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가 피었다.

전 수업이 일찍 마치는 덕에 다음 수업까지 한시간 정도의 시간이 생겼다.
정보관에 있는 자판기에서 백원짜리 하나와 십원짜리 다섯개를 넣고
커피를 뽑았다. 조금씩 홀짝 거리며 학과 건물로 갔다.

학과사무실에 이유없이 놀러가선 뜬금없이 오르골을 구경했다.
살랑 나와서 학교 암실 공사되는것과 드라이마운트 프레스의 전기연결이
되었는지를 살펴봤다. – 전에 이게 작동하지 않아서 낭패본적이 있다. 그것도 몇일 전에. 그러고 보니 동아리 전시때 나머지 프린트가 사라졌다.
아는 지인에게 선물하기 위한 중요한 프린트인데, 혹시나 누군가 본적이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  과 건물을 나서서 법정대 옆에 있는 야외휴게실에 앉았다. 담배를 한모금 빨면서 짐노페디를 들었다.

햇볕이라는건 느껴지는데 아직까진 햇살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추워서 강의실에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여자 네다섯인가 그릇이 깨질것 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다. 묵묵히 걸어서 창가쪽 책상에 자리를 잡고
햇볕이 들어오는 것을 애써 느끼면서 책을 읽었다.

한참 책을 읽다 문득 정신 차려보니 사람들이 제법 많이 들어와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직까진 괜찮다. 또 짐노페디가 들린다. 읽던 책을 잠시 덮어두고 2층 강의실의 창밖을 보았다. 무엇인가 사람들이 바쁜듯, 무료한듯, 대학생 특유의 무료감이 느껴진다. 차 몇댄가 줄지어 누워있고 그 뒤로 시멘트로 만들어진 녹색의 농구 코트가 있다. 공 따라서 우르르 우르르 몰려다니는 그런 전형적인 게임 내용.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 듣다가 책 읽다가 수업 듣다가 책 읽다가 (이상하게도 중요한 내용은 빠지지 않고 잘 듣는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복하다가, 아무생각 없이 창밖을 보았다. 30분 전과 아주 비슷한 풍경이 계속 보인다. 앗차, 중요한 내용을 놓쳐버렸다.

카메라 생각이 났다. 찍고 싶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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