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한체, 아침을 지새우고 정오가 되어 바깥을 나섰다.
이런 눅진눅진한 기분을 햇볕으로 말리고 싶었다. 아니, 말라버린 몸을 조금은 촉촉하게 만들고 싶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수염도 깎지 않은체 카메라에 필름 한롤을 새로 채워 주워섬기곤 작업실 계단을 내려오자, 가장 먼저 만난건 강한 햇살이었다. 눈이 쓰리고 아픈 햇빛이다.
작업실 앞 수퍼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는 입에 베어 물었다. 딱히 기분 전환이 되진 않는다. 탈래 탈래 걸으며 풍경들을 사람들을 거리를 자동차를 하늘을 바닥을 의자를 마네킨을 보았다.
갑자기 너무나도 서러워 내 마음을 대피할 곳을 찾아갔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근처의 가계에서 마네킨을 찍었다. 햇살은 매우 거칠어서 콘트라스트가 너무 강했지만, 우습게도 기묘한 음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열 몇컷을 그렇게 찍고 돌아가는 길에 닫혀있던 문이 살포시 열려있어서, 살짝 열기띤 얼굴을 하고 들어갔지만, 주인장은 열심히 콩을 볶아내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안될까요. 라고 물어봤지만, 그 양반. 언제나 그랬듯 대답은 확고하다.
마음이 조금 상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내 기분의 신상을 일일히 열거하면서 앉아있고 싶은 기분도 \’전혀\’ 들지 않는다. 돌아가는 길에 수족관 물품 취급점에 들려서 아로아나를 잠시 묵도하러 갈까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정신적인 체력이 너무나도 바닥이다. 그런 정신 상태에서 아로아나를 보고 있다보면, 불현듯 갑작스럽고 조용한 충동이 생길까 하는 마음이 들어, 결국 가던 발걸음을 돌렸다.
더 프린트에 들려 조용히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간간한 이야기를 하고 책을 읽고 담배를 5개비 태웠다. 돌아오는 길에 부산 근대 역사관에 들려서 10분만에 싹 훑어보곤(그냥 천천히 걸었다는 기분이었다) 내려와 하늘을 보니, 거칠었던 광선은 조금 누그러 들고, 눈에 보이는 사물들의 톤들도 다소 부드러워 보인다. 하지만 무엇인가 생기가 빠져나간듯한 강렬한 박탈감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니,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흰색이었다. 그런 평범하고도 당연한 사실이 불현듯 나에겐 서럽게 느껴졌다.
작업실에 도착하니 3시가 조금 넘었다. 엇저녁 부터 새벽 1시 35분이 된 지금 이 시간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기껏 해봐야 커피를 마실 수 있는게 전부다. 뭔가 음식이 위장에 들어가면 다 뒤집어 질것 같은 기분이다.
난 왜, 여러가지 것들. 그리고 그 중에서 몇몇 중.요.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까지 포기하면서, 이렇게 살고 있는가.
평범하고 당연한 하늘과 구름을 고개 들어 봤을때의 서러움이, 마침 카메라의 필름이 한컷도 없었음에 찍을 수 없었던, 오늘 하루를 감사해야 할 것이다.
오늘 나의 하루를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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