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df_Mutter

소름

키보드 근처에서 모기가 힘 없이, 정신 없게 낮은 높이로 왔다갔다 하길레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딱 하는 소리가 들리고 손가락엔 모기의 몸뚱아리가 통채로 짓이겨진체 선연한 붉은 핏자국과 비늘 같은 것이 가루처럼 붙어 있었다. 휴지로 암놈 모기를 닦아내고 책상을 보니 아주 선명한 붉은 피가 \’퍽\’ 이라는 단어를 그림으로 그리듯 말라붙어 있었다.

감도를 400으로 올리고 60분의 1초로 맞춘 한도 안에서 최대한 조리개를 조여서 핏자국을 두컷 찍었다.
첫번째 컷은 핏자국을 살짝 전면에 맞춘것이고 두번째 첫은 핏자국의 몸통에 맞춘 것이다. 휴지로 남은 핏자국을 닦아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저기 내 등 뒤에서 보고 있다.

고양이와 개의 시간

삶 전체에 있어서 인간으로서 변하게 된 일이 두번이 있다.
어떤 이유나 근거는 없지만 몸 전체를 관통하듯 지나가는 직감 같은 것이다. 나는 그곳에 가야만 한다.

주변에 아무런 말 없이 실종된듯 사라지고 간 곳은 땅끝 마을이었다. 여인숙 같은 모텔에서 매일 저녁 싸구려 위스키 한병 통채로 몇번만에 둘러마시고 필름이 끊어진적이 있었다. 몇일 후 필름을 현상 해보니 그 와중에서도 뭄을 가누지 못해 바닥에 걸린채 카메라를 꺼내서 이빨을 파랗게 드러내고 소리를 지르는 짐승의 셀프 포트레이트가 찍혀있던 것을 보았다. 다음날 산에 올랐다가 해가 지기 전에 하산 하려던 중 다리의 모든 근육이 풀리고 단 한방울의 힘도 남아있지 않게 된체 그대로 카메라 가방과 함께 바닥에 고꾸라졌다. 시간이 흘러 사방은 차츰 어두워지고 어디선가 짐승과 새의 울음이 들린다. 어쩌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힘을 다해 다시 일어서 보았지만 다시 고꾸라졌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 질질 끌리듯 오랜시간 팔로 기어서 대로에 왔을땐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저 멀리서 보이는 불빛만 보였다.

두번째는 오다이바의 대관람차였다. 그 전까지 해외 한번 나가보지도 못했고 그럴 형편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이상하게도 나를 인도하듯 그곳에 가게 되었다. 막상 관람차 안에선 아무 일이 없었고 그곳을 벗어나 돌아가는 열차 플랫폼의 구멍 뚫린 스틸 의자에서 다시 한번 변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의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세번째가 왔다. 그곳에 갈땐 태풍이 불면 제일 좋고 비도 좋다. 그 곳에서 어떤 내가 튀어 나올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가야만 한다. 선택은 커녕 도망칠수도 없다. 나의 직감이 그리 말했다.

태풍이 온다고 했다. 일본 기상청의 태풍 진로 예측은 학창시절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태풍의 진로 방향 원리의 도식도 처럼 우아한 커브를 그리며 도쿄만을 향했다. 동생의 도움으로 급하게 비행기 티켓을 받고 몇일 동안 작업실을 비워둘 동안 해야 할 일을 하루만에 모조리 해치웠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일과가 끝나고 카메라 가방을 고르고 렌즈를 골랐다. 좀체로 잠이 오질 않는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겨우 한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십여일간 매일 같이 몇건씩이나 계속 되는 나쁜 우연으로 심신이 거의 걸레가 된 몸을 질질 끌고 아침 8시 55분에 오는 리무진 버스를 정류장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정류소에는 누군가 묶어 놓은 철제 바구니가 달린 녹슨 자전거가 있었고 그 바구니엔 곱게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휴대폰으로 기상청을 다시 확인해보니 태풍 진로도의 그림은 도쿄만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듯 왔다 갔다 하다가 멈춘듯 보였다.

그곳에 가기 까지 모든 조건을 쉼 없이 클리어 하고 신주쿠로 가는 기차의 유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아.. 비 다.\’ 라고 되지 못한 소리로 말했다. 신주쿠 역에 도착하니 태풍의 비는 아닌 일상과 비일상 사이의 비가 왔다. 소리, 풍량, 풍향, 무게, 강수량 모든게 마치 나를 위해 준비 된것 같았다. 어서 오라고. 우산을 사기 위해 플랫폼을 뒤졌으나 쉬이 보이지 않는다. 루미네 건물 안쪽까지 봤으나 우산 파는 가계는 보이질 않아 조바심이 생겨 바로 비를 맞고 가려고 하니 30미터 쯤 거리에 복권과 신문을 파는 손바닥만한 가계가 보여 부산한 인파속을 뚫고 도착하여 우산을 사고, 한달음에 신주쿠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오후 4시 8분.

입장권을 사기 위해 자판기를 보니 전부 꺼져있고 게이트도 막혀있다. 순간 너무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는데 육십은 넘어보이는 공원 관리인이 패장 시간이 4시라고 한다. 여권을 보여주며 여기를 오기 위해서 한국에서 왔다. 라고 하니 아무튼 안된다고 한다. 어떻게든 꼭 가야만 한다 라고 말해도 그런건 난 모르겠고 아무튼 안된다는 말을 반복한다. 나의 인생이 걸려 있는 문제다. 꼭 들어가야만 한다. 라고 했지만 게이트에서 물러서라고 한다. 그제서야 내가 게이트의 선을 넘었고 그제서야 부저가 울리는게 귀에 들렸다. 여기서 조금 더 하면 경찰을 부를 태세다. 단지 8분 이였다. 융통성이 전혀 없는 육십대의 공원 관리인이다. 순간 전력을 다해 몸통으로 밀어치고 뛰어가려는 순간 억수 같은 비가 내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겨우 붙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체 근처에서 십 몇분 동안 서있었던것 같다. 카메라 가방의 낡은 파란색이 비에 젖어 검게 되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온 몸과 마음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에서 어딘지도 모를 곳을 걷다가 처마가 있는 건물 밑에서 동생에게 나를 구해달라는 문자를 보냈지만 문자가 계속 가질 않는다. 여섯번, 일곱번. 계속 해도 전송되지 않는다. 몇번인가 했을까 전송 되긴 한것 같은데 답신은 어쩐지 맥락이 틀어진 이상한 말이 오고 있다. 일 보라고 답신을 보내고 넋이 나간 상태로 한 시간 정도 걸어 전날 예약 한 캡슐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예약을 했으므로 바로 여권을 보여주고 필요한 내용을 적는데 로비 직원이 뭔가 분주하다. 노트북을 옆으로 보여주며 전산 시스템에 예약이 걸려있지 않은것으로 나온다며 다른 서류 따위의 것을 계속 찾고 있다. 그렇게 몇분 동안 이리저리 기록을 찾았으나 어찌 된 일인지 예약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식의 일이 십여일 동안 매일 다양한 형태로 나를 괴롭히고 간다. 자리가 남는게 있다고 해서 다행스러웠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타월 한장과 매직으로 508 이라 적혀있는 락커룸 키를 받고 5층으로 올라갔다. 스물거리는 숫내와 암내 그리고 습기찬 공기가 뇌에 박힌다. 나무로 된 캡슐은 관 같았다. 두꺼운 커텐으로 막혀있는 입구를 열자 그 속은 적막을 졸여놓은 듯한 어둠이 있었다. 조명이 보이지 않아 머리를 먼저 들이 밀어 꼬마 전구를 켜고 앉으니 머리는 겨우 닿지 않는 정도의 높이. 습기로 눅눅한 배개와 시트의 냄새 그리고 검게된 가방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얼마간 있었는지 모르겠다. 억지로 근육을 움직여 얇디 얇은 폭의 락커에 가방과 카메라를 우겨놓고 자리에 돌아와 관속에 다시 누웠다. 저녁 6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다. 어딘가에서 영어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렸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이 떠졌다. 꼬마 전구의 빛에 눈이 아프다. 밤 12시를 조금 넘겼다. 불을 끄고 다시 잠들었다. 잠든 중간 나도 모르는 사이 울었던것 같다. 다시 잠이 깨니 시간은 새벽 3시였다. 다시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졌다. 십여일 중 가장 깊은 잠에 빠진듯 했다.

눈을 뜨니 아침 8시가 되었다. 꼬마 전구에 불을 넣고 그대로 관 같은 천장을 한 동안 그대로 보았다. 나무 냄새와 니스 냄새와 눅눅한 습기와 외국인의 냄새와 비의 냄새가 났다. 로비로 가서 핸드폰을 충전하고 진흙같은 동결 건조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서네대 피웠다. 어제와 달리 조용한 비가 내린다. 기상청을 확인 했다. 표본 연구소에서 쓰는 박제용 고정 핀으로 박아놓은듯 태풍은 도쿄만 바로 앞에 계속 멈춰있다 사라졌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여기서 신주쿠 공원까지 바로 갈 수 있는 최단 루트를 찾고 가방과 우산을 챙겨 빠른 걸음으로 다시 신주쿠 공원 입구에 서는 순간

정확하게 비가 멈췄다.

우연이겠지만 이쯤 되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라는 기분도 허탈한 웃음도 나지 않는다. 입장권 자판기에 이백엔을 밀어넣고 티켓을 쥐고 어제 그 위치의 게이트로 갔다. 그 늙은 관리인은 보이지 않고 대신 낡고 깨끗하고 넓은 부스 안에서 상냥하게 웃고 있는 여자 안내원이 날 보며 티겟은 이쪽으로 넣으시면 된다고 한다.

그 장소는 그 곳에 명확하게 있다. 그 곳으로 가는 동안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신주쿠를 벗어난 곳에서도 보이는, 땅 깊숙히 뿌리박은체 일본 전역의 돈을 쉬지 않고 꿀럭 꿀럭 빨아들이는 듯한 도코모 타워가 거대한 나무 병풍 뒤에 멀리 걸려 있어 기묘한 낙차감을 만든다. 깊게 들어가니 흙과 풀 그리고 물먹은 나무 냄새가 나를 덮친다. 길목 중간 중간 몇개의 의자가 있었고 대부분 마치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건 썩은 자리였던 것이다. 그러게 비현실적으로 둘러싸인 나무와 잎들 그 사이에 썩은 의자가 조용히 바닥에 박혀 있었고 물의 냄새가 코를 찔러 왔다. 확연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가까이 갈 수록 심장의 박동이 올라감을 느낀다. 길게 늘어선 끔찍한 두려움과 통증의 양단 사이를 외줄 타기로 걸어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한걸음씩 걷다가 갑자기 느낌이 온다. 낮게 흐르는 길목과 굽이 흐르는 뒤가 전혀 보이지 않는 나무의 벽과 목덜미를 잘라낼듯한 낮은 나무잎들을 지나고 나면 그 곳이 나올 것이다. 더 이상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오히려 주먹으로 때리듯 나의 등을 떠민다.

그 곳은 그곳에 있었고 저기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었다. 이미 비가 그치고 두꺼운 잿빛 하늘이 아무런 소리 없이 멈춰 있다. 무표정하게 담배를 반갑 정도 태웠을때 쯤 주위에 사람이 그 장소를 떠나고 모두 없어졌다. 그 순간 내 의지와 아무런 상관 없다는 듯 몇년의 시간 동안 눌러왔던 모든 것들이 천천히 아래 속눈썹에 억지로 머물다가 넘처흐르는 순간 각혈 하듯 울움이 터졌다. 가방에 있던 휴지로 눈을 닦고 코를 풀고 휴지통에 버리는 것과 동시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른 사람이 천천히 들어왔다. 어쩌면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을 저 멀리서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는 여전히 오질 않았다.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핸드폰에 들어 있는 888곡의 음악을 셔플모드로 해놓고 다음 곡 버튼을 한번씩 눌렀다. 지금 내 마음에 들리는 음악이 지금의 나를 알려 줄것이라 생각 했기 때문이다. 결국 다음 버튼을 887번 눌렀고 마지막 곡은 무슨 음악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단지 \’뭐야 이건..\’ 이라고 말했던듯 했다. 그러는 동안 남아 있던 나머지 반갑의 담배가 다 타들어갔다. 몇 시간 동안 그곳에 있었는지 계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늘은 밝고 어두운 회색으로 명확하게 멈춘듯 소리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야마노테선을 타고 시부야로 갔다. 지구상에서 제일 사람이 많이 건너는 혼잡한 역전 교차 건널목이 있는 그곳에 가만히 서 있으면 내 뒤에서 사람이 앞으로 사라지고 동시에 내 앞으로 사람이 다가오다 뒤로 사라진다. 그리고 내 심장 앞에는 약 30센치 정도의 자그마한 공간이 생긴다. 그리고 내가 어느 방향으로 걸으면 한쪽은 사람이 멈춰 있고 내 앞에 오는 사람은 빨리 사라진다. 몇시간이고 서서 그곳을 찍고 싶었지만 그때 마다 일행이 있어서 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있을수가 없었다. 시부야 역전에 도착하니 살짝 해가 보인다. 날씨가 후덥지근 해지고 살짝 땀이 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 앞의 30센치 만큼의 거리, 30센치 만큼의 공간. 주의 깊게 카메라 노출을 설정하고 포커스는 존 포커싱으로 하되 모처럼 초고화소의 카메라니까 회절이 심하게 생기지 않는 한도 안에서 까지 충분히 조리개를 조여놓고 그 자리에 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사람이 별로 없다. 아니, 다른 곳이라면 이것도 이미 충분히 많은 수의 사람이지만 시부야라고 한다면 너무 조용할 정도다. 침착하게 끈기를 가지고 턴이 올때마다 찍었다. 하지만 느낌이 어쩨 희안할 정도로 똑같다. 카메라 가방의 무게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면서 지친다. 하치공 동상 주위에 불편한 스텐레스 바 의자에 몸을 맡겨 앉아 쉬었다.
그때 내 옆자리에 살짝 이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앉더니 흡연 구역이 아닌데도 하이라이트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이라이트를 피워서 그런지 눈 두덩 아래 언저리가 살짝 회색으로 보인다. 옷의 흐름, 색깔 패턴, 헤어 스타일까지 합쳐서 보니 짧막한 소설을 쓸 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의 여자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 나에게 휴식이 된듯 했다. 나는 흡연 구역으로 걸음을 옮겨 담배를 한가치 태워내고 다시 교차로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계속 찍다보니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이 있기에, 좋아 그럼 내가 직접 가주지. 느낌이 많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아. 게다가 비록 태풍이 나를 피하긴 했지만 사람이 많은 곳으로 이동 하는 것 정도는 설마 뭐 어떻겠어.

자리를 이동하여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니 희안하게도 그 많던 사람들이 스폰지에 흡수되듯 사라진다. 우연이겠지. 조금 기다려 보자. 해서 10분 정도 기다렸지만 갑자기 한가한 느낌의 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다시 원래 있었던 반대쪽을 보니 사람이 굉장히 많아졌다. 할수 없군. 다시 돌아가야지. 외려 잘 되었지. 약 2~3분 정도의 거리를 발걸음을 조금 빨리 움직여 돌아갔더니 또 사람이 적어졌다. 다시 몇십분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없다. 나의 공간은 30센치가 아니라 몇 미터가 된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고 그것이 순간 마음을 격하게 하였다. 그렇게 두어시간 넘게 있다보니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없다. 다시 스텐리스 바 의자에 앉아서 넋을 놓고 있는 삼십분 동안 많은 여자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많은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렇게 초조하게 시계를 보는 사람, 맘 편안히 기다리는 사람, 어떻게 봐도 불륜으로 보이는 커플, 어설픈 여고생, 머리가 텅 비어 보이는 젊은 남자, 정갈하게 섹시한 멋을 낸 다리가 이쁜 여자가 책을 읽는 모습, 아무런 목적 없이 앉아있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날때 화색이 도는 모습,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나도 쓸쓸한 미소의 모습, 많은 중국인 가족 관광객과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뛰다 넘어지고 있었고, 시도 때도 없이 누군가의 똑딱이 디카 관광 사진의 조그만 배경으로 내가 찍혀지고 있었다.

남은 이틀동안 신주쿠에 있는 집에서 신세지기로 한 동생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저녁 7시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여기저기를 돌며 근근히 사진을 찍고 오래도록 입술을 한번도 때지 않았다. 그리고 물을 마시고 계속 걸었다. 동생과 만나서 맥주를 한잔 하면서 그간 있었던 일을 �F막하게 이야기 했다. 뭔가를 이해한 듯 아닌 듯 했지만 아무튼 내가 대단히 지쳐 있다는 것은 전해진듯 했다. 집에 돌아가 잠시 한숨 돌린 후 동생과 재수씨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가고자 했던 곳은 마지막 손님을 받고 Closed로 팻말을 바꾸었다. 그래… 결국 다른 곳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중간에 슈퍼에 들려 부산보다도 싼 재대로 된 기초 식재료 가격에 한국의 구조에 대해 미적지근한 분노를 표하고 언젠가 내가 이야기 했던 맥주를 동생이 기억하고 있었는지 그 맥주를 사고 집에 돌아온뒤 샤워를 하고, 집 옥상 옆 비상구 계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했다. 잠들기 전 차갑게 식은 그 맥주를 나에게 주었으나 마시질 못하고 약간 미지근해질때 다시 냉장고에 넣은 후 기절하듯 잠들었다.

아침으로 동생이 파스타를 해주기로 했지만 어쩐지 느즈막히 일어나버려서 아침은 넘기고 비계가 붙어 있는 돈까스로 점심을 먹었다. 오래되고 차분하고 미소시루가 맛있는, 어쩐지 마음이 안정되는 곳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부부의 주말 오후 장보기에 나도 참석하여 와세다 까지 걸었다. 햇빛이 뜨거운 오후다. 돌아가는 길에 동생 부부내외와 나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소담한 주택가의 길과 학교가 있는 골목을 가고 있을 무렵, 저기 멀리서 여고생 한명이 걸어내려오고 있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긴 했지만 멀리 있어서 제대로 보이는지 않았기에 신경 쓰지 않고 가는데, 조금씩 형체를 알아볼수 있게 되자 신경이 쓰인다. 살짝 얇은 뿔테에 약간 새침한 느낌의 여고생인데 동생과 내가 동시에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일정하고 차분한 걸음을 하고 있었다. 꼬꼬마 여고생 주제에 주위 공간이 왜곡될 정도의 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순간 스무스하게 대화가 끊어지고 그 여고생 지나고 난 뒤 약간의 여운이 지나간 이후에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한가지 더 내가 봤던 것은 재수씨의 행동이었는데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동생도 그것을 봤고 아마 무엇을 느꼈을지 확연하게 알고 있었음이 분명함에도 그 어떠한 티도 내지 않고 여운이 끝나길 기다린 다음 스무스 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던 부분이다. 예전 부터 보통내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경륜의 깊이와 대처 그리고 먼 이후의 일까지 고려된 세련됨이었다. 너무 더워 잠시간 휴식 후 찾고 싶은 부품이 있어 동생과 함께 스크럼 짜듯 아키하바라를 저녁 7시 넘어서 까지 돌아다녔지만 결국 구할 수 없었다. 세계의 라디오 회관은 사라졌고 아키하바라도 이젠 끝이다. 그런데 그토록 걷다 보니, 부품을 구하는 것 보다도 동생 녀석이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준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저녁이 되어 식사와 술을 했다. 약속한 장소에 재수씨가 미리 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갓 튀긴 유부가 특히 훌륭했다. 동생녀석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재수씨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 사람은 나에게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여자지만 강한 추진력 때문에 때론 부서지고 갈려나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저 사람과 함께라면 나는 갈려나가면서도 계속 나로서 있을 수 있다. 라는 류의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었다. 어떤 이야기 인지 적어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일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밤이 되었고 비가 내렸다. 왠지 알것 같았다. 일기예보를 보지 않아도 내일 오전까지 비가 내릴 것이라 말했다. 자기전 비상구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그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약간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동생을 본 첫날 나에게 선물 해주었던 것이 있었다. 대략 십년 전 부터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했었던 그러나 정말 구하기 어려웠던 기네비어의 DVD를 잊지 않고 가방에 챙겼다. 옛날, 제목을 처음 들었을땐 아서왕의 마누라가 뭘 하는건가 라는 식이었지만 녀석 말로는 이 영화 보면서 내 생각이 굉장히 많이 났다고 했었다. 귀국행 비행기 시간을 고려해 아침 식사 시간과 메뉴 그리고 이동 일정을 확인 후 달에 움직이는 밀물 처럼 잠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예상대로 비가 내렸다. 그런데 어쩐지 식사는 없고 동생이 옷을 입고 있다. 시간 여유가 없지만 아침에 해야 할 것을 전부 무시하면 갈 수는 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다시 신주쿠 공원 입구로 갔다. 8시 55분에 도착. 젊은 공원 관리인이 뒤에서 어슬렁 거리며 기다리고 있다. 관리인이 손목 시계를 계속 보더니 마침네 문을 열어준다. 인공위성 연동 시계 기준으로 8시 59분. 조용한 가랑비가 부드럽게 계속 내린다. 어쩐지 천천히 걸으면서 그곳에 다시 갔다. 그리곤 투명한 우산을 접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기에 다시 앉기 전까진 어쩐지 미묘 했었지만, 비오는날 다시 앉으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런 일은 그때 단 한번 뿐일 일이고, 이미 그 시각 이후로 뭔가 변해가기 시작하고 있다고. 그리고 왜 내가 여기까지 기를 쓰고 와야만 했는지도.

이제 더 이상 나는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사라졌고 그것은 존재의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아직 이 세상에 미련이 많은 건지 혹은 단지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 때문인진 알수가 없다. 동생이 말했다. 7~8년 넘게 도쿄에서 살고 있고 신주쿠 공원엔 제법 자주 왔었지만 왜 형이 비오는 날 여기에 와야만 했어야 했는지 알것 같다. 라고.

담배를 몇가치 태워내고 싸고 빠르다는 간판이 걸려있는 소바와 텐동을 파는 음식점에서 동생과 함께 아침을 먹어 치웠다. 플랫폼에서 강한 포옹과 신의의 악수를 했다. 돌아서서 플랫폼의 개찰구를 지나고 몇걸음 옮기다 왠지 느낌이 이상하여 뒤돌아 보는데 나에게 경례를 하고 있었다. 뭐라 어떻게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기차에 올라탔다.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바로 다대포를 갔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망가진 다대포를 확인하고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 또 한군데 사라진 것을 조용히 목도 했다. 진심 따위 서푼의 가치 조차 없다.

오늘 밖에서 볼일을 보고 2년 넘게 가볼까 말까 한 곳을 갔다. 예전 작업실이 있던 곳이다. 계단을 오르고 다시 올라서 들어간 곳은 완전히 다르게 되어 있었다. 아르바이트 생이 한명 있었고 주인장은 출타 중이다. 십분 정도 주위를 보고, 그래.. 이거면 됐어. 라고 마음을 먹고 나가려는 순간 문이 열리며 주인장이 들어왔다. 밍밍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똑부러지고 이야기 할때 상대방의 눈을 보며 이야기 하는 타입이다. 젊은 나이 임에도 이런 저런 일들을 겪은 얼굴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 밖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비의 형태다. 소리, 풍량, 풍향, 무게, 바람, 강수량 모든게 마치 나를 위해 준비 된 것 같은 비가, 그곳에서 내려야 했었을 것이 이제야 내린다. 소리 없이 번개가 치고 2-3초 후 천둥이 울린다.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 온다. 이제 여기를 떠나야 한다. 만나서 정말 반가웠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진심인진 가늠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반 이상의 진심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위안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어폰을 귓구멍에 처박고 셔플로 음악을 틀었다.
그러자 늘어지는듯 부드러운듯 숨찬 위무의 목소리로 Nina Simone가 Here Comes The Sun을 부른다. 그곡이 끝나고 John Lennon의 Love가 나오고 그 곡이 끝날때 쯤 작업실 입구의 두꺼운 철문을 열었다.

비의 색깔

나에겐 두 개의 카메라 가방이 있다.

하나는 17년 정도 된 원색의 형태가 겨우 남아있는 촌스런 네이비 블루의 가장 큰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카메라 가방이다.
또 하나는 같은 계열의 것이긴 하지만 크기가 상대적으로 컴팩트 하고 가볍다. 게다가 멋들어지게 왁스처리까지 되어있고 제법 훌륭한 느낌을 주는 마음에 쏙 드는 갈색의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카메라 가방이다.

짐을 정리하다가 이 둘 중 어느 것을 들고 갈까를 4분 정도 가만히 앉아서 생각 했었던 것 같다. 왜 했었던 것 같다. 라고 하냐면 이 느낌은 생각이라기 보다는 나의 스탠스가 어떻느냐를 열어 제껴 보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가방\’ 을 선택한다는 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고 사진 장비를 꾸려야 하는 가방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고려 할 수 있는 명확한 팩터들이 있고 논리적인 조합에 따라 알맞은 가방을 선택하면 될 그닥 힘들지 않은 심플한 일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가방이라는 것은 걸음의 형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걸음의 형태는 어떠한 마음과 무게와 세계를 마주하는 하나의 결정된 모습이기도 하다.

이동성을 생각하고 내가 갈 곳의 날씨와 걸어갈 곳을 생각하고 찍어야 할 것과 멈춰서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명확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써왔던 네이비 블루의 가방은 이리저리 떨어지고 닳아빠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결정은 아직 일 년도 채 되지 못한 작고 가볍고 기능성이 좋은 가방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명확하고 합리적이다.

4분 후 내가 여권을 집어 넣은 가방은 오래된 네이비 블루의 가방이었다. 여기에 25mm, 35mm, 50mm 단렌즈를 넣었다.

그리고 불과 수개월 전과 달리 가방을 선택해야 하는 이 상황이 나에겐 혼랍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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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최소 1주일 이상은 장마 예보가 없다.

미치겠다.

2년 만에 처음 보는 풍경

반사적으로 등받이 의자를 가지러 들어갔다.

너무나 익속한 장소가 형언 할 수 없을 만큼 낮설었고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실제임과 동시에 현실미가 떨어졌다.

내가 있을 곳은 지금껏 오직 나를 중심으로 한 공간만을 만들어 왔었던 나에겐. 이 공간만이, 유일하게 허락한 예외였다. 이런식의 익숙함과 낮설음은 처음 겪는 것이였고 심장과 위장을 비틀어 쥐어짜이는 느낌, 그리고 지금은 사라져 느끼지 못해야 할 오래된 담낭의 고통이 생생히 그대로 그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난 저 공간으로 부터, 심지어 물리적으로도 도망칠 수가 없다.

사흘간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저 공간에서 오늘 처음 눈을 감아야 한다.
그리고 핏기가 가시지도 못한채 사방에 튀어버린 육편같은 생각들을 저 공간 속에서 다시 내 머리와 마음속 책장에 하나씩 정리 해야 할 것이다.

6년
나의 6분의 1

6월의 늦봄과 초여름 사이

태양은 이미 높이 떴고 이름 모를 새들이 이슬먹은 소리로 지저귄다. 노도에서 들리는 빗자루 쓰는 소리, 새벽의 정적을 날려버리는 자동차가 공기를 부수는 소리. 원두가 갈려나가는 소리 그리고 커피메이커의 낮고 큰 부글거리는 소리.

6월 3일 오전 6시 56분.

마지막으로 목욕탕에 보내고 싶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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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1500년전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했고, 500년 전에는 지구가 편평하다고 생각했어. 5분 전에 너는 지구에 인간만 사는줄 알았지. 내일은 어떤 진실이 기다릴까?

5년

5년 동안 이날을 기다렸다.
투표 용지에 도장을 찍는데 순간 뭔가 조용히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투표지를 정확히 가운데로 접고 투표함 입구에 기표지의 모서리를 살짝 대고 2초간 그대로 있었다. 둥그런 한숨을 쉬고 기표지를 넣었다. 그 모습을 그대로 옆에서 지켜본 투표함 관리인이 나를 보며 엷은 미소로 눈인사를 했다.

나도 눈인사로 화답하고 투표소를 나섰다. 귀가 깨질듯 시려웠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조금은 미지근하고 선선한 날이였다.

시간이 되었는데도 택배 아저씨가 오지 않아 조금씩 초조해져갔다. 생각해보면 나에겐 그럴 이유가 그리 없다. 어찌 되었건 시간 안에 올 것이고 건네주면 된다.

침착하기가 힘든 기분이 자꾸 마음을 불편케 한다. 결국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고 마침 근처에 있어서 건네주었다. 8년간 나의 시간이 저며든 녀석이 노란색 골판지 상자속에서 사라졌다. 택배 아저씨는 항상 바쁘다. 마지막 인사를 할 사이도 없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카메라를 보낼 때 이런 마음은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의 깊은 안쪽엔 사진도 조금 변해갈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잡은 인류의 마지막 F는 마치 내 손바닥과 카메라가 그대로 녹아 붙은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약간 서글픈 기분이 든다. 필름을 넣지 않은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셔터를 누른다. 항상 똑같은 소리다.

8년간 단 한번도 다른 소리를 낸적이 없는 잠결에도 구분 할 수 있는 소리다. 셔터를 누를때 마다 뽀득 거리는 모래를 맨발로 밟아 흡수 되는 듯, 그러나 분명히 지탱이 되는 셔터의 진동. 몇번이고 셔터를 누른다.

어째 쓸쓸해지는 기분이 들지만 별 수 없다. 상당히 고민하고 이해하고 무엇보다 납득을 해버렸기에 더 이상 머물수만은 없겠지.

렌즈도 흑백 필름에 이상적이였던 일본 생산 버전의 오래된 50미리 1.4 렌즈를 처분하였다. 특유의 노란끼가 감돌기 때문에 흑백에 있어서 분위기가 신형 50미리에 비해 참으로 좋았다. 그 자리를 대신하여 다소 차가운 색감과 높은 해상력을 가진 50미리 1.8 렌즈를 주문 하였다. 물론 사전에 데이터 수집과 실 사용을 한 뒤에 충분한 납득을 거쳐 선택 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쓸쓸한 기분이 든다.

8년, 그리고 8년.

Nikon F6를 장터에 내놓았다.

장터에 내놓기 위해 사진을 찍고
셔터막 보호를 위한 플레이트를 올려놓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8년 전 이와 똑같은 일을 했었다. 그때도 날이 추운 겨울의 즈음 이였다.

이 카메라가 다른 사람의 어깨에 올려져 있는 것이 쉽게 상상 되진 않는다. 긴 시간을 함께 하고 많은 곳을 함께 했고 많은 것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조용한 전우 같은 느낌 이였다. F6의 경우 F5에 비하면 조금 더 살가운 느낌 이였지만 니콘의 플래그 쉽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용함은 혈통으로서 조용한 것이다.

F7이 나올 올해엔 아무런 발표가 없었고 8년전 최초로 예감 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F7은 나오지 않았고 Nikon F6는 인류의 마지막 필름 플래그 쉽 35mm SLR 카메라가 되었다.

필름실에 남아 있던 Tri-X 400의 남은 컷들을 차근히 찍어 갔다.

F6의 마지막 컷을 눌렀다.
마음의 반응에 바로 반응 하는 셔터 버튼.
소리.
강렬한 속도.
조용히 흡수되는 진동.

그 이후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언제나 묵묵히, 확실하게 필름을 감아내는 모터의 소리.

그리고 필름 크랭크의 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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