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가 끝난 후 갤러리 오피스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에 비추어진 통계 수치 중, 일일 평균 관람객 수 200여 명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매일 200여 명이 내 작업을 보고 나서 어떤 기분으로 갤러리 문을 나섰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갤러리에 있는 동안 많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어설픈 일본어로도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한 갤러리 관련에 업무를 하고 있는 분과의 식사와 술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던 나의 작업 그리고 일본과 그 외의 나라에 대한 전개와 현실에 관한 것을 나눈 것 또한 의미가 있었다. 또한 당신의 작업이 마음에 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이름, 주소, 이메일 혹은 감상이 쓰여진 방명 카드가 내 생각 이상으로 많아서 놀랬다.
그리고 나의 작업을 갤러리에서 직접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과 적지 않은 여비까지 써서 한국에서 일본까지 와주신 분들에겐 격려 이상의 큰 힘을 받았다.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재차 전하고 싶다. 또한 직접 방문해 주신 분 중에 아주 오래전 부터 나의 작업을 봐주시고 힘을 얻었으며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해주셨던 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그간 내가 무엇을 만들고 있었는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또한 작품을 구입 해주신 분들에게 재차 감사의 마음 올린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수많은 생각 들이 있었으며 수많은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다음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또한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현실에 대한 인식의 결을 조금 더 넓힌 경험이기도 했다. 전시를 하게 되어 기뻤고 또한 마음이 가벼워졌으며, 전시가 끝난 지금에는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현실적 상황 인식에 따른 행동 결정과 그에 따른 필요한 댓가의 무거움이 더 커지기도 했다.
내가 일본에서 개인전을 함으로 인해 주위의 수 많은 분에게 민폐 끼친 것과 그리고 그 민폐를,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들의 마음, 나를 도와주고 있는 분들의 마음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인간으로서 지난한 삶이나 현실과는 별개로 나는 제법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실감을 느끼기도 했다.
전시가 결정된 수개월 전, 나의 가슴속에는 이미 끝난 전시였다. 하지만 실제 전시를 하여 몸으로 느껴지는 것은 가슴의 그것과는 다르다. 많은 것들이 정리되어 가벼워졌으며, 이번 전시로 얻은 것들에 의해 더 무거워진 것도 있다. 다음 걸음 앞에 펼쳐진 현실은 나에게 현실적 행동을 종용한다. 나는 그것이 그리 틀린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작업을 한다는 것, 그것을 펼쳐나간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다만 그것을 구체화할 큰 그림은 그려졌지만 그것을 구체화 현실화하는 지평의 풍광은 칠흑같이 캄캄하다. 하지만 멈추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칠흑에 녹아버릴 것이다.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삶의 결말 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 어떤 누구에게도 공평한 것 중 하나는 끝이 온다는 것이다.
의식적이였던 무의식적이였던 한 패로서 당신이 어쩌면 나에게 종용 한 것인지도 모른다. 새삼스럽지만, 걸을 수 있을 때 까지 힘을 내어 더 걸어보려 한다. 그것이 이번 전시를 통해 얻은 것 중 가장 큰 것일지도 모른다. 그 뒤에 끝을 생각해도 틀린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 생각하려 한다.
전시장에 와주신 분과 작품을 구입 해주신 분과 저의 작업을 꾸준히 보아주신 분들에게 깊이 고개 숙여 감사한 마음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어떤 노래의 가사가 생각난다.
\’아지랑이에 몸을 빌려 길을 가리키는 처녀를 쫓아
높은 곳에 나타난 이름모를 광야는 그립게도 그립게도,
그것이 꿈속에서 보였던 거리라고 그림자가 속삭였다
다가올 날도 그리 다가올 날도 몇천의 분기를 넘을때
어두운 곳의 현인이 버려진 날들을 모아서
바닷가에 바닷가에 이름 모를 불꽃을 피웠다\’
전시를 위해 도쿄에 온 이후에도 계속 작업을 했다. 어쩌다 보니 삶을 충분히 돌아 볼만한 연령인 사람들의 촬영이 많았던것 같다. 마침 내일은 갤러리에 나가는 날이 아니였기에 그간 몇가지 생각을 정리하여 하라주쿠에 가기로 했다. 마침 3일 단위로 숙소를 옮겨 다니는 나름의 원칙으로 다음 숙소는 신주쿠에 있는 저렴한 숙소로 가야하기도 했고 신주쿠와 하라주쿠는 가깝기도 했으며 익숙까진 아니더라도 몇번 가본 적이 있었기도 했고, 제일 중요한 점은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바로 카메라 가방과 카메라, 담배를 챙겨서 하라주쿠로 향했다. 도착하는 순간 왠진 모르겠지만 느낌이 기묘하게 싸-한 느낌이 든다. 일단 역 바로 앞에 있는 흡연 스팟에서 한모금 하며 주변 분위기가 몸에 익도록 한다. 하라주쿠 역에서 전차가 도착할때마다 문자 그대로 많은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들이 쏟아져나왔다. 두가지 사람들이 있었다. 끊임없이 사람들은 어디론가 분주하게 이동중인 사람들. 멈춰있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고개를 숙여 핸드폰만 바라보는 부류. 아마도 여기서 촬영은 결코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근처를 돌며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사진을 찍으려 할때마다 어찌된 일인지 대단히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야 나의 행색이라고 한다면 하라주쿠에 어울리는 차림이 전혀 아니고 때꾹물이 줄줄 흐를것 같은 낡고 볼품 없는 갈색 캔버스 가방에 (원래 그런 컨셉으로 나온 카메라 가방이지만) 머리도 길고 수염까지 덕지 덕지 붙어 있으니, 경계심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평소의 감각과 다르게 유난히 경계심이 높은 느낌이다.
두 시간 정도 돌면서 촬영을 했지만 촬영은 노력과 시간을 들인것 보다 못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촬영하는데 있어서 거절 당하는 경험이야 당연한것이고 심지어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 엄청난 인파가 움직이는 속에서는 촬영은 커녕 말을 거는 것 조차 힘들기 때문에 하라주쿠 메인 스트릿으로 내려가는 것은 작업 진행에 전혀 도움이 안될 것이다. 또한 목을 길게 늘인체 핸드폰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또한 쉽지 않았다. 다들 여기엔 명확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온 것이다. 나는 계속 말을 걸고, 거절의 다양한 형태를 경험하며 계속 말을 걸었다. 그리고 때론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일본에 살고 있는 동생과 합류했다. 그 사이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고 답답한 마음에, 하라주쿠에 있는 젊은 사람들이 왜이리도 경계심의 수위가 높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 중엔 하라주쿠 일대에서, 길거리 AV 배우 캐스팅을 일컷는 ‘카라스’ 라는 것이 제법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카메라를 들고 말을 걸면 매우 높은 확률로 그쪽 사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경계심의 수위가 높을지도 모른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나의 행색도 문제였겠지만..
하라주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메이지 신궁으로 천천히 걸었다. 경내에 들어서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촬영했다. 그 중에서 그늘 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는 젊은 여자 두 명에게 말을 걸어 촬영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혹은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정도로 보였다. 순서대로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촬영 하는 동안 한사람은 소리를 들을 수 없도록 막아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귀를 막아주었다. 그 모습이 참 귀여웠다. 준비가 끝나고 먼저 첫번째 사람의 촬영을 시작했다. 지금은 여기서 촬영의 내용을 말 할 순 없지만, 상대가 나의 말을 들었을때
순간 나의 가슴이 새파랗게 시릴정도로, 따뜻하고 밝고 활기차며 꾸밈없고 그늘 없는 웃음속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경황없이 이어갔다. 나는 그 웃음이 너무나도 아팠지만 나도 같이 웃으며 촬영을 계속 했다.
두번째 사람에게도 역시 같은 말을 하고 촬영을 했다.
역시나 같았다. 휴식시간도 없이 한번에 두번 연속으로 이런 데미지를 받고나니 순간 뭐라 어떻게 할 수 없는 기분이 꿈틀거렸다. 어쩌면 분노였을 수도, 연민이였을 수도, 슬픔이였을 수도, 희망이였을 수도, 절망이였을 수도, 어쩌면 본질에 가까운 어떤 것 이였을지도 모른다.
울고 싶었다.
촬영을 마치고 나는 미소를 머금으며 두 사람에게 정중하게 깊이 인사를 하고 길을 돌아 왔다. 동생과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를 나눴다. 그게 난 좋았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전시 준비가 거의 다 끝났다.
몇 년의 시간을 들여 만든 작업이 마침내 전시가 결정된 몇달전 그날, 내 가슴속엔 이미 끝난 전시가 되었다. 오랫동안 만졌던 작업이였기 때문 이기도 했을테고 그 여파로 너무나 지쳐있었던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래 감흥을 느낄 여유가 없었던건지도 모른다.
전시 준비도 특별한 문제 없이 별 감흥 없이 차곡차곡 진행했었다. 갤러리 평면도와 수치를 바탕으로 3D로 레이아웃을 짜면서 천장의 높이 작품간의 너비와 배열등을 통해, 갤러리 까지 찾아온 관객이 어떤 느낌을 받을지에 대한 시뮬레이션까지 할 정도로 전시 계획을 짰다.
그리고 오늘 도쿄에 도착해서 내가 쓸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전시 계획 레이아웃에 맞춰 대여섯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여서 사진이 액자에 담기고, 벽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작품의 형태가 나타난 순간 말로 하기 힘든 기분을 느꼈다.
굳이 말로 투박하게 바꾸자면,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혹은 없었어야 할 것에서, 전조 없이. 가슴에서 살짝 소리 없이 울컥하는 느낌과 약간의 비릿한 감동적인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이 순간 혼돈스러웠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 같은 무척 짧고 그리고 긴 하루 였다.
시대는 언제나 변한다. 아니 언제나 변하기에 시대를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감지는 전쟁일 때도 있고 혹은 혁명이나 경제변화에 따른 일상의 형태가 달라지고 사람의 행동 양식의 변화로 느낄 때도 있다. 이런 거시적 시점 외에도 시대 변화를 감지하는 다양한 것들이 있을 텐데 그중 하나가 자신이 애용하는, 특정 목적을 위한 제품군의 성향, 또는 조금 넓게 보자면 오랫동안 개성이 유지된 특정 메이커의 제품 변화를 통해서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때론 좋은 시대가 되었다고, 혹은 한 시대가 끝나버렸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가 되어 씁쓸한 기분이 들게도 한다. 단지 좋다 나쁘다의 문제로 간단히 수렴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지난한 삶의 관성과 생각의 기준이 단단해진 사람에겐 대체로 좋은 감정일 확률은 낮은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자면 내연기관의 발명으로 인류의 삶이 송두리째 바꿔버린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는 당연하게도 이러한 발전 속에서 기존의 건전하다고 여겨왔던 가치가 흔들리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공장 자동화에 들어가는 로봇, 컴퓨터 그리고 최근엔 인공지능까지.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앞서 이야기한 내연기관, 정밀 로봇, 컴퓨터 그리고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딥 러닝을 통한 인공지능 그리고 그와 연관된 서브 도메인에 관한 자료를 순수한 호기심으로 찾아서 볼 만큼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과 발명 속에 인류는 조금씩이나마 너 나은 방향으로 전진한다고 믿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은 로맨틱함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덧 40대가 되어가면서 어쩌면 나 또한 명백한 기성세대가 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신에게 하는 때가 있다.
나의 경우는 아무래도 카메라에서 그런 것을 쉽게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특정 메이커 혹은 특정 제품군의 마켓에서 다양한 회사가 경합을 벌이는 것들. 거기엔 그 시대가 향하고자 하는 혹은 충족시키고자 하는, 반대로 말하자면 결핍되어 있거나 어쩌면 예전엔 중요한 가치였지만 지금은 그것이 의미가 없는 가치로 변해버린 것들이 제품에 나타나고 그것을 느끼게 된다.
단순히 필름의 판형이라던가 혹은 조금 크게 봐서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정도의 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사람마다 기본적인 기분이 있듯 카메라에도 기분이라는게 있는데, 아니.. 그것보다는 성격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성격은 메이커마다 당연히 다르고 그렇기에 해당 메이커는 독자적인 팬이 생기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시대를 관통하는 큰 흐름 혹은 줄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본질에서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변해버렸다는 것을 감지해버리는 것이다.
감지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나의 경우 대표적으로 딱 한 가지만 말해야 한다면, 셔터 릴리즈 버튼을 누를 때 이다. 셔터 릴리즈 버튼이라는 것은 실로 섬세한 것이라 단순히 누르는 버튼이 아닌 그 한 동작을 통해 세밀하고 섬세하며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 전체가 움직이는, 시작과 끝이 동시에 존재하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시세계에서의 것들 속에서 때론 절절하게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절감할 때가 있다.
카메라가 움직이는 동작 혹은 방식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인간의 사고 동작과 질감 면에서 유사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같은 플래그쉽 계열이라 하더라도 시대에 따른 변화는 있어왔지만 그럼에도 전체를 관통하는 사고방식이 표현되어져버리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변한다는 것은 사고방식의 혹은 세상을 재단하는 울림과 리듬감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여러분이 많이 구입 해주신 덕분에 5년 만에 개발비를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시절 좋은 때와 달리 점점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시대가 되어 버렸거나, 혹은 사람들이 더 이상 기존에 존재하던 관통하는 가치에 대하여 의미 부여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일 때도 있다. 혹은 제조사가 단순하게 실수를 했거나.
한참 이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약간 다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거의 한계까지 아슬아슬하게 원가 절감 노력을 하여 상당히 괜찮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때론 순수하게 경외감마저 들 때가 있다. 그야말로 프로의 설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본다면 최근에 나온 최신형 카메라들의 물리적, 동작적 질감은 외려 과거보다 더 퇴행했다고 느낀다. 어떤 종류의 강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내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여유가 없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큰 맥락으로 두고 봤을 때, 아마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레인저 파인더가 세상에 전부였을 시절에 나왔던 SLR카메라에게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고,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갈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존의 가치가 낮아지거나 심지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적어도 특정 클래스에 있는 혹은 특정 목적성을 가진 카메라의 시대를 관통하는 것들이 변해버렸다는 것을 느꼈을 때 드는 쓸쓸함과 적적함을 두고 보수적이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은 아니리라 믿고 있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나의 20년 작업 인생 동안 N모사의 카메라와 언제나 항상 함께 살아왔던 나에게 있어서 최근 N모사의 모 카메라를 사용하고 나서 드는 생각을 두서없이 써내려가고 싶었다.
어떤 의미에선 지금껏 살아오며 어떤 큰 족적을 만들어내지 못한, 그리고 꼰대라고 불려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시기의 나에게 있어서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으며 툴툴거리는 어린아이 투정과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바라고 있으며 믿고 있는 것은, 적어도 핸드폰 카메라가 아닌, 카메라라고 불리는 독립된 물건을 각자의 이유 혹은 감정으로 손에 쥔 사람의 각자 마음일 것이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작업의 맥락 속에서, 단 한가지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을 계속 촬영 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간 이런 시간이 올거라 생각 했던 때가 예상 보다도 빨리 왔다. 이전에 몇 번 촬영할 수 있는 때가 몇 번 있었지만 아버지를 촬영 하는 것을 나는 구태여 뒤로 물려두고 있었다.
덩어리진 무색무취의 연기를 스윽 하고 빨아당기는 감각이 올때까지 마치 아무런 일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때, 나는 촬영을 했다. 촬영 하는 동안 나의 뇌속에는 수십개의 생각들이 얽히고 얽혔지만 그와 동시에 촬영하는 나는, 명확하게 분리 되어 있었다. 보통은 자각 할틈도 없는 것이 보통이지만, 간혹 나의 뇌와 촬영하는 내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감각을 자각할때가 있는데 때론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해지거나 어떨땐 스스로에게 어떻게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을 만큼 소름이 돋기도 한다. 이런 감각은 나에겐 불쾌하게 느껴진다.
2주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아버지와 오늘 봤던 아버지는 그 짧은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언뜻 연한 자락 같은 죽음의 냄새가 명확하게 인지 된다. 세포의 텔로미어가 거의 소모되어 개체로서 남은 수명을 수치로 환산 할 수 있을 정도의 엷은 죽음에 이미 먹혀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노출을 맞추고,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고 촬영을 한다.
이 작업이 도대체 몇년 안에 끝날 수 있을지 난 감이 오지 않는다. 아니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도 감이 오지 않는다. 설령 어떻게 크기를 조정해서 만들었다고 한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도대체 어느 곳에 어떤 식으로 어떻게 전시 될 수 있을지 아니 그 이전에 누가 이 작업을 받아 줄지 조차 나에겐 감이 오지 않는다.
계속 만들어 가는 것 외엔 달리 내가 할 수 있는건 없다.
만약, 내가 200자 원고지 50~70매 정도의 아주 짧은 단편 글을 쓴다면 마지막 문장을
\”여름을 좋아합니다.\”
라고 쓰기 위해서 일 정도로,
여름을 좋아한다.
얼마전에 어떤이가 제법 고가의 대형 매트 커터의 직각을 맞추는 앵글 룰러를 실수로 치고 지나갔다. 애초 나 외에 사람이 거의 올 일이 없는 자리로 안전하게 세팅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 생각이지 사람 움직이는 것을 완벽히 예상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발생했을시 심각한 문제 (끔찍 할 정도로 귀찮은 일이 생기는)가 발생 할 수 있는 확률이 있는 자리에 설치한 나의 실수 또한 크다.
그럼에도 그 순간 너무 멍해져선 깊은 짜증이 용암처럼 분출 하려는 것을 어떻게 겨우 겨우 넘기고, 어쩌겠냐 다시 맞추면 되지. 라고 넘기고 얼마간 방치했다. 이걸 다시 맞추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90도 직각에서 오차 범위는 0.1도 보다 작아야 한다. 작은 사이즈는 표시가 그리 나지 않으나 매트 사이즈가 커지면 완성된 매트의 크기 오차는 3~4mm 정도로 이 정도면 눈대중으로 봐도 표시가 날 정도의 상당히 큰 오차가 발생한다. 90도로 자르면 당연히 90도로 잘려야 한다. 그래야 사각형이 미묘한 마름모꼴의 사각형이 아닌 정확한 사각형이 되고 눈으로 봤을때의 느껴지는 기분 또한 정갈해 보인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잘 속고 쉽게 피로해지며 쉽게 착각하는 것이 눈이고 광학적으로 작동은 하지만 뇌가 인지 하지 못하므로 감각 기관으로선 참 부정확한게 눈 이기도 하지만, 반면 눈 만큼 민감한 것도 드물다. 미묘한 마름모꼴의 사각형은 정갈한 느낌, 완결된 느낌이 들지 않고 어딘가 미묘한 냄새의 흔적 처럼 인지의 영역을 살짝 벗어난 것 처럼 심리적 감각으로 느끼는 불안함이 있다.
직각으로 잘라야 하는 것은 당연히 직각으로 잘려야 한다. 직각으로 잘려야 하는 것은 당연히 직각으로 잘라야 한다. 목적과 결과, 결과와 목적, 어느 쪽을 앞에 두더라도 상관 없는 지극히 심플하고 당연함에 대한 것.
하지만 0.1도의 차이로 뮤지엄 매트가 쓰레기통에 꾸역꾸역 들어가고 몇 시간 동안 끙끙거리면서 맞추면서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고, 계속 하다 보니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싶은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작은 사이즈에선 오차 범위가 작은데.. 라던가, 큰사이즈 일때 발생하는 2~3mm 정도 차이를 사람들이 알까? 아니 그 이전에 설령 안다고 한들 그냥 ‘당연한’ 오차 범위라고 생각하는건 아닐까? 그냥 쓸때 없이 나 혼자서 이러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하면 약간 이런 풍으로 바뀐다.
그래서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 이기도 하지만..
담배를 좀 피우고, 커피를 좀 마시고, 음악을 좀 듣고, 빈둥거리면서 좀 쉬었다가 테스트로 만들어 놓은 매트를 다시 손에 쥐고 보고 있다 보니.. 개뿔이 남이 알던 모르던 내가 보면 바로 표시나고 보기 상그럽고 짜증나는데 남이 그렇던 말던 알게 뭐람? 이유고 남이고 지랄이고 필요 없고 일단 나의 이 불쾌함을 지우는 것으로 목적이 변질 되었다.
0.1도
뮤지엄 매트 보드는 계속 썰려나가고 심지어 윈도우 매트 의뢰 수량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무슨 삽질이람? 싶다가도 묵언으로 끈기 있기 계속 좁혀가던 중에 드디어 직각이 만들어졌다. 몇번이고 검증하고 만들어봤지만 당연한 90도 직각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희열감이 있었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면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되었을 뿐이다. 희열 같은게 있을리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마음의 평화는 찾아왔다. 단순한 손동작으로 칼날이 쏙 하고 들어와선 두터운 종이를 쓸고 나가는 단순한 동작의 반복으로 당연한 직각의 사각형이 만들어진다. 단순하고 우아하다. 쉽사리 눈에 띄이지 않는 우아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 애초 이런거에 우아함을 느낀다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연한게 당연하게 된다는 것은 간혹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신뢰 할 수 있는게 존재 한다는 것. 내가 들인 시간과 정성 만큼 정직하게 보답하는. 그 신뢰가 온전한 결과로서 나오는 것들은 삶속에서 접하기 너무나 드물기에, 0.1도의 차이를 넘어 당연한 직각이 만들어지는 매트 커터 따위에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서글픈 상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되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기에 어떠한 감흥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이 좋다. 삶이라는게 보통은 너무나 지난하고 복잡하며 단순하고 구질구질하며 믿기 어렵기에.
그나저나, 그렇게 당연한 매트 커터를 나는 여전히 사고가 발생한 그 자리 그대로 두고 사용하고 있다.
수리 다녀오고 나서 상태가 더욱 나빠진 스페인 출신의 에스프레소 머신. 이 간단한 기계를 수리센터에선 제대로 얼라이먼트도 맞추지 못한 녀석을 보다 보다 짜증난 김에 뜯어서 직접 손을 봤는데 잘 안되었다.
덕분에 한동안 폼 잡으면서 드립을 내리는 기간이 쭈욱 이어졌는데, 세삼스럽지만 에스프레소와 드립의 맛은 같은 원두라도 너무나 달라서 내심 즐겁기도 했었다. 하지만 계속 이러다 보니 반대로 에스프레소가 너무 마시고 싶어져서 오늘 하루 업무 다 마치고 각 잡고 싹 분해해서 다시 조립하였더니 잘 돌아간다.
문제는 이렇게 고치고 나서 한잔 내려 마셔보니, 기계 조성과 습관이 바뀌었는가 맛있게 먹던 그 맛이 안난다. 다시 데이터 잡으려니 한숨..
뭐, 살아간다는게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다가 문득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전방위적 포근함을 아무런 사심 없이 활짝, 깊게 가슴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선풍기의 부드러운 바람이 나의 머리카락과 옷을 스치고 창가에 가까운 쪽은 햇볕으로 가득차오르며, 깊은 곳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무조건적인 사랑과 닮아있어서 그것이 가슴이 아플 정도로, 서글플 정도로 감동적이어서. 예고도 없이 눈가에 물이 맺혔다. 분명한 것은 제법 몇십분 전 부터 그랬었을터였다. 문득 내가 이러한 햇볕이 작업실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 음악이 귀에 들렸을때였다. 최대 파워 소비량이 1500VA 앰프의 볼륨을 절반 보다 조금 더 크게 해놓고 음악을 셔플도 듣다가 이 곡이 나온 것은 그야 말로 우연이었을 터이다.
조금씩 조금씩. 끈기있게. 여름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