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현상이 떡이 되었다.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몇년 동안 해왔던.
시커멓게 올라와버린 필름.
어째서?
현상기에 있는 워터재킷의 온도를 재어봤다.
32도.
아아.. 그래. 당연하군. 당연히 시커멓게 될 수 밖에.
그리 대단찮은 사진은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선 대단히 중요한 사진이다.
너무나도 강렬한 분노때문에 필름 현상기를 때려부술뻔 했다.
만약 옆에 망치라도 있었으면 철저하게 부셔지진 않았을까 싶었다.
6년 넘게 계속 달달달 하고 돌렸던 현상기. 그래. 고장날 법도 하다 싶다. 순간 사진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 치우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담배를 한대 태웠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요즘 현상기 가격이 얼마정도 하는지를 찾아봤다. 내가 쓰고 있는 기종은 단종이 되었다. 내가 쓸만한 정도의 현상기 가격을 봤는데, 왠지 더 우울해졌다.
필름 상태를 보아하니, 파머스 감액력 따위로 구제 될 만한 선을 넘어섰다. 쓸수 없는 원고가 되어버렸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건지. 그래 인과응보 인지라 필시 내가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 보다도 머리속을 아주 아득한 느낌으로 어쩔줄 몰라 하고 있는 자신이 보인다.
그래 평소처럼 워터재킷의 온도도 분명히 확인했다. 현상액의 온도는 말할것도 없다. 아주 정확하게 세심한 신경을 썼다.
아마도 내가 온도를 쟀던 그 시기에 마침 워터 재킷의 온도가 맞아떨어졌던가 보다.
도대체 이 강렬하고도 토해낼곳도 없는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내가 좀 나쁜놈이기도 하고, 성질머리도 더럽고, 남에게 아픈일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식으로 댓가를 치른다른건 너무나도 고약한 일이다.
앞으로 현상해야 할 필름이 52롤.
손으로 현상해서는 안되는 필름들이 대부분이다.
입자가 곱게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중고 현상기 가격을 알아봤지만, 그래도 대강 100만원 정도는 지불해야 될성 싶다.
어쨌던, 지금 있는 현상기를 (A/S 같은건 애당초 무리다) 버리는 셈 치고 뜯어서 고쳐봐야 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너무나도 탈진이 되어버려, 그냥 왠지 손을 놓아버리고 싶다.
아아… 정신차리고 힘을 내야지.
언제까지고 이럴순 없잖아?
하지만… 아무래도 이 충격이 몇일은 가지 않을까 싶다.
아아.. 날씨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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