있어서 나도 나갈수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바로 후회를 했다. 재빨리 값을 치르고 2-3분 후에 도망치듯 빗속으로 도망갔다.
무척 피곤해서 잠시 쉬었다가 밤 1시까지 걸었다. 거리엔 아무도 없다. 경찰차가 한대 보이고 아주 드문 드문 오토바이에 탄 남자, 혹은 여자가 나에게 묻는다. 마약, 마리화나 필요하냐 라던가 이쁜 여자 있으니 가자 라던가. 개중에 담배를 달라고 하는 못생긴 여자가 있었는데 담배를 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예상했던 대로 마약, 마리화나, 이쁜 여자 소개였다. 난 다 필요 없다. 좋은 시간 보내라 했더니 오토바이 엔진을 끄고 날 살짝 살짝 만지다가 뒤에서 내 자지를 만지려고 한다. 물건이 괜찮아 보이는데 좀 써보지. 라고 하면서 몇번 이나 시도하다가 결국 만진다. 잡히기 싫어서 허리를 구부리는데 바지 주머니 근처에서 순간 이물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몸을 밀치고 얼굴을 봤다. 난 얼굴을 봤는데 자기 손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 손을 내보인다. 난 마리화나도 마약도 필요 없고 여자도 필요 없다. 지금 바로 경찰을 부르겠다. 라고 하니 태도가 급변한다. 한번 더 이런게 눈에 보이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하니, 주위를 둘러보며 살피다가 경찰차가 눈에 보였다. 돌아가라고 말하고 급 피곤해진 기분이 되었다.
내일 쌀국수를 먹어야지. 라고 생각해서 몇시에 여는지 알아보니 오전 10부터 오픈이다. 난 아침 8시에 나가야 한다.
씨발, 다 허무하다.
틀림없이 메모리가 모자랄 겁니다. 라는 이야기를 세번 듣고,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게다가 바깥에 나가서 장기간 촬영할때가 간혹 있으니 이참에.. 라는 것도 있었다.
화요일 저녁에 메모리를 인터넷에 주문했다. 충분한 시간이리라. 그러나 수요일 발송하지 않고 목요일에 발송을 했는데, 업체가 평소 발송 하던 택배사가 아닌 우체국으로 보냈다. 금요일은 광복절. 토요일은 우체국이 일하지 않는다. 결국 월요일 아침 7시 10분에 부산우체국엘 직접 가서 받았다.
그리고 그 소동 중에 몇년동안 나를 달래주던, 가격이 그리 싸지 않은 이어폰을 분실했다. 순간 온 세상에 음악이 사라졌다. 이루뭐라 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멍하게 만든다. 리무진 버스를 타는데 남은 시간을 확인하여 계산하고 황급히 다시 돌아가 2년 가까이 구석에 두었던 이어버드 이어폰을 찾아냈다.
음악이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이전 이어폰과 달리 외부 세계가 자꾸 침범해 들어온다.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음악이 사라지는 것 보다는 천배 만배 낫다.
출발하기 하루 전. 아무리 찾아도 반팔티가 없어서 유니크로에서 같은 디자인에 밝기만 다른 회색의 싸구려 티를 두장 샀다. 간밤에 배낭을 싸던 중, 새로 산 반팔티 한장의 사이즈가 달랐다. S사이즈라니.. 흥미본위로 매장에서 이 사이즈대의 다른 옷을 시착 해봤는데 무척 웃긴 모양이 된다. 영수증을 이리저리 찾았지만 희안하게도 보이지 않는다.
출발날 부터 비가 신나게 내린다. 시작 부터 액땜 아주 잘했다. 배가 너무 고프다. 잠이 온다.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으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 교황 프란치스코
\’신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신이 용서할 수 있느냐\’ 라는 무신론자 유제니오 스칼피라의 질문을 받고.
“희망에 휘둘리는 사람은 잘못된 길로 가기가 쉬워요. 절망적인 순간에 너한테 필요한 건 희망이 아니라 의지란다.”
“올곧은 의지는 너를 진실된 길로 이끌어줄 것이다! 헤헤.. 마지막 말은 이게 맞죠?”
“그런데… 넌 그런 말을 입에 담고도 부끄럽지 않니?”
“…네??”
횡경막과 위장과 명치 사이, 아마도 있을 법한 어떤 신체기관이 아프게 느껴질때가 있다. 짖찢겨내는 고통은 아니요 단지 무엇인가를 은근히, 하지만 분명하고 확실하게 쥐어짜내는 그 감각. 그렇게 압력이 조금씩 강해질수록 나의 안구는 부풀어 오르며 비릿한 압력이 눈을 터질것 같이 만든다.
일년에 몇십번씩이나 이런 일이 있다. 그때 마다 하는 것은 다르다. 그나마 책을 읽을 수 있는 정도라면 무척 감사한 일이요 음악을 듣고 가라앉힐 수 있다면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이럴땐 뒤에 남은 일 따위 상관없이 무작정 어딘가로 숨어 사라지고 싶은 충동이 일때가 있다. 그리고 난 이미 그것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것은 정말 내가 숨어 사라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깊이 찾아 발견 해주었으면 하는 모순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잠자코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
한낮의 정신 없었던 바쁜 일들과, 남은 일들과, 해야 할 일들과, 그리고 이루어졌으면 하는 일들이 검은 원형의 엷은 고리처럼 내 머리 위에 떠있는 듯 하다. 이대로 모든 것을 그만 둔다고 한들 아무 것도. 아무 것도 달라질 것이 없을터인데, 가르다란 부지깽이로 땅을 옮아매듯 내리치듯 무엇이 그리 미련이 있는 것일까. 비린 냄새가 나는 나의 안구를 이리저리 굴려 창문 넘어 멀리 있는 단 하나의 가로등과 마주쳤을때, 아마도 있을 법한 어떤 신체기관에서 툭 하고 보낸 날카로운 통증이 나에게 말한다.
천사의 알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오시이 마모루는 천사의 알 이후의 모든 작업은 사실상 천사의 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무척이나 앞서갔고, 참으로 오래된 낡은 이야기 이며 아마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구름이 두껍게 잔뜩끼어 있는 밝은 낮에 갑자기 비와 천둥이 친다. 쏴아아 하는 소리가 마음을 진정케 한다. 빗 소리는 쌔졌다가 약해졌다가 길게 뻗었다가 동그랗게 웅크렸다. 어딘가 거리를 알수 없는 자동차의 젖은 발통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먼 산에서 들려오는 듯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빗소리가 무척이나 사실적이라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사실적인게 아니라 정말 사실이고 실제로 빗물은 명징히 길바닥에서 부서지고 있다.
그것이 나는 무척이나 이상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