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두 개의 카메라 가방이 있다.
하나는 17년 정도 된 원색의 형태가 겨우 남아있는 촌스런 네이비 블루의 가장 큰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카메라 가방이다.
또 하나는 같은 계열의 것이긴 하지만 크기가 상대적으로 컴팩트 하고 가볍다. 게다가 멋들어지게 왁스처리까지 되어있고 제법 훌륭한 느낌을 주는 마음에 쏙 드는 갈색의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카메라 가방이다.
짐을 정리하다가 이 둘 중 어느 것을 들고 갈까를 4분 정도 가만히 앉아서 생각 했었던 것 같다. 왜 했었던 것 같다. 라고 하냐면 이 느낌은 생각이라기 보다는 나의 스탠스가 어떻느냐를 열어 제껴 보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가방\’ 을 선택한다는 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고 사진 장비를 꾸려야 하는 가방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고려 할 수 있는 명확한 팩터들이 있고 논리적인 조합에 따라 알맞은 가방을 선택하면 될 그닥 힘들지 않은 심플한 일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가방이라는 것은 걸음의 형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걸음의 형태는 어떠한 마음과 무게와 세계를 마주하는 하나의 결정된 모습이기도 하다.
이동성을 생각하고 내가 갈 곳의 날씨와 걸어갈 곳을 생각하고 찍어야 할 것과 멈춰서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명확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써왔던 네이비 블루의 가방은 이리저리 떨어지고 닳아빠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결정은 아직 일 년도 채 되지 못한 작고 가볍고 기능성이 좋은 가방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명확하고 합리적이다.
4분 후 내가 여권을 집어 넣은 가방은 오래된 네이비 블루의 가방이었다. 여기에 25mm, 35mm, 50mm 단렌즈를 넣었다.
그리고 불과 수개월 전과 달리 가방을 선택해야 하는 이 상황이 나에겐 혼랍스럽기 그지없다.
반사적으로 등받이 의자를 가지러 들어갔다.
너무나 익속한 장소가 형언 할 수 없을 만큼 낮설었고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실제임과 동시에 현실미가 떨어졌다.
내가 있을 곳은 지금껏 오직 나를 중심으로 한 공간만을 만들어 왔었던 나에겐. 이 공간만이, 유일하게 허락한 예외였다. 이런식의 익숙함과 낮설음은 처음 겪는 것이였고 심장과 위장을 비틀어 쥐어짜이는 느낌, 그리고 지금은 사라져 느끼지 못해야 할 오래된 담낭의 고통이 생생히 그대로 그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난 저 공간으로 부터, 심지어 물리적으로도 도망칠 수가 없다.
사흘간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저 공간에서 오늘 처음 눈을 감아야 한다.
그리고 핏기가 가시지도 못한채 사방에 튀어버린 육편같은 생각들을 저 공간 속에서 다시 내 머리와 마음속 책장에 하나씩 정리 해야 할 것이다.
6년
나의 6분의 1
태양은 이미 높이 떴고 이름 모를 새들이 이슬먹은 소리로 지저귄다. 노도에서 들리는 빗자루 쓰는 소리, 새벽의 정적을 날려버리는 자동차가 공기를 부수는 소리. 원두가 갈려나가는 소리 그리고 커피메이커의 낮고 큰 부글거리는 소리.
6월 3일 오전 6시 56분.
마지막으로 목욕탕에 보내고 싶었었다.
인간들은 1500년전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했고, 500년 전에는 지구가 편평하다고 생각했어. 5분 전에 너는 지구에 인간만 사는줄 알았지. 내일은 어떤 진실이 기다릴까?
5년 동안 이날을 기다렸다.
투표 용지에 도장을 찍는데 순간 뭔가 조용히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투표지를 정확히 가운데로 접고 투표함 입구에 기표지의 모서리를 살짝 대고 2초간 그대로 있었다. 둥그런 한숨을 쉬고 기표지를 넣었다. 그 모습을 그대로 옆에서 지켜본 투표함 관리인이 나를 보며 엷은 미소로 눈인사를 했다.
나도 눈인사로 화답하고 투표소를 나섰다. 귀가 깨질듯 시려웠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시간이 되었는데도 택배 아저씨가 오지 않아 조금씩 초조해져갔다. 생각해보면 나에겐 그럴 이유가 그리 없다. 어찌 되었건 시간 안에 올 것이고 건네주면 된다.
침착하기가 힘든 기분이 자꾸 마음을 불편케 한다. 결국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고 마침 근처에 있어서 건네주었다. 8년간 나의 시간이 저며든 녀석이 노란색 골판지 상자속에서 사라졌다. 택배 아저씨는 항상 바쁘다. 마지막 인사를 할 사이도 없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카메라를 보낼 때 이런 마음은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의 깊은 안쪽엔 사진도 조금 변해갈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잡은 인류의 마지막 F는 마치 내 손바닥과 카메라가 그대로 녹아 붙은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약간 서글픈 기분이 든다. 필름을 넣지 않은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셔터를 누른다. 항상 똑같은 소리다.
8년간 단 한번도 다른 소리를 낸적이 없는 잠결에도 구분 할 수 있는 소리다. 셔터를 누를때 마다 뽀득 거리는 모래를 맨발로 밟아 흡수 되는 듯, 그러나 분명히 지탱이 되는 셔터의 진동. 몇번이고 셔터를 누른다.
어째 쓸쓸해지는 기분이 들지만 별 수 없다. 상당히 고민하고 이해하고 무엇보다 납득을 해버렸기에 더 이상 머물수만은 없겠지.
렌즈도 흑백 필름에 이상적이였던 일본 생산 버전의 오래된 50미리 1.4 렌즈를 처분하였다. 특유의 노란끼가 감돌기 때문에 흑백에 있어서 분위기가 신형 50미리에 비해 참으로 좋았다. 그 자리를 대신하여 다소 차가운 색감과 높은 해상력을 가진 50미리 1.8 렌즈를 주문 하였다. 물론 사전에 데이터 수집과 실 사용을 한 뒤에 충분한 납득을 거쳐 선택 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쓸쓸한 기분이 든다.
Nikon F6를 장터에 내놓았다.
장터에 내놓기 위해 사진을 찍고
셔터막 보호를 위한 플레이트를 올려놓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8년 전 이와 똑같은 일을 했었다. 그때도 날이 추운 겨울의 즈음 이였다.
이 카메라가 다른 사람의 어깨에 올려져 있는 것이 쉽게 상상 되진 않는다. 긴 시간을 함께 하고 많은 곳을 함께 했고 많은 것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조용한 전우 같은 느낌 이였다. F6의 경우 F5에 비하면 조금 더 살가운 느낌 이였지만 니콘의 플래그 쉽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용함은 혈통으로서 조용한 것이다.
F7이 나올 올해엔 아무런 발표가 없었고 8년전 최초로 예감 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F7은 나오지 않았고 Nikon F6는 인류의 마지막 필름 플래그 쉽 35mm SLR 카메라가 되었다.
필름실에 남아 있던 Tri-X 400의 남은 컷들을 차근히 찍어 갔다.
F6의 마지막 컷을 눌렀다.
마음의 반응에 바로 반응 하는 셔터 버튼.
소리.
강렬한 속도.
조용히 흡수되는 진동.
그 이후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언제나 묵묵히, 확실하게 필름을 감아내는 모터의 소리.
그리고 필름 크랭크의 회전.
삶이란 때론 태풍의 눈과 같아서
정신없이 몰아치다 갑자기 조용해지면 더 무서운 법 인듯 하다.
그렇게 죽지 않고 태풍이 지나가고 그렇게 견뎌낸 후에 주위를 보면
항상 그렇듯 많은 것들이 망가져 있고 부서진 흔적들이 남기 마련이다.
아연실색하여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면
언제 태풍이 왔었냐는 듯, 하늘이 파아랗다.
태풍의 눈 속에 봤었던 그 하늘이다.
그 하늘은 내 머리 위를 죽을때 까지 감싸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것은
사실 그 하늘은 아무 관계가 없었으며,
무엇을 우선으로 하여
다시금 살아가야 하는 가를 되새겨 볼
좋은 시간이 왔다는 것 뿐이다.
요상한 날이다.
낮엔 매미가 울고
밤엔 귀뚜라미가 운다
귀뚜라미가 잠을 자면
쓰르라미가 울고
다시 낮엔 매미가 운다.
따뜻한 커피에
차가운 콜라를 섞은 듯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