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로 돌아오자 여사무원이 스웨터에 묻은 고양이털을 떨어내주었다.
“고양이랑 놀다 왔거든”
이라고 나는 넌지시 변명을 하였다.
“겨드랑이가 풀어졌어요.”
“알고 있어. 작년부터 그 모양이야. 현금 운송차를 습격하다가 백미러에 걸렸거든.”
“벗어요”
라고 그녀는 싱겁다는 듯 말했다.
내가 스웨터를 벗자, 그녀는 의자에 긴 다리를 옆으로 꼬고 앉아, 검정 실로 겨드랑이를 깁기 시작했다.
그녀가 스웨터를 깁는 도안 나는 책상으로 돌아가, 오후분의 연필을 깎고 재차 일에 착수하였다. 누가
뭐래든 나는 일에 관한 한 불평의 여지가 없는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만큼의
일을 빈틈없이, 그것도 가능한 한 양심적으로 하는 것이 내 방식이었다. 아우슈비츠에 근무했다면
틀림없이 보물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게 맞는 장소가 점점 시대에
뒤떨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구태여 아우슈비츠나 2인승 뇌격기로 거슬러
올라갈 것까지도 없다. 이미 아무도 미니 스커트 따위는 입지 않고, 진&딘을 듣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집게 달린 거들을 입은 여자를 본 것이 언제였더라?
시계가 세 시를 가리키자, 여사무원은 평소처럼 뜨거운 녹차와 쿠키 세 개를 가지고 책상으로 다가왔다.
스웨터도 감쪽같이 기워져 있었다.
“저, 잠깐 의논할 게 있는데, 괜찮아요?”
“주저 말고”
라고 말하고 나는 쿠키를 먹었다.
“11월에 떠날 여행 말인데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홋카이도로 가면 어떻겠어요?”
11월에 우리들은 연례적으로 사원 여행을 떠난다.
“나쁠 거야 없지”
라고 나는 말했다.
“그러면 정할게요. 곰 안 나와요?”
“글쎄 어떨까?”
라고 나는 말했다.
“그때는 이미 겨울잠에 들어가 있을 거야.”
그녀는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그렇고 저녁 식사 같이 안 할래요? 이 근처에 맛있는 새우 요리집이 있거든요.”
“기꺼이”
라고 나는 말했다.
레스토랑은 사무실에서 택시로 한 5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 한가운데 있었고, 우리가
자리에 앉자 검은 제목을 입은 웨이터가 야자 섬유로 짠 카펫 위를 소리도 없이 걸어와,
수영장의 비트 판만큼이나 큰 메뉴를 두 장 놓고 갔다. 요리를 시키기 전에 맥주를 두 병 주문하였다.
“이집 새우는 아주아주 맛있어요. 산 채로 삶거든요.”
“음.”
나는 맥주를 마시며 낮은 소리로 응수하였다.
그녀는 잠시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목에 건 별 모양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식사를 하기 전에 하는 편이 좋을거야”
라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는 말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하였다. 늘 그렇다.
그녀는 살며시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 4분의 1센티미터 정도짜리 미소는 제자리로 돌아
가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입가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실내는 텅 비어 있어, 새우가
수염을 파들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다.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어요?”
그녀가 물었다.
“글쎄, 어떨까? 일에 관해서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 하지만 불만은 없어.”
“나도 불만은 없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월급도 만족스럽고, 두 분은 친철하고, 휴가도 어김없이 챙길 수 있고.”
나는 잠자코 있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렇지만 난 아직 스무 살이에요”
라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런 식으로 끝나고 싶지가 않아요.”
테이블 위에 요리가 차려지는 동안, 우리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너는 아직 젊어”
라고 나는 말했다.
“앞으로 연애도 할 것이고, 결혼도 하고. 인생이란 점점 변하는 거야.”
“변하는 건 하나도 없어요.”
그녀는 나이프와 포크로 새우 껍질을 노련하게 벗기며 띠엄띠엄 말했다.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걸요. 쓰잘 데 없이 바퀴벌레약이나 끼워맞추고, 스웨터나 깁고, 평생 그러다가 끝날 거에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몇살이나 나이가 든 기분이었다.
“넌 귀엽고 매력적이고, 다리고 길고 머리도 좋아. 새우 껍질도 그렇게 멋지게 벗기고 말이야. 틀림없이 모든 게 잘될 거야.”
그녀는 아무 대꾸도 없이 새우를 계속 먹었다. 나도 새우를 먹었다. 새우를 먹으며 저수지
바닥으로 가라앉은 배전반을 생각하였다.
“선생님은 스무 살 시절에 뭘 했나요?”
“여자애한테 미쳐 있었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헤어졌어.”
“행복했어요?”
“멀리서 보기에는”
이라고 나는 새우를 삼키며 말했다.
“대부분 아름답게 보이지.”
우리가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실내는 조금씩 손님들로 붐비기 시작하여, 포크와 나이프와
의자 부딪치는 소리가 무성해졌다. 나는 커피를, 그녀는 커피와 레몬 스프레를 주문하였다.
“지금은 어때요? 애인은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한참 생각한 후 쌍둥이를 제외하기로 하였다.
“아니”
라고 나는 말했다.
“외롭지 않아요?”
“익숙해졌어. 훈련으로.”
“어떤 훈련?”
나는 담배에 불을 붙여, 그녀의 머리에서 50센티미터쯤 위로 연기를 뿜었다.
“나는 좀 특별한 별자리에 태어났어. 즉 말이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어왔지.
그런데 말이야, 무언가를 손에 넣을 때 마다, 다른 무언가를 짓밟아왔던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조금은.”
“아무도 안 믿지만 이건 정말이야. 3년 전쯤에 그렇다는 걸 꺠달았지.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어.
더이상 아무것도 갖고 싶어하지 않겠다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평생을 그런 식으로 살아갈 작정이에요?”
“아마도. 다른 누구한테도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구두 상자 안에서 살면 되겠군요.”
멋진 의견이었다.
우리는 역까지 걸었다. 스웨터 덕분에 밤은 포근했다.
“좋아요, 어떻게든 견뎌보죠.”
“별 도움이 안 됐겠지만.”
“애기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풀렸어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같은 플렛폼에서 반대 방향 전철을 탔다.
“정말 안 외로워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그렇게 물었다. 내가 그럴싸한 대답을 찾는 동안 전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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