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df_Mutter

나팔소리.

시원 할 수도 있고

시끄러울 수도 있다.

.

그래.

취했다.

글자도 잘 보이지 않고.

머리는 한쪽으로 자꾸 기울어 진다.

정말 뭣같은 일이다.

매우 취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이 새겨진 컵을 깼다.

.,

봄.

역시, 언제나 그랬다.

항상.

So long.

.

누구죠? 당신은 누구죠?

울다.

나의 겨울은 봄을 믿지 못해 서러웠는데
깊고 깊은 밤 찬 서리 내려
다시는 태양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꿈은 무겁고 사랑은 두려워
살아 있는 동안 이룰 수 없다 생각했는데
하여 세상이 끝날 때까지 길을 잃고 떠돌아 다닐 줄만 알았는데

바람은 먼 태양의 용기를 싣고
겨울을 통과하여 내 마음에 이른다.
나도 바람을 닮은 사랑을 하고 싶은데
눈부시지 않게 뜨겁지도 않게
다만 그대 마음에 부드럽게 닿는 노래가 되고 싶은데

– 황경신

지옥

하나님은 천지를 만들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위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게 심오한 수수께끼를 파고드는 자를 위해 지옥을 만들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中

4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도에서 검은색 차가 한대 지나간다.
온 사방에 벚꽃잎 치렁치렁 하게 묻어있다.

참으로 지저분 해보인다.

봄이 정말 싫다.

오다이바의 대관람차

어째서 여기에 오게 된 걸까.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떤 예감이 나에게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진 모르겠지만, 오다이바에 가서 그것을 타고 나면,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무엇이 변해버릴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절대 피할 수 없고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할 것. 이라는 예감말이다.

하지만 언제 부턴가 이 곳에 꼭 와야겠다고 생각 한 이후로, 왜 그렇게 되었는지 같은건 상관없게 되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카메라 가방을 울러메고, 니시신주쿠에서 20분 정도 걸어서 야마노테 선을 탈때 부터 미지근하고 추적추적한 기분이 그날따라 맑은 햇살따위엔 아랑곳 하지 않고 내 발자국 뒤를 적시고 있었다. 그날따라 낡아버린 카메라 가방은 유난히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실로 오랫만에 느끼는 무중력 감을 느끼며, 다리가 없는 유령처럼 걸어가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심바시 역에 내려 유리카고메라는 달짝지근한 이름을 가진 모노레일을 타고 아모미 역으로 가는 차표를 끊었다. 차표값이 비싸서 순간 흠칫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 설 순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동전을 넣다가 갯수가 모자라 당황하고 있던 중, 눈앞에 보이는 어떤 버튼이 보이길레 생각 할 것도 없이 눌렀다. 순간 내 등뒤에서 어떤 사람이 후다닥 달려오더니 이것 저것 묻는다. 아마 내가 누른게 직원 호출 버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자를 보지 않고 누르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순간 아무말 못하다, 동전을 다시 받고싶다고 말하자 그는 친절히 다른 버튼을 눌러주었다.

지페를 넣고 표를 끊고, 플렛폼으로 향하면서 두어장의 사진을 찍고 걸어가는 중에 있는 다리 위에서 잠시 서서 옆을 바라보니 긴자로 가는 길이 보인다. 아마 2분 정도 가만히 서서 다리위에 서 있다가 이내 그런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걸어 갔다. 무인선으로 움직이는 유리카고메를 타고 의자에 앉아서 뒤로 사라지는 바깥 풍경을 보고, 옆자리 맞은 편에 있는 한국인 여자 3인조 여행객들이 그야말로 쉴새 없이 지칠 기색도 없는 수다를 듣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중년의 대머리 아저씨와 검은색 모자를 쓰고 손엔 반투명 비닐속에 먹을것이 들어있는 반항끼가 남아있는 30대 초 직장인을 보고, 오다이바엔 처음 와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아줌마와 아이들의 숨겨진 흥분감과 쇼핑홀릭 느낌이 나는 여자를 봤다. 그러다 숨이 답답해서 결국 헤드폰을 꺼내 음악을 들었다.

몇 정거장인가 가면서 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주 예전의 일들과, 아주 예전의 일들과 그리고 아주 예전의 일들을 생각했다. 그렇게 한사이클을 돌도나면 그것 보다 시간을 약간 앞당겨서 다시 한 사이클을 반복했다. 그렇게 다섯번째 사이클이 되고 있을때, 저기 아주 멀리서 하지만 아주 또렷하게 그것이 보였다. 무표정한 눈동자로 희박해져 가는 공기를 무념히 숨쉬고 있을때의 감촉으로, 그것은 손을 뻗으면 바로 눈앞에 가지고 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순간 폐속에 산소가 모조리 사라진 듯한 감촉이 목구멍과 명치에서 맴돌며, 전조도 없이 미지근한 눈물이 나왔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고개를 돌려 눈물이 흐르는 것을 타인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마치 눈이 피곤해서 손으로 비비고 있는 것 처럼 슬며시 닦아 냈지만, 마치 제대로 잠그지 못한 수도꼭지처럼 한방울씩 계속 떨어진다. 니시신주쿠에서 야마노테선을 타러 가는 길에 어떤 여자에게 받았던 티슈를 꺼내서 닦았다. 티슈라는 것은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특히 길거리에서 받은 티슈라는 것은 그런 힘이 더 강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추스리면서 여기서 내려야 하는건가 라고 생각 할때 즈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는지 방송에서 친절히 알려준다. 아오미 역에서 내리면 더 편하게 갈 수 있다고..

여전히 한국인 여자 3인조 여행객들은 쉴새없이 떠들고 있다. 몇 정거장인가 가다가 드디어 좀 조용해진다. 유리카고메 앞자리가 비어서 자리를 옮겨 1인 좌석으로 옮겨 앉았다. 전혀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눈물이 나는게 싫어서 자리를 옮겼다. 아오미 역에 내려 대합실을 빠져나와 단순하지만 미묘하게 복잡한 길을 나와 야외로 나왔다. 하늘은 상큼하지도 눅눅하지도 않은 회색빛 파란색이다. 한없이 불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느낌이면 적당하다 싶은 색이다. 그것이 어디 있는지 모른체 일단 무작정 걸어서 들어가던 중에 기간 한정으로 야외주차장 자리에 뭔가 잡다한 유원지 놀이기구를 영업하고 있는 곳이 보인다. 메리 고 라운드도 있고 뭔가 다른 것도 있었던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것 외에 여러가지가 많았던것 같지만, 메리 고 라운드 외엔 기묘하리 만치 기억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에닐곱 컷을 찍고, 다시 걸어서 걸어서 갔다. 하지만 너무 많이 걸어갔다. 갔단 길에서 다시 그 반 만큼 돌아서 겨우 난 파레트 타운에 근처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 대관람차가 있었기 때문에 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다. \’그곳에 대관람차가 있었기 때문에 난 알 수 있었다\’ 같은 말 따위 정말 아무 것도 아니지만, 왠지 그것이 나에겐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파레트 타운이라니, 정말 난잡하기 그지 없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름의 목적은 쉬이 짐작 할 수 있지만 어쩐지 어감상 불쾌한 감촉이다.

내부로 들어가니 도요타 전시장이 있다. 그곳을 지나쳐 가던길을 쭉 같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돌아가보니 대관람차는 그곳 너머에 있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관심도 없는 도요다의 차를 보면서 걸을음 옮기니, 드디어 대관람차를 버티게 하는 거대한 다리가 보인다. 막상 눈앞에 보이니 저것을 타야만 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앞에 까지 갔다가, 괜히 다시 돌아와 관심도 없었던 도요다의 차를 보기도 하고 G 시뮬레이터에 시승해서 후지 스피드 웨이를 250Km로 완주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 옆에 있던 레이싱 시어터에 들어가서 역시 같은 후지 스피드웨이에서의 주행중 느끼게 되는 G를 허리뼈가 아프도록 느끼고 비실 거리면서 나왔다. 이제는 어떻게 더 이상 도망 갈 곳도 없다. 더 이상 늦장 부릴 껀덕지도 없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줄은 서야만 했다. 기다리던 중에 안내원이 무언가 메뉴판을 들고 보여준다. 어째서 메뉴판인지 상황이 판단이 안되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니 곤돌라를 시스루(투명)한걸 탈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해달란다. 어짜피 아무거나 상관없지만 시스루를 탈려면 좀더 시간을 기다려야하기도 하고 귀찮은 기분이 들어, 일반을 타기로 했다.

무려 900엔이다. 예상하지 못한 비싼 가격에 당황했지만 이미 어쩔 수 없다. 두세번 꼬인 계단을 올라가 바로 앞에 섰다. 안전요원이 사람을 내리고 태운다. 고개를 올려다 보니 시스루 곤돌라가 보인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묘한 충동감이 밀려와 안내요원에게 지금이라도 시스루를 탈 수 있냐고 물었다. 가능하지만 매표소에 내려가셔서 시스루 티켓으로 교환하셔서 오시면 됩니다. 라고 한다. 순간 다 귀찮아져서 그냥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고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바로 내 앞줄에 커플이 시스루에 탄다. 짧은 치마의 여자였고 제법 귀엽게 생겼다. 목소리도 귀여운 느낌에 살집도 적당히 있어서 침대에 눕힐때의 소리가 기대되는 느낌의 여자다. 남자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커플이 시스루에 타고 안전요원이 문을 닫고 안전장치를 닫는 순간, 그 두커플 사이에 있던 공기감이 아주 일순 뒤틀어짐을 느꼈다. 어색한 것도 아닌 그렇다고 마냥 친밀한 것도 아닌 투명한 밀실에서의 그 순간에 그 들은 아마 어떤 종류의 공간이 주는 느낌과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관계 같은것이 서로 엉키게 되었을 때의 느껴지는 느낌이다.

내 차례가 되어서 들어가려고 할때 안전요원이 내 뒤를 흘깃 본다. 대관람차 따위 혼자서 타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지. 혼자라고 말하고 곤돌라에 앉는다. 핑크색이다. 무려 핑크색이다. 그 대관람차에는 같은 색의 곤돌라는 거의 없었다. 타이밍이 핑크색 곤돌라를 타게 했는지, 아니면 그 무엇인가가 그렇게 만들도록 했는지, 아니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녹색이라던가 파란색이라던가 라면 상관없는 일이다. 무려 핑크색이다.

자리에 앉아 카메라 가방을 내려놓고 헤드폰을 벗는다. 창문을 여는 순간 곤돌라 어딘가에 쳐박혀 있는 스피커로 부터 되먹지 않은 J-Pop이 나오고 일본어와 영어로 번갈아 가며 괴롭히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1999년에 기네스북 기록된 세계에서 제일 큰 대관람차고 높이가 얼마고 16분 동안 돌고,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쉴세 없이 계속 하다가 겨우 조금 조용해진다 싶으니 크레용 신짱의 목소리가 또 나를 괴롭힌다. TV애니메이션 시리즈 광고에다가, 곤돌라가 올라가다가 퓻뚜웅 하고 떨어져 버릴지도 몰라! 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다가, 한참 떠들더니 이제야 겨우 조금 조용해진다. 열여놓은 창문에는 철장이 쳐져있고 그곳에서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 곤돌라가 좌우로 흔들거리고 귓가엔 귀신같은 소리가 들린다. 금연이라고 쓰여 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세븐스타를 입에 물고 피운다. 오도카니 핑크색 곤돌라에 서서 바깥을 보고 담배를 피우고 되먹지도 않은 J-Pop이 귀를 괴롭히고 거센 바람이 분다.

아무런 느낌이 없다.

가장 높은 위치로 곤돌라가 올라 갔을때 갑자기 크레용 신짱이 말을 한다. 커플들 보면 꼭 이 쯤에서 키스하는 사람들 있더라. 아~ 로멘틱 로멘틱~ 이라고 비아냥 거리듯 부추기는 멘트를 날려주는 소리를 들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버릴 곳이 없어서 창문틀사이에 꽁초를 끼우도 문을 닫았다. 바람소리는 사라지고 난 카메라를 들었다. 아무것도 찍을 것이 없었을텐데, 어느덧 벌써 36컷의 흔적이 지나갔다. 필름을 갈아끼우고 또 찍는다. 아무런 느낌이 없는 느낌을 찍고 있었던것 같다. 다 찍고 난 후에도 역시 아무런 느낌이 없다. 도대체, 난 어쨰서 왜 이런 곳에 오게 되고 만 것일까.

가만히 보니 곤돌라가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것을 느꼈다. 카메라 가방과 나의 위치가 같아서 그런지 무게가 쏠려 있어서 그런듯 하다. 처음엔 내가 카메라 반대쪽 방향으로 갈까 싶었지만, 관두고 카메라 가방을 내 건너편 자리에 앉혔다. 그래도 균형이 맞지 않았다. 내가 자리를 조금 옮기니 균형이 맞는다. 그러다가 좌 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곤돌라를 움직인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이 높은 곳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곤돌라의 움직임 이라는 것은 기묘한 힘이 있다.

겨우 자리에 앉아서 완전히 내려 올때까지 얌전히 앉아 있었다. 달리 다른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달리 무엇인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가만히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게 없는 것이다. 거의 다 내려올때 즈음 다시 안내방송이 나오고 크레용 신짱이 마지막 까지 괴롭힌다. 신TV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제작되었으니 보라는 이야기다.

안내요원이 핑크빛 문을 열고 난 곤돌라에서 나왔다. 결국 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애초에 내가 직감적으로 예감했던 오다이바의 대관람차를 타고 나면 내 인생에 있어서 무엇인가 변할 것이라는 것은 틀렸던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발판을 딛고 나와 내려가는 계단을 세걸음 정도 걸을때.

눈물이 나왔다.

그 감촉은 예전에 잃어 버렸던 것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지금의 것이기도 하고 앞으로 잃어버려 가야 할 것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목구멍이 타는 듯 막히는 느낌, 그러다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 카메라 가방과 함께 바닥에 주저 앉듯 쓰러질 뻔 했지만, 다시 다리에 힘을 주어 걸어서 나갔다. 그러면서 눈물도 멈췄다. 대관람차를 벗어나 겨우 한눈에 그것을 볼 수 있을 만큼 걸어가다가 다시 눈물이 났다. 어떤 서러운 느낌이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울컥거리게 만든것이다. 난간에 기대어 고개를 숙여 팔로 턱을 괴듯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아마 어떤 종류의 복수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카메라를 들어 대관람차를 찍었다. 셀프를 찍었다. 그리도 또 대관람차를 찍는다. 한없이 불투명한 블루의 하늘임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레드필터를 끼워 최대한 하늘이 검게 나오고 대관람차는 빛나는 느낌으로 찍었다. 점점 뒤로 물러나며 계속 찍을때 즈음 어떤 여자와 부딛쳤다. 미안하다고 이야기 하려는 순간 그녀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무시하고 계속 사진을 찍어나갔다. 그리고 카메라를 접었다.

아오미 역으로 돌아가는 길엔 어쩐지 차분한 기분이 되었다. 다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거니와 이미 그 어떠한 무엇인가가 나를 관통하고 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올 여력이 없다. 표를 끊고 플렛폼에 올라가는 계단을 밟아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중에, 스텐레스 재질로 천공이 되어 있는 의자를 봤다. 기묘하게 깨끗하고 기묘하게 지저분한 그 의자 뒤에는 투명하게 만들어진 엘레베이터가 있었다. 그곳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그 엘레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 들이 보인다.

몸이 몹시 피곤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선 대관람차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서 그것을 탄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라고. 열차가 왔지만 너무 피곤해서 움직일 기력이 전혀 없었다. 늦게 간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날 기다리는 것이 없어서 가볍다. 담배라도 한대 피우면 좋겠지만 플렛폼에서 흡연은 어쩔 수 없다.

카메라 가방안에 넣어둔 페트병 녹차를 마시고 몸을 쉬고 있다가, 은근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일어나 주위를 돌아보니 내 시선은 바로 그 의자에 놓여 있었다. 몇분을 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앉아서 몇분간 있다가, 지금껏 쌓여있던 모든것이 폭발하듯 울었다. 울음 소리를 내고 싶지 않음에도 소리가 나고, 소리내고 싶음에도 소리 나지 않는 울음을 얼굴이 찌그러지도록 울었다. 안경은 이미 젖어버렸고, 주위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플렛폼에 사람 역시 한명도 없다. 소리 내어 운다.

몇분을 그렇게 했는지 알 수 없다. 하늘은 여전히 한없이 불투명에 가까운 블루고 10년째 쓰고 있는 나의 낡은 카메라 가방도 탁한 블루다. 신주쿠에서 받은 티슈를 꺼내서 눈물을 닦고 콧물을 풀어내고 다시 눈물을 닦아냈다.

일어나, 카메라를 꺼내어 그 의자를 찍고 그 의자뒤에 있던 투명한 엘레베이터를 찍고, 그 안에 있던 사람의 뒷모습을 찍고, 아오미 역의 플렛폼을 찍고, 바다를 찍고, 하늘을 찍고, 열차를 찍고, 나를 찍고, 과거에 잃어버렸던 것을 찍고, 현재에 잃어버린 것을 찍고, 미래에 잃어버릴 것을 찍었다.

심바시 쪽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려 바로 타고 숙소로 돌아가려 했지만, 오히려 난 반대쪽 열차를 탔다. 이유는 나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편했다. 그리고 유리카고메의 종착역 까지 갔다가 다시 한번 돌아서 긴자가 보이는 심바시 역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난 또 사진을 찍었고, 열차에서 보이는 멀어져 가는 대관람차를 찍었다.

싸늘한 봄.

개나리만 죽어라고 노란 꽃잎을 펼치다 몇몇 꽃잎이 떨어진 곳엔
벌써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날은 여전히 나에겐 추웠다.
추워서 꽃이 떨어진 것인지, 저 녀석들에겐 따뜻해서 그런 것인지 순간 모호했지만,
잎들이 돋아나는 걸 보면, 아마 추워서 라기 보다는 성질급한 몇몇 놈들이 뻗어나온 것이라 생각 했다.

조금 걸어가니, 벚나무 들이 아직도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에 꽃순들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아마도.. 그리고 틀림없이 순들이 터지면서 벚꽃들이 만개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조용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하나같이 다들 앙상하다.

그런 속에서 덩그러니 매화나무 하나가 서 있었다.
백매화다.
근처에 개나리는 보이지 않고, 벚나무의 꽃도 아직 피지 않았다.
그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백매화만 보일 뿐이다.
꽃잎이 바닥에 흐드러져 마치 눈물 같이 보인다.

3분인가 5분인가를 보다가, 난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는 듯, 어께에 둘러맨 카메라 가방을 추스리고 돌아갔다.
백매화 향만 몸에 남더라..

3월 21일 오늘은

바흐 탄생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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