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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9

일단 이런 느낌도 가능한듯.

증명

의자를 하나 가져왔다.
검은색에 목받이가 있는 제법 크고 무겁고 그럴듯한 의자다.

십년도 넘게 사용해서 처음의 선홍색 기운이 거의 사라진
낡은 의자를 버리기 전에 햇볕 좋을때 사진을 찍으려 옥상에 옮겨놓았다.
아마 비가 오고 푹신하게 젖어버린 의자를 찍는것도 나쁘진 않겠다.
오랜 세월동안 나의 엉덩이와 등과 함께한 의자이다 보니
이런 상그러운 기분이 드는것도 무리는 아닐것이다.

그리고 붉은 의자가 비워둔 자리에, 검은 의자를 놓아두었다.
앉아보니 미묘하게 편한듯 불편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손을 봐서 높이도 맞추고 목받이의 길이도 맞춰주었다.
몸을 뒤로 뉘일때 너무 넘어가지 않도록 딱딱하게 텐션을 조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약 삼십분 가량 씨름을 하고나니 그제서야 좀 편한 기분이 들까 싶더니
두어시간 정도 앉아 있으려니 그래도 미묘하게 불편하다.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보고 여러가지로 보다가 오른쪽 팔걸이를 분해하여
없애버렸더니 조금 낫다. 왼쪽 팔걸이도 없앨까 하다가 오분 정도 곰곰히 생각한후
그건 그냥 놔두기로 했다.

아, 이제야 조금 편안한 기분이 드는듯 싶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 동안 미묘하게 햇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옥상에서 오후의 자욱한 먼지와
새벽의 푹젖은 이슬에 마음을 달래고 있을 붉은 의자에 카메라가 쉽게 가지 않는다.
평소에 \’이런류\’를 찍을땐 언제고 나의 촬영 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햇볕이 엷은 느낌으로
찍는 것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렇게 작업 하는것이 나의 방식 중 하나다.
붉은 의자도 예외는 아닐진데 어쩐지 그러질 못하고 있다.
평소라면 그 이틀간 촬영하기 무척 적격인 날씨였을터다.

게다가 처음 의자를 옥상에 올려 놓을때, 고민할 필요 조차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구도와 위치 그리고 노출까지 이미 결정 되어 있었다.
의자를 그 위치에 놓고 잠시간 모양을 다듬고 태양의 광선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몇시쯤에 올라와서 촬영 하면 될 것인지 조차 한순간에 결정했을 터이다.
그리고 촬영이 끝난 후 붉은 의자를 버리려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자꾸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데 이건 정말 마음이 불편해서 일까 아니면 아직 검은 의자에
적응하지 못한 나의 몸이 불편한 탓에 마음이 불편한 것일까.
검은 의자에 진득히 앉아서 생각 해보았다.
몇가지 다른 소소한 일거리 부터 약간 골치아픈 일까지 해보았는데
느끼게 된 점이 몇가지 있다.

검은 의자에 앉았을땐 확실히 살랑살랑 뭔가를 하기엔 좋았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할땐
몸을 뒷쪽에 기댈 수 있어서 편했다. 의자의 높이를 최대로 높게 해두어도 아주 미묘하게
(1~2센치 차이일까) 낮은데 그 아주 미묘한 높이의 차이로 모니터를 아주 살짝 올려다 보도록
만들어 주었다. 확실히 편안하게 뭔가를 봐야할땐 좋다.

하지만 작업을 할땐 다르다.
신경을 많이 쓰거나 집중력이 필요하거나 작업을 할때는 집중이 쉽게 되지 않는다.
의자 자체가 몸을 자꾸 뒷쪽으로 기대도록 강제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보통 30분 이상 집중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어쩌면 휴식용 의자라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나에게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느낌이 든다.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생각해보고 나온 결론은,
적당히 불편한 느낌이 없었기 때문에 불편했다.
작업을 할땐 적당히 불편함이 편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불편하기만 한것도 아닌 것이
별 신경쓰지 않는 무심한 녀석이지만 사실 속은 부드럽다던가.
아니, 이것하고도 조금 다를까.

삼일째 되던날 약 30분을 고민한 끝에 검은 의자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낡아빠진 붉은 의자의 십몇년간 묵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먼지를 터는데는 라이트 임프레션에서 나온 통자 알루미늄 커팅 자에 비닐을 씌운것으로
팍팍 때려주었다.

처음 일격을 날리는 순간 오랫동안 쌓였던 먼지들이 순식간에 내 폐속을 말 그대로 찔러왔다.
이런 의자를 지금껏 잘도 앉았었군 싶을 정도로 심했는데, 털어도 털어도 계속 나오는 먼지가
침침한 햇볕속에서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서 싸- 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왜 그랬을까 생각 해봤는데, 참으로 단순한 이유였다.
그래.
그러니 싸-한 기분이 될 수 밖에..

붉은 의자가 돌아온지 이틀이 지났다.
익숙한 길이와 크기와 적당한 불편함이 나를 안정시켜 주고 있다.
작업을 해도 빈둥거려도 뭔가 심각하게 머리를 감싸쥐고 있어도
붉은 녀석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어쩐지 글렌굴드의 심정을 알것만도 같다.

이 의자를 만든 이름 모를 메이커에겐 나 같은 사람은 참 싫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볼품 없는 디자인의 의자를 참으로 튼튼하고 질기게도 만들었다 싶다.

그렇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즈음 문득 드는 느낌은 어쩐지 미묘하다.
이런 의자 하나에 이렇게 구애되는 것이 그닥 유쾌한 기분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세월이 스며든 오래된 먼지를 털어 낼 수 있었고
일광 소독도 아주 찐하게 했다.

일단,
이것으로 만족 하도록 하다.

나비효과

계속하다 보니 어딘가 쿰쿰한 기분이 든다.
무엇인가와 닮았다는 끈적끈적한 느낌이 엷게 콧구멍 속을 찝쩍거린다.
순간 플리퍼가 멈추었고 마지막 남은 공이 떨어졌다.

최초로 핀볼과 마주한 것은 8살 때였던 것 같다.
나는 전자오락을 좋아해서 어린 나이에 용맹하게도 혼자 버스를 타고
켜켜이 굽어있는 도로를 지나 부산 남포동 시내까지 원정을 나가서
전자오락실에 가곤 했었다.

시내의 전자오락실은 소위 동네 오락실과는 전혀 분위기가 달라서
덩치가 아주 큰 녀석부터 일반적인 캐비넷 형태의 것들까지 종류도 다양했고
무엇보다 동네 오락실에는 없던 최신 게임들이 있곤 했다.
그렇게 1~2주에 한 번씩 원정 게임을 하러 가곤 했었던 것이
나의 유년 추억 중 하나다.

어느 날 남포동 시내 오락실에 태어나 처음 보는 녀석이 들어왔었는데
익숙하게 보던 CRT의 화면은 전혀 없고 땡기는 레버와 버튼이 하나씩 왼쪽과 오른쪽에 붙어있는
지극히 간단한 그리고 무척이나 거대한 녀석이 들어왔다.
난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는 몰랐지만 어쩐지 그 크기에 압도되어 주눅 들었다.
어른 한 명이 멋을 부리며 동전을 넣고 레버를 땅기자 공이 튀어나왔다.

무척이나 맑은 스테인레스 공이다. 저걸로 머리를 맞으면 무척 아프겠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눈으로만 봐도 단단한 느낌의 반짝거리는 공이 ’공간’의 좌우를 가른다.
뭔가가 닿으니 튕! 소리가 나면서 요란한 불빛들이 반짝인다.
도대체 이건 뭐지? 딱히 피한다거나 맞춘다는 것도 모르겠고 뭔가를 어떻게 어떻게 하면
또 뭔가 열리는데 도대체 규칙도 모르겠거니와 버튼을 누르면 까닥까닥하는 이 막대기로
단지 공을 튕기고, 구멍 아래로 빠지면 게임 오버. 이런 간단한 규칙으로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담? 싶었지만 그것은 무척 잠시였다.

공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희한하고 아름다웠던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공의 움직임인데도 간혹 보기 좋게 내 예상이 빗나가는 반짝이던 공의 움직임은
변화무쌍한 포물선을 그리며 하염없이 테이블의 공간 속에서 춤췄다.
이것이 나와 핀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렇게 홀린 듯, 손에 쥔 땀에 쩔어있는 소중하디 소중한 동전을 겨우 밀어 넣고 처음으로
레버를 당기자, 공들이 튕기면서 화려한 소리와 음성들이 들린다.
벽면을 때리고 타겟을 때리고 알 수 없는 양키 말로 뭐라 뭐라 떠들어대는데
국민학생이 뭘 듣고 알겠는가. 그냥 공이 내려오면 버튼을 눌러 막대기를 튕기고
그렇게 공을 계속 튕기다가 어처구니없게 공이 죽음의 땅으로 떨어지면 심플하게 끝이다.

보는 것에 비해서 직접 해보니 너무나도 어려웠다.
도대체 이렇게 어려운 것을 어떻게 해?
무엇보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대단히 불합리하다.
테이블의 정중앙에서 90도 각도로 내려오면 좌우의 막대기로는 막을 수도, 튕길 수도 없다.

공의 움직임이 예상되는데도 그냥 멀뚱히 바라보며 공 한 개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게 참 마음이 좋지 않다.

금방 싫증을 느낀 나는 어쩌다 간혹 장시간 은구슬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20분이고 30분이고 싫증 내지 않고 보는 정도였다.
아무튼 공이 만들어내는 궤적은 굉장히 신기했으니까.

’아저씨 이거 뭐라고 부르는 거예요?’
’핀볼 이라고 해’
’핀볼요? 이름이 이상해요’
’아무튼 이것의 이름은 핀볼이야’

시간이 흘러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나오고 그만큼의 시간 동안
동네 오락실에도 시내 못지않은 최신 게임들이 들어오곤 했었다.
하지만 핀볼 만큼은 동네 오락실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 원정을 나가야 할 수 있는 게임.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핀볼을 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듯싶다.
아무도 하지 않는, 게다가 그 시간 동안 반짝 반짝 거리는 느낌은 전부 사라지고
이미 검은 때가 구석 구석 박혀있던 낡아버린 핀볼 테이블에 동전을 넣자 주르륵 소리가 나오며
내가 공을 튕기길 기다리는 기계를 봤을 때, 내가 공을 튕기지 않으면
기계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런 짧은 순간, 가슴이 허-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또 흘러 대학생이 되고선 아주 가끔 근방 오락실에서 핀볼 게임을 하곤 했다.
희한하게도 핀볼을 하고 있다 보면 이상하게 외로운 기분이 들곤 했다.
자세한 규칙에 대해서도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고 재미있게 하는 방법과 몇 가지 사소한 요령도 터득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조금 외로운 기분이 든다.

단지 플리퍼를 까닥거리는 것만으로 많은 것들이 반응한다.
공의 속도와 각도 그리고 제일 중요한 타이밍에 따라서 각도는 변화무쌍하다.
당연히 전략도 필요하다.

그리고 정말 아주 약간의 차이에 의해서 마치 나비효과처럼 예상치도 못한 형태가 생기곤 한다.
운이 따라주는 것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플리퍼를 치는 그 한순간마다
이후에 일어날 모든 일은 예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문득 그것이 난 소름 끼쳤다.

그 뒤로 오랜 세월 동안 핀볼 게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 들어 정교한 물리엔진으로 만들어진 컴퓨터로 하는 핀볼이 아닌
핀볼 기계 관리자가 와서 나사를 다시 조이고 각도를 맞추고 램프의 상태와
플리퍼의 각도와 고무줄을 체크해야 하는 진짜 핀볼 게임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진짜 핀볼 게임을 할 수 있는 날은 다시 오지 않았고
지금은 컴퓨터로 간혹 핀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지나갔다.

삶과 무척 닮았구나. 라고.

베개

대부분 그렇듯 일어나 보면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수면을 취할때 자세가 나빴거나 이불을 걷어차고 잤거나 그랬으리라 생각할 뿐이다.

나의 오른쪽 뇌는 호두가 부서지는 느낌으로 시작해서 검지 손가락 한마디 길이의 송곳으로 휘적이는 느낌으로 끝난다. 이미 몸도 마음도 매우 지쳐있는 상태라 기분도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일때가 있지 않은가.

울고 있었다고 했다. 눈물을 닦아주었다 했다.
나로선 전혀 기억이 없다. 애당초 무슨 꿈을 꾸었는지 조차 기억 나지 않는 나로선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 밖에. 그러고 보면 콧구멍이 젖어있는 느낌도 어렴풋 남아 있는듯 했다.

그래서 곰곰히 되새김질 해봐도 도무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그러길 반복하다가 무엇인가 실마리 같은게 꿈틀하고 끝이 보일때가 있다. 아마 더 끝을 주욱 당기면 뭔가 나올것 같기도 하다.

희안하게도 그쯤 되어서 나도 모르게 생각을 차단시켜 버린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간단한 이야기지만 한편으론 그 속을 더 알고 싶다는 욕망도 꿈틀거린다. 그렇게 줄다리기를 하다 보면 어느 틈엔가 기억의 실마리가 정말 사라져버린다.

생각해보면 눈물을 흘릴정도의 꿈이였다면 필시 강렬한 기억이였을터, 꿈에서 깬 이후의 정신 위생을 위하여 자동적으로 삭제한 기억. 어쩌면 그 정도로 강렬한 꿈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짓고 시간이 흘러 문득 지금 이 시간에 드는 생각은, 어쩐지 알것만 같기도 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예상의 고리 마저도 명확하지 않은 안개 같은 형태지만 말이다.

시간이 흘러 한달 꽉 채운 2010년 1월이 지나고, 다행스럽게도 나의 오른쪽 뇌는 삶기전의 파스타로 뇌를 휘적이는 느낌이 되었다.

정말 다행인건진 모르겠지만.

첫기동 기념.

VueLoom에 새식구 Epson Stylus 9900 Pro 설치 직후
아리따운 송이씨에게 첫 전원 인가의 영광을 돌리다.

촬영한지는 2~3주 전인듯 싶은데 이제야 올린다.
그냥 살짝 편집해서 올리는 맛도 제법 나쁘지 않다.

새로운 식구

한파가 뼈속 깊숙이 스며드는 2010년 1월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왔다.
모양은 익숙하지만 압도적인 크기를 가진 녀석은
공방에 입성하는데도 무척이나 큰 힘을 요구했다. 덩치가 압도적일 정도로 너무나 거대해서 사다리 차를 이용하여 집어 넣었다.

공간이 넓지 못한 공방에서 포장을 풀고 설치를 하고 전원을 넣는것 까지 시간이 예상보다 제법 걸렸다.

이 새로운 식구가 들어온지 벌써 수일이 지났다. 안정화도 새로운 프로파일 작성도 마쳤다. 앞으로 아주 커다란 작품도 문제 없이 프린트 가능해졌다.

새로운 장비가 들어오기 까지 프린트 공방 VueLoom을 통하여 작품을 프린트 하신 수 많은 분들과 개인적인 호의를 가지고 도와주신 소중한 분들이 없었다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였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다.
더불어 VueLoom 프린트 공방이 지금보다 조금 더 작가의 마음에 그리고 관객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프린트를 만드는 공간으로서, 재차 자리 매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다져 본다.

단정.

If you judge people, you have no time to love them.

– Mother Teresa

한밤에 눈이 내릴때.

갑자기 예고 없이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언제나 그렇듯.

일을 마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겨울 차가운 공기에 쫄아든 커피와 함께 여러가지 궁리 거리를 찾아보고 방법을 찾아봤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

머리가 너무 지끈거려, 더욱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고자 담배를 태우러 창문을 열었더니 미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창문이 걸터있는 약 5센치 두께의 시멘트 난간에 빗자국이 보이는데 분명 비가 내리지 않는다. 어찌 되었던 난 지금 머리가 지끈거리므로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물어재끼곤 부드럽게 불을 붙였다.

멍하니 2분 정도 밖을 바라보자 이상한 이질감의 정체가 \’눈\’ 이였음을 알았다. 처음엔 타버린 하얀 담뱃재인줄 알았건만 눈에 보일듯 말듯한 눈이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에 뭍혀 소리도 없이 그야말로 무심하게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두운 밤에 살짝 날리는 허연 뼛가루 같은 담뱃재와 눈을 구분하는건 쉽지 않다. 그 둘을 구분하는데 난 10초 정도 걸렸지 싶다.

담배를 다 태우고 나서 드는 생각은, 부산에도 어설프게 눈이 내리는군. 어쩐지 춥더라. C군이 보내준 일본식 솜옷이 생각보다 따뜻해서 다행이다. 그런데 이걸 눈이 내린다고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내일 손님들이 작업실에 올텐데, 올때 불편하지 않으려나. 그러고 보니 이젠 모기가 안보일때도 되긴 했는데 분명 어제 한마리 날아다녔더랬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담뱃재 가루와 눈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져갔다.

뭐, 당연하게도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리고 골치아픈 일은 합리적으로 해결 할수 있는 길이 쉬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배가 고파졌다.

전조

내가 앉는 책상 앞에는 회색의 텍스쳐가 강한 천이 덧대여진
사무용 파티션이 한장 있다.
아마 6~7개월 전부터 어딘가 모르게 살짝 기울어지기 시작했는데,
기울어진 방향을 내가 앉은 쪽으로 오도록 했다.

좁다고 하긴 미묘하지만 결코 넓다고 할 수 없는 작업실 입구의
배치를 생각할때 시각적으로 조금 더 편안하고 넓게 보이는 효과를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고치지 않았다.
적당히 느슨한 느낌이 드는 파티션의 기울기는 어쩌다 반대편으로 누워있으면
마음이 마구 답답해질 정도로 그 효과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컸다.
그래서 집게 손가락 끝으로 슬그머니 안쪽으로 밀면 힘없이 스-윽 하고 각도가 바뀌는
1초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이 나에겐 참 좋았다.
각도가 안정되기 직전에 살짝 걸리는 느릿한 텐션도 나에겐 만족스러웠다.

엉덩이가 직접 닿는 변기 커버는 10여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하면서 강렬할 정도로
심하게 낡아 수개월전 새것으로 교체 했다.
뜨거운 핫핑크색으로 하고 싶었지만, 일반적 정서를 고려해서 \’흰색\’으로 했다.

하지만 미묘하게 사이즈가 맞지 않았는지 볼일을 보고 있다보면 하얀 사기로
된 변기통 안으로 미끄러져 불편했다.
그러나 몇번이고 반복하다 보니 이런 느낌도 요상하게 느낌이 온다.
1평도 안되는 몹시 좁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갑자기 탐- 하고
흰색의 커버가 아래로 빠지면서 몸도 같이 빠지는 듯한 (그래봐야 3~4센치겠지만)
느낌이 기묘했고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어느날 전조도 없이 흰색의 변기 커버를 분해해서 고정하는 고정쇠와 나사를
\’바른 방향\’으로 채결하여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만들었다.
앉아 봤는데 불안한 느낌도 없고 편안했다.
이제 3~4센치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기묘한 느낌도 없다.

파티션의 고정 볼트를 모조리 분리하고, 새것을 가져와서 고정 부위를 다른곳으로 박아두었다.
총 16개의 볼트를 쑤셔박아야 하는데 혼자서 하는 것이다 보니 직각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80% 정도만 박아두고 한손으로 각도를 조정하면서 나머지를 박아두었더니 모양이 나왔다.
이제 검지 손가락 끝으로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한달 정도 지나고 나니
어쩐지 미묘하게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다고 힘들여 깨끗하고 단단하게 고쳐 놓은 것을
일부러 힘들여 망가트리는 것도 우습다.

이쯤 되다 보면 어느 쪽이 맞는건지 2~3초 정도 헷갈릴때가 있는데
생각 해보면 나에겐 전의 상태가 맞는게 당연하잖은가.
당연한걸 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라고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면
그 순간 \’당연한 듯\’ 바로 그 이유가 떠오른다.

그 당연한 생각을 뒤로 하고
창가에 서서 담뱃불을 붙이고 있다 보면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것도 3분 정도면 느낌이 사라진다.

이것은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익숙해진 것인가.

위장

또 하나의 표현 방법을 한가지 깨우쳤다는 미적지근한 포만감에 씁쓸한 담배 한개비 태우려 문을 열었다. (프린터가 들어온 뒤론 작업실은 금연구역이 되었다)

마치 10리 밖에서 들리는 듯하지만 분명하고 또박 또박 구분이 되며 음율속에 서한이 서려 있을것만 같은 소리가 구름에 가린 달빛처럼 넘실거린다.

찹쌀 떠-억-
망개 떠-억-

이 시간대 즈음 아주 어렸을적 자주 듣던 소리였다. (난 아주 어렸을때도 밤에 잠이 없었다) 단지, 떡을 판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 소리가 들리는 수많은 날중 어느날 갑자기 군말 없이 어머니 혹은 아버지께서 잠옷을 입은체 나가서 정말 찹살떡과 망개떡을 사가지곤 야밤에 먹곤 하였다. 특히 난 망개떡이 참 좋았다.

그것이 저 소리와 관련된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전부이다. 떡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1년에 두어번 정도의 조그만 기억은, 나에겐 왠 떡이냐. 라는 말이 정말 딱인 셈이다.

2009년의 9월 9일 금요일 밤에 난데없는 저 소리는 이상한 울컥거림과 함께 고약한 궁금함이 생겼다. 이 야심한 밤에 저 소리를 듣고 \’뛰어\’ 나가선, 찹쌀떡이랑 망개떡좀 싸주슈. 라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그리고 어떠한 연유로 새벽에 찹쌀 떠-억과 망개 떠-억을 팔지 않으면 안되는가.는 또 어찌 된 일인가.

또 하나의 표현 방법을, 한가지 깨우쳤다는 미적지근한 포만감은 구차한 것으로 바뀌었고 향이 다 날아간 미적지근한 커피만 위장에 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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