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던 길에…

훈련받고 돌아오는 길에 상당한 빗방울이 군복을 사정없이 적셔버렸다. 버스에서 내려 급하게 지하상가로 내려가서 무감히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남포동에서 중앙동사이를 이어주는 어딘가 퇴색한듯한 누런 느낌의 지하상가.

아무런 생각없이 가계를 지나치며 옷이며 장난감이며 싸구려 신발, 실생활엔 그다지 도움되지 못할법한 여러가지 물건들을 파는 가계들을 지났다. 눅눅하게 젖은 공기사이로 손님 하나 없는 가계들 속에서 무료한 표정들의 가계주인들. 어쩐지 거기 있는 물건들도 주인들의 표정과 닮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마 내가 여기서 물건을 살 일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지하상가.

그렇게 젖은 군복을 입은체 걸어가다가 어느 조그만 옷가계를 지나쳤다. 나이는 20대 중반 조금 넘어보이는 여자 한명이 어떤 옷을 하나 들고 라이터에 불을 당겼다. 옷을 태울껀가?! 라는 생각이 번뜩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옷에 삐져나와있는 실들을 태우는 것이다. 아마 내가 너무 멍하게 지나가서 미쳐 그런 생각을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또 하나 생각이 드는건, 보통의 가계에선 주인이든 점원이든 그렇게 손님들이 지나가는 곳에서 당당히 옷에 라이터질 같은건 하지 않는 법이다. 가계의 이미지라는 측면에서도 그다지 좋치 않고 오히려 손님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작업을 한다 하더라도 보통 가계 열기 전, 닫은 후에 보통 하기 마련인데, 너무나도 당당히 하고 있는것이다. 그것도 무료함속에 뭍어나는, 사못 진지한 모습이다.

뭐랄까… 왠지 은근한 미소랄까 웃음이랄까, 나도 모르게 입바깥으로 그런 소리가 나와버렸다. 분명 기분 좋은 미소 혹은 웃음이다.

그곳에서 파는 옷들이 어떤종류인지까진 자세히 눈여겨보진 못했지만, 다음에 가계 구경이라고 해보고 싶어졌다. 혹 맘에 드는 물건이 있다면 하나 구입해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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