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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감의 배신감.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전시 준비가 거의 다 끝났다.

몇 년의 시간을 들여 만든 작업이 마침내 전시가 결정된 몇달전 그날, 내 가슴속엔 이미 끝난 전시가 되었다. 오랫동안 만졌던 작업이였기 때문 이기도 했을테고 그 여파로 너무나 지쳐있었던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래 감흥을 느낄 여유가 없었던건지도 모른다.

전시 준비도 특별한 문제 없이 별 감흥 없이 차곡차곡 진행했었다. 갤러리 평면도와 수치를 바탕으로 3D로 레이아웃을 짜면서 천장의 높이 작품간의 너비와 배열등을 통해, 갤러리 까지 찾아온 관객이 어떤 느낌을 받을지에 대한 시뮬레이션까지 할 정도로 전시 계획을 짰다.

그리고 오늘 도쿄에 도착해서 내가 쓸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전시 계획 레이아웃에 맞춰 대여섯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여서 사진이 액자에 담기고, 벽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작품의 형태가 나타난 순간 말로 하기 힘든 기분을 느꼈다.

굳이 말로 투박하게 바꾸자면,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혹은 없었어야 할 것에서, 전조 없이. 가슴에서 살짝 소리 없이 울컥하는 느낌과 약간의 비릿한 감동적인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이 순간 혼돈스러웠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 같은 무척 짧고 그리고 긴 하루 였다.

한자리 숫자

시대는 언제나 변한다. 아니 언제나 변하기에 시대를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감지는 전쟁일 때도 있고 혹은 혁명이나 경제변화에 따른 일상의 형태가 달라지고 사람의 행동 양식의 변화로 느낄 때도 있다. 이런 거시적 시점 외에도 시대 변화를 감지하는 다양한 것들이 있을 텐데 그중 하나가 자신이 애용하는, 특정 목적을 위한 제품군의 성향, 또는 조금 넓게 보자면 오랫동안 개성이 유지된 특정 메이커의 제품 변화를 통해서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때론 좋은 시대가 되었다고, 혹은 한 시대가 끝나버렸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가 되어 씁쓸한 기분이 들게도 한다. 단지 좋다 나쁘다의 문제로 간단히 수렴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지난한 삶의 관성과 생각의 기준이 단단해진 사람에겐 대체로 좋은 감정일 확률은 낮은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자면 내연기관의 발명으로 인류의 삶이 송두리째 바꿔버린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는 당연하게도 이러한 발전 속에서 기존의 건전하다고 여겨왔던 가치가 흔들리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공장 자동화에 들어가는 로봇, 컴퓨터 그리고 최근엔 인공지능까지.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앞서 이야기한 내연기관, 정밀 로봇, 컴퓨터 그리고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딥 러닝을 통한 인공지능 그리고 그와 연관된 서브 도메인에 관한 자료를 순수한 호기심으로 찾아서 볼 만큼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과 발명 속에 인류는 조금씩이나마 너 나은 방향으로 전진한다고 믿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은 로맨틱함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덧 40대가 되어가면서 어쩌면 나 또한 명백한 기성세대가 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신에게 하는 때가 있다.

나의 경우는 아무래도 카메라에서 그런 것을 쉽게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특정 메이커 혹은 특정 제품군의 마켓에서 다양한 회사가 경합을 벌이는 것들. 거기엔 그 시대가 향하고자 하는 혹은 충족시키고자 하는, 반대로 말하자면 결핍되어 있거나 어쩌면 예전엔 중요한 가치였지만 지금은 그것이 의미가 없는 가치로 변해버린 것들이 제품에 나타나고 그것을 느끼게 된다.

단순히 필름의 판형이라던가 혹은 조금 크게 봐서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정도의 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사람마다 기본적인 기분이 있듯 카메라에도 기분이라는게 있는데, 아니.. 그것보다는 성격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성격은 메이커마다 당연히 다르고 그렇기에 해당 메이커는 독자적인 팬이 생기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시대를 관통하는 큰 흐름 혹은 줄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본질에서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변해버렸다는 것을 감지해버리는 것이다.

감지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나의 경우 대표적으로 딱 한 가지만 말해야 한다면, 셔터 릴리즈 버튼을 누를 때 이다. 셔터 릴리즈 버튼이라는 것은 실로 섬세한 것이라 단순히 누르는 버튼이 아닌 그 한 동작을 통해 세밀하고 섬세하며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 전체가 움직이는, 시작과 끝이 동시에 존재하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시세계에서의 것들 속에서 때론 절절하게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절감할 때가 있다.

카메라가 움직이는 동작 혹은 방식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인간의 사고 동작과 질감 면에서 유사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같은 플래그쉽 계열이라 하더라도 시대에 따른 변화는 있어왔지만 그럼에도 전체를 관통하는 사고방식이 표현되어져버리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변한다는 것은 사고방식의 혹은 세상을 재단하는 울림과 리듬감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여러분이 많이 구입 해주신 덕분에 5년 만에 개발비를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시절 좋은 때와 달리 점점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시대가 되어 버렸거나, 혹은 사람들이 더 이상 기존에 존재하던 관통하는 가치에 대하여 의미 부여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일 때도 있다. 혹은 제조사가 단순하게 실수를 했거나.

한참 이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약간 다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거의 한계까지 아슬아슬하게 원가 절감 노력을 하여 상당히 괜찮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때론 순수하게 경외감마저 들 때가 있다. 그야말로 프로의 설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본다면 최근에 나온 최신형 카메라들의 물리적, 동작적 질감은 외려 과거보다 더 퇴행했다고 느낀다. 어떤 종류의 강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내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여유가 없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큰 맥락으로 두고 봤을 때, 아마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레인저 파인더가 세상에 전부였을 시절에 나왔던 SLR카메라에게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고,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갈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존의 가치가 낮아지거나 심지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적어도 특정 클래스에 있는 혹은 특정 목적성을 가진 카메라의 시대를 관통하는 것들이 변해버렸다는 것을 느꼈을 때 드는 쓸쓸함과 적적함을 두고 보수적이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은 아니리라 믿고 있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나의 20년 작업 인생 동안 N모사의 카메라와 언제나 항상 함께 살아왔던 나에게 있어서 최근 N모사의 모 카메라를 사용하고 나서 드는 생각을 두서없이 써내려가고 싶었다.

어떤 의미에선 지금껏 살아오며 어떤 큰 족적을 만들어내지 못한, 그리고 꼰대라고 불려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시기의 나에게 있어서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으며 툴툴거리는 어린아이 투정과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바라고 있으며 믿고 있는 것은, 적어도 핸드폰 카메라가 아닌, 카메라라고 불리는 독립된 물건을 각자의 이유 혹은 감정으로 손에 쥔 사람의 각자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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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행하고 있는 작업의 맥락 속에서, 단 한가지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을 계속 촬영 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간 이런 시간이 올거라 생각 했던 때가 예상 보다도 빨리 왔다.  이전에 몇 번 촬영할 수 있는 때가 몇 번 있었지만 아버지를 촬영 하는 것을 나는 구태여 뒤로 물려두고 있었다.

덩어리진 무색무취의 연기를 스윽 하고 빨아당기는 감각이 올때까지 마치 아무런 일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때, 나는 촬영을 했다. 촬영 하는 동안 나의 뇌속에는 수십개의 생각들이 얽히고 얽혔지만 그와 동시에 촬영하는 나는, 명확하게 분리 되어 있었다. 보통은 자각 할틈도 없는 것이 보통이지만, 간혹 나의 뇌와 촬영하는 내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감각을 자각할때가 있는데 때론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해지거나 어떨땐 스스로에게 어떻게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을 만큼 소름이 돋기도 한다. 이런 감각은 나에겐 불쾌하게 느껴진다.

2주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아버지와 오늘 봤던 아버지는 그 짧은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언뜻 연한 자락 같은 죽음의 냄새가 명확하게 인지 된다. 세포의 텔로미어가 거의 소모되어 개체로서 남은 수명을 수치로 환산 할 수 있을 정도의 엷은 죽음에 이미 먹혀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노출을 맞추고,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고 촬영을 한다.

이 작업이 도대체 몇년 안에 끝날 수 있을지 난 감이 오지 않는다. 아니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도 감이 오지 않는다. 설령 어떻게 크기를 조정해서 만들었다고 한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도대체 어느 곳에 어떤 식으로 어떻게 전시 될 수 있을지 아니 그 이전에 누가 이 작업을 받아 줄지 조차 나에겐 감이 오지 않는다.

계속 만들어 가는 것 외엔 달리 내가 할 수 있는건 없다.

아직까진 늙지 않은 여름

만약, 내가 200자 원고지 50~70매 정도의 아주 짧은 단편 글을 쓴다면 마지막 문장을

\”여름을 좋아합니다.\”

라고 쓰기 위해서 일 정도로,
여름을 좋아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된다는 것

얼마전에 어떤이가 제법 고가의 대형 매트 커터의 직각을 맞추는 앵글 룰러를 실수로 치고 지나갔다. 애초 나 외에 사람이 거의 올 일이 없는 자리로 안전하게 세팅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 생각이지 사람 움직이는 것을 완벽히 예상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발생했을시 심각한 문제 (끔찍 할 정도로 귀찮은 일이 생기는)가 발생 할 수 있는 확률이 있는 자리에 설치한 나의 실수 또한 크다.

그럼에도 그 순간 너무 멍해져선 깊은 짜증이 용암처럼 분출 하려는 것을 어떻게 겨우 겨우 넘기고, 어쩌겠냐 다시 맞추면 되지. 라고 넘기고 얼마간 방치했다. 이걸 다시 맞추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90도 직각에서 오차 범위는 0.1도 보다 작아야 한다. 작은 사이즈는 표시가 그리 나지 않으나 매트 사이즈가 커지면 완성된 매트의 크기 오차는 3~4mm 정도로 이 정도면 눈대중으로 봐도 표시가 날 정도의 상당히 큰 오차가 발생한다. 90도로 자르면 당연히 90도로 잘려야 한다. 그래야 사각형이 미묘한 마름모꼴의 사각형이 아닌 정확한 사각형이 되고 눈으로 봤을때의 느껴지는 기분 또한 정갈해 보인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잘 속고 쉽게 피로해지며 쉽게 착각하는 것이 눈이고 광학적으로 작동은 하지만 뇌가 인지 하지 못하므로 감각 기관으로선 참 부정확한게 눈 이기도 하지만, 반면 눈 만큼 민감한 것도 드물다. 미묘한 마름모꼴의 사각형은 정갈한 느낌, 완결된 느낌이 들지 않고 어딘가 미묘한 냄새의 흔적 처럼 인지의 영역을 살짝 벗어난 것 처럼 심리적 감각으로 느끼는 불안함이 있다.

직각으로 잘라야 하는 것은 당연히 직각으로 잘려야 한다. 직각으로 잘려야 하는 것은 당연히 직각으로 잘라야 한다. 목적과 결과, 결과와 목적, 어느 쪽을 앞에 두더라도 상관 없는 지극히 심플하고 당연함에 대한 것.

하지만 0.1도의 차이로 뮤지엄 매트가 쓰레기통에 꾸역꾸역 들어가고 몇 시간 동안 끙끙거리면서 맞추면서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고, 계속 하다 보니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싶은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작은 사이즈에선 오차 범위가 작은데.. 라던가, 큰사이즈 일때 발생하는 2~3mm 정도 차이를 사람들이 알까? 아니 그 이전에 설령 안다고 한들 그냥 ‘당연한’ 오차 범위라고 생각하는건 아닐까? 그냥 쓸때 없이 나 혼자서 이러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하면 약간 이런 풍으로 바뀐다.
그래서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 이기도 하지만..

담배를 좀 피우고, 커피를 좀 마시고, 음악을 좀 듣고, 빈둥거리면서 좀 쉬었다가 테스트로 만들어 놓은 매트를 다시 손에 쥐고 보고 있다 보니.. 개뿔이 남이 알던 모르던 내가 보면 바로 표시나고 보기 상그럽고 짜증나는데 남이 그렇던 말던 알게 뭐람? 이유고 남이고 지랄이고 필요 없고 일단 나의 이 불쾌함을 지우는 것으로 목적이 변질 되었다.

0.1도
뮤지엄 매트 보드는 계속 썰려나가고 심지어 윈도우 매트 의뢰 수량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무슨 삽질이람? 싶다가도 묵언으로 끈기 있기 계속 좁혀가던 중에 드디어 직각이 만들어졌다. 몇번이고 검증하고 만들어봤지만 당연한 90도 직각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희열감이 있었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면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되었을 뿐이다. 희열 같은게 있을리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마음의 평화는 찾아왔다. 단순한 손동작으로 칼날이 쏙 하고 들어와선 두터운 종이를 쓸고 나가는 단순한 동작의 반복으로 당연한 직각의 사각형이 만들어진다. 단순하고 우아하다. 쉽사리 눈에 띄이지 않는 우아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 애초 이런거에 우아함을 느낀다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연한게 당연하게 된다는 것은 간혹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신뢰 할 수 있는게 존재 한다는 것. 내가 들인 시간과 정성 만큼 정직하게 보답하는. 그 신뢰가 온전한 결과로서 나오는 것들은 삶속에서 접하기 너무나 드물기에, 0.1도의 차이를 넘어 당연한 직각이 만들어지는 매트 커터 따위에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서글픈 상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되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기에 어떠한 감흥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이 좋다. 삶이라는게 보통은 너무나 지난하고 복잡하며 단순하고 구질구질하며 믿기 어렵기에.

그나저나, 그렇게 당연한 매트 커터를 나는 여전히 사고가 발생한 그 자리 그대로 두고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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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다녀오고 나서 상태가 더욱 나빠진 스페인 출신의 에스프레소 머신. 이 간단한 기계를 수리센터에선 제대로 얼라이먼트도 맞추지 못한 녀석을 보다 보다 짜증난 김에 뜯어서 직접 손을 봤는데 잘 안되었다.

덕분에 한동안 폼 잡으면서 드립을 내리는 기간이 쭈욱 이어졌는데, 세삼스럽지만 에스프레소와 드립의 맛은 같은 원두라도 너무나 달라서 내심 즐겁기도 했었다. 하지만 계속 이러다 보니 반대로 에스프레소가 너무 마시고 싶어져서 오늘 하루 업무 다 마치고 각 잡고 싹 분해해서 다시 조립하였더니 잘 돌아간다.

문제는 이렇게 고치고 나서 한잔 내려 마셔보니, 기계 조성과 습관이 바뀌었는가 맛있게 먹던 그 맛이 안난다. 다시 데이터 잡으려니 한숨..

뭐, 살아간다는게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Summer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다가 문득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전방위적 포근함을 아무런 사심 없이 활짝, 깊게 가슴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선풍기의 부드러운 바람이 나의 머리카락과 옷을 스치고 창가에 가까운 쪽은 햇볕으로 가득차오르며, 깊은 곳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무조건적인 사랑과 닮아있어서 그것이 가슴이 아플 정도로, 서글플 정도로 감동적이어서. 예고도 없이 눈가에 물이 맺혔다. 분명한 것은 제법 몇십분 전 부터 그랬었을터였다. 문득 내가 이러한 햇볕이 작업실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 음악이 귀에 들렸을때였다. 최대 파워 소비량이 1500VA 앰프의 볼륨을 절반 보다 조금 더 크게 해놓고 음악을 셔플도 듣다가 이 곡이 나온 것은 그야 말로 우연이었을 터이다.

조금씩 조금씩. 끈기있게. 여름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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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운명 앞에, 믿는다는 행위는 너무나 덧없으며 또한 허무하다.

녹색방

그리고 시간이 제법 흘렀다.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반 시체가 되어간다는 감각을 지나, 누런 고름의 비린내를 남긴 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3년의 시간을 넘어 마주하고 확인을 했다. 그리고 싫든 좋든 나는 또 한 번 피할 수 없는 시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마지막은 신주쿠 교엔이였다. 그날로부터 인간으로서 나를 이루는 중심 혹은 나라고 하는 인간의 축이 변한 세 번째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의지나 바램따위와 상관없이 네 번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이것은 도망칠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피할 수 있다면, 도망칠 수 있다면 제법 댓가를 치러도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 정도 횟수를 반복하면 익숙할 법도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될지 예측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겐 두려운 것이다.

출발하기 불과 수일 전에서야 여권의 10년 유효 기간이 지난 것을 알게 되었다. 발급에 일주일이 걸리는 경우도 있는 터라 어마어마한 귀찮음을 감수하며 구청에 신청했다. 다음날 서울 출장을 갔다 남은 시간에 오랜 친우를 만나서 한강을 제법 걷고 담배를 피우고 매점에서 파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맛이어서 웃음이 터지는 커피를 길게 그리고 맛있게 마셨다. 연락할까 싶은 여자 몇 인가 머릿속을 잠시 돌았지만 관두었다. 바로 저녁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 터미널에 도착하여 새까만 밤 속에 있던 하얀 목련을 몇 장 찍었다. 작업실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되었다. 그리고 도쿄에서 개인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의 서류 뭉치가 담긴 항공 우편을 받았다.

깊고,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무척 길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종류의 기쁨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무척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서류를 주의 깊게 세 번 더 읽고, 잠시간 그대로 의자에 깊숙이 파묻힌 채 불 꺼진 작업실에서 불 꺼진 모니터를 어둠 속에서 응시했다. 커피를 아주 진하게 내리고 담배를 피우고 이상하리 만치 배고프지 않았음에도, 한참 시기를 놓친 저녁 끼니를 억지로 꾸역꾸역 밀어 넣고 긴 밤을 견디다 잠이 들었다.

타이밍이 좋았다면 좋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신적 도살장으로 끌러가는 것 외엔 도쿄에서는 딱히 가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해야만 하는 것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도쿄행과 전시 결정의 시기가 겹친 덕에, 해당 전시장 조명 특성을 계측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사롭지만 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하면 좋고 하지 않아도 그리 문제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마음이 옥죄는 느낌을 완화 시켜 줄 것이다. 안 해도 그리 문제가 없는 일을 한다는 일련의 흐름은 나에겐 그런 것이 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몸을 짓누르는 중력이 목 뒷부분을 뻐근하게 한다. 가속도를 내고 있는 비행기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오르는 순간을 나는 좋아한다. 일상에선 거의 느낄 일이 없는 중력에 잡혀있던 나의 몸이 엄청난 힘으로 탈출할 때,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자리에서 관성과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중력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랜딩 기어를 집어넣을 때 꺼꺽거리는 정상적이지만 불길한 소리. 기류를 올라타고 내려 타며 흔들거리는 느낌, 기체 전체가 오른쪽으로 롤을 할때 몸 전체가 쏠리는 일련의 이륙 시퀀스 그 자체를 좋아한다. 맛대가리 없는 싸구려 기내식을 밀어 넣고 잠시간 눈을 감았다.

비행기의 오른편으로 후지산이 지나갈 때 즈음의 외벽 온도계는 영하 48도를 가리켰다. 공항에 도착해서 1박에 만 오천 원이라는 믿기 힘든 가격의 저렴한 숙소가 있는 신주쿠까지 갔다. 원래라면 조그만 사무실 용도의 방 하나에 2층 침대를 우악스럽게 우겨 넣어 16명을 수용하는 어떤 종류의 시설 느낌이다. 하지만 나무관과 같던 이전 캡슐 호텔에 비하면 가격도 그렇고 여러모로 낫다. 어디선가 딸기 캬라멜과 흑설탕이 녹을 때 냄새와 싸구려 화장품과 싸구려 버터와 사과잼 들을 한꺼번에 섞은 다음에 유통기한이 지나고 살짝 발효되기 바로 직전의 향기가 난다든가, 소위 정상적인 게스트 하우스처럼 라운지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여자에게 작업을 건다든가 술을 같이 마신 다던가 하는 정겨움 같은 건 전혀 없다. 하지만 나에겐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동생을 만나고 밥을 먹고 담배를 조금 피우고 잠시 헤어진 뒤 약속했던 사람과 9년 만에 만났다. 여러 가지 것들을 기억해주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얼굴을 보니 문득 세월의 거대한 흐름이 한차례 이상 지나간 흔적이 남은 얼굴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원칙이 대단히 중요한 사람임에도, 여러 가지 배려를 받았다. 무척이나 고마웠다.

9년이라는 것은 순간이기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너무나 긴 시간이다.

다시 동생과 합류해 저녁을 먹고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유통기한이 몇 년은 지난 카라멜 향이 나는 숙소에 몸을 뉘었다. 한 것은 거의 없었지만 몸이 고단했다. 중간에 두어 번 깼지만 이층 침대의 무척 낮은 천장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잠들길 반복했다. 겨우 잠에서 깨어 일어나니 거울을 보지 않아도 확연히 알 수 있을 만큼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미지근한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바로 길에 올랐다.

아직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다. 이대로 그 장소에 갈 것인지 아니면 긴자에 가서 사전에 처리하고 확인해야 할 것인지. 일기예보를 살펴보니 오후부터 비 소식이 있고 다음 날은 날씨가 좋다고 한다. 내가 가야 할 그곳은 날씨가 좋아야만 했다. 그래서 긴자에 가기로 하고 마루노우치 선에 몸을 실었다. 몇 정거장 가던 중 신주쿠교엔앞 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대로 내릴까 말까 하다가 관두었다. 만약 간다고 하더라도 그 장소에 간 다음 필요로 할 때 가면 될 일이다. 딱히 예정된 일도 급한 일도 정해진 일도 없었다.

긴자에 도착해서 일부러 조금 걸었다. 돈의 자리라는 지명 그리고 버블시대때 어마어마한 돈을 꿀럭 꿀럭 들이마시고 동시에 만들었던 역사와 달리,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지하철에서 지상까지 나는 길은 무척이나 낡고 오래되어 금이 간 곳과 보수 흔적을 보며 지상으로 나왔다. 긴자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마치고 밖을 나오니 날이 우중충하다. 적당히 길을 걷다가 아키하바라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뭘 사고 싶은 것도 전혀 없었다. 문득 배가 고파 460엔짜리 싸구려 가츠동을 먹었는데 참 맛이 없었다. 묵묵히 밥을 밀어 넣고 다시 거리로 나서서 걸었다. 단 한 컷도 촬영을 하지 않았고, 단 한 컷도 찍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아키하바라 중에서 가장 메마른 느낌이었다. 아는 동생을 불러내어 저녁 시간을 같이 보냈다. 조금 걷고 저녁을 먹고 다시 조금 걸어 시부야에서 후식으로 스트로베리 밀푀유와 훌륭한 맛의 커피를 먹었다. 둘의 궁합이 너무나 훌륭해서 적잖게 기분이 풀렸다.

갑자기 비가 엄청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촬영을 하는데 등 뒤에서 슬쩍 우산을 받쳐다 주었다. 걸으면서 백여 컷 정도를 촬영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숙소로 돌아가서 잠을 자고 일어났다. 이스트를 넣은 반죽처럼 몸과 손가락과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내일은 기필코 날씨가 청명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좋았다. 날씨가 좋았다. 날씨가 좋았다. 날씨가 좋았다. 날씨가 좋았다. 두렵다. 카메라와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억지로 길에 올라 목적지를 향했다.

플랫폼에 내려 길에 오르니 명확한 악의와 저주를 품은 햇살이 비열하게 웃으며 내 심지 속 단단한 얼음을 기분 나쁘게 핥는다. 불쾌하다. 우에노 역까지 이동하는 전철 안에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평온함을 느꼈다. 일종의 포기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에노 공원에 도착하여 묵묵히 계단을 오르니 평일임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꽉 들어찬 풍경이 나를 압도했다. 갑자기 숨이 가빠진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도망가면 될 일이다. 도망가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마침 근처 구석 자리에 흡연 장소가 눈에 띄어 담배 한 개비 분의 두려움을 태워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감싸는 시원한 바람과 티 없이 맑은 따스한 햇살과 분홍색 꼭지가 살짝 보이는 개화 직전의 봉우리 절반과 활짝 핀 벚꽃 절반이 한 그루 나무에 있었다. 그것은 겨울과 봄 사이의 엷디엷은 찰나의 경계였다. 그런 것들이 끝이 보이지 않게 늘여져 있었다. 수많은 노란 머리의 사람들, 많은 중국 사람들, 막 사귀기 시작한 선명한 빛의 커플들, 느긋한 중년 커플들, 노인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부부들. 그리고 문자 그대로 평범한 하루일 뿐인, 평일 이 시간에 여기에 올 수 있는 직업 혹은 상태의 사람들이 각자의 조그만 공간을 가지고 걷고 앉고 먹고 마시고 사진을 찍고 찍히고 웃었고 때론 무표정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을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드문드문 촬영을 하기도 하고 병신 같은 벚꽃을 찍기도 하고 그 병신 같은 벚꽃을 찍는 사람들을 찍기도 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아름다운 봄 이였다.

3년의 밀도를 가진 조그만 총알이 아릿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나의 뇌를 뚫고 지나가는 감촉이 느껴졌다. 조깅을 하듯 숨이 조금 가빠오기 시작했지만 멈추지 않고 걸었다. 수많은 벚꽃이 굵은 비계 덩어리처럼 나의 옆을 지나간다. 걸어도 내가 걷는 것이 아닌 나는 멈춰있고 풍경이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지러웠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지만 침착하게 진정을 하고 마침 근처에 보이던 큰 나무 그늘에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태웠다.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가 어디인지, 얼마나 걸어 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까와 똑같은 사람들의 풍경이 눈앞에 보였다. 며칠째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땀이 났는지 왼쪽 어깨의 살갗이 벗겨진 것 처럼 쓰라리고 따갑다. 그것이 나를 진정 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담배 한가치를 더 태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길 중앙으로 들어서 몇십 걸음을 옮겼다. 분명 진정 했을 터이다.
메마른 전조조차 없이 눈 뜬 채 그대로 눈꺼풀에 물이 조금 맺혔다. 몇 번인가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지만, 억누르려 하면 할수록 어떻게 도저히 멈춰지지 않는다. 가다가 잠시 멈추고 사람들을 조금씩 보고 진정이 된 것 같으면 다시 걷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다 갑자기 쏟아지듯 눈물이 터졌다. 대로에서 벗어나 옆으로 몸을 피했다.

온 사방이 햇볕이었다. 태양 아래서 누런 카메라 가방과 검은 카메라를 �タ㈇플� 회색 옷을 입은 내가 콧물까지 흘리며 울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몇 시간이고 울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동시에 빨리 끝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평생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콧물을 풀고 그자리에서 그대로 담배를 두 개비 피우고 높다란 쓰레기가 일사불란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보고 할머니와 늙은 여자와 중년의 여자와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들의 수다 소리를 듣고, 할아버지와 늙은 남자와 중년의 남자와 젊은 남자와 어린 남자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기린이 무척 보고 싶었다.
그대로 우에노 동물원까지 입구를 찾아 입장료를 치르고 멍청할 정도로 넓은 동물원에서 기린을 찾았다. 두 시간 가까이 찾았지만 결국 기린을 보지 못하고 뒷출입구로 나왔다. 갈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30분 정도를 빙 돌아 다시 우에노 공원에 갔다. 희한할 정도로 아까와 풍경이 다르지 않다. 다시 걷고 사람들을 봤다. 그리고 같은 풍경임에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래. 이거면 된 거다. 이 짓거리를 하기 위해서 나는 온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우에노 공원을 빠져나오니 그제서야 해야 할 남은 일들이 생각이 났다. 모조리 해치운 다음 약속 장소인 신주쿠에 가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키치조지의 이노가시라 공원에도 갔다. 질척한 봄의 어두운 밤 검은색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 보트를 찍었다. 담배를 좀 피웠고 좀 걸었고 좀 마셨다.

다시 혼자가 되어 가부키쵸를 천천히 걸었다. 많은 젊은 남자와 많은 젊은 여자와 캬바쿠라에서 여자가 나와 손님을 배웅하는 모습과 흑인 삐끼들 그리고 토에이 극장 앞 광장이 휑하니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허무한 광경을 보았다. 온갖 욕망이 들끓는 최대 환락가라고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침잠한 느낌이다. 그 일대를 네 번 돌며 촬영을 하고 마지막엔 골든가로 향했다. 쇼와시대에서 그대로 멈춰 버린듯한 어둑신하고 꿉꿉한 간판과 좁은 골목과 사람들을 보고 달팽이 위에 나팔을 부는 소년의 청동상을 찍었다. 이 또한 봄이었다.

숙소에 가는 길을 일부러 빙글 돌아서 멀게 멀게 걸었다. 도착하니 거의 밤 3시쯤이 되었다. 숙소의 문을 여니 한국 여대생 한 명이 족짜 만한 테이블에서 컵 신라면을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약간의 농담을 하고 자신 몫의 컵 신라면을 나에게 권했다. 사양하지 않고 먹었다. 고향의 맛이 나지 않느냐는 여대생의 말에 네, 그러네요. 라고 말했다. 별 감각 없이 기계적인 신변잡기를 예의를 갖춰 잠시 나누고 나는 내일 귀국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정말 아무래도 상관 없을 이야기를 몇마디 나누고 안녕히 주무세요라는 말을 들은 후, 다시 숙소에서 나가 담배를 몇가친가 태웠다. 당장 변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딱딱한 카스테라 같은 외로움이 발목 복숭아뼈 정도까지 잠겼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바로 잠들지 못하고 몇 번이고 뒤척이다가 잠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돌아갈 채비를 하고 아침을 먹는 뒤, 귀국을 위한 사사로운 절차를 빈틈없이 클리어 해나갔다. 작업실의 철문을 열고 도착하니 저녁 8시 가까이 되었다. 카메라 가방과 배낭과 카메라를 내려놓고 한동안 몸을 의자에 길게 뉘인 체 눈을 감았다. 무척 피로했다. 얼만가 지난 후 먼저 고개를 들고 뻐근한 뒷목을 풀고 몸을 일으키고 다리에 힘을 줘 일어나서 카메라 가방을 정리하고 렌즈와 카메라를 정리하고 배낭을 정리해서 넣어두고 빨래를 하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달라지지 않았다. 동시에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다. 너무나 소중했던 것이 변해버렸다. 9년 혹은 3년이라는 것은 순간이기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너무나 긴 시간인 것이다.

전등을 끄고 몸을 침대위에 던져놓고 어둠속에서 천장을 잠시간 보았다. 새벽의 창문 밖에서 세어들어오는 불빛이 천장에 묻어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꼼짝도 하지 않고 몇분인가 보다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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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가 되면 몸도 마음도 반쯤 물 먹는 스펀지처럼 된다. 봄이 점점 다가오는 소리, 봄이 바로 문턱에서 교활한 웃음을 지으며 문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생생하다. 이젠 익숙한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괴로움이 상쇄되거나 하는 일 같은 건 없다. 난폭하게 지축을 뒤흔드는 전차 궤도의 바로 수센치 옆에서 몸과 마음을 웅크리고 눈을 감는 것. 그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앞으로 어떠한 인연이 있어서 봄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런지 난 쉬이 상상되지 않는다.

비가 내렸다. 탁한 먼지 냄새가 나는 축축하고 약간 서늘한, 하지만 명확한 악의를 품은 부드러운 비가 내렸다. 이십 미터 즘의 거리에서 들리는 버스의 굵은 엔진 소리와 타이어가 물을 찢어내는 소리와 크락숀 소리가 들린다. 대기 중의 공기가 혜성처럼 움직이는 듯한 소리다. 검은색의 차분함 속에선 너무나 크게 들리는 소리다.

그저 이 기다림이 어떠한 결론이 되던 빨리 끝나버렸으면 하는 바램과, 제발 오지 않았으면 하는 두려움이 함께 있다. 천천히 천천히 시간은 흐르고 있고, 교활하고 영민하게 시간은 흐르고 있다. 문득 내가 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귀 기울여 들을 것이 아니다. 바램도 기쁨도 엷은 회색의 그림자 같다. 걷고 보고 먹고 앉고 몸에 나쁜 담배를 태워가고 입은 다물고, 결코 느끼지 못할 지구의 자전을 감각 해보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

간혹. 문득 상쾌한 바람 자락이 뺨과 귀를 스치는 때가 있다. 그때는 눈을 질금 감고 싶어진다. 눈알이 빠져라 싶을 정도로 감고 싶다. 눈을 뜬 이후의 광경이 나는 두려운 것이다. 평생 눈을 감고 살 수는 없다. 눈을 감았을 때와 떴을 때의 것이 같지 않다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다. 그래 봐야 둘 다 나의 착각과 오해일 뿐이다. 조금 더 겸손하게 말하자면 찰나의 진심 정도인 것이다. 파편화된 조각을 주워서 녹색 접착 테이프 따위로 얼기설기 조악한 모양을 만들 뿐이다. 손가락 하나로 스윽 밀면 모양이 일그러질 그런 것을 계속 반복할 뿐이다. 어느 식으로든 자신이라고 하는 왜곡된 만화경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 따위 없다고. 그럼에도 사랑 밖에 없다고. 아니 어쩌면 이것마저도 그리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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