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친구의 도움으로 작업실의 배치를 바꿨다.
쉽게 버릴 수 있던 것들, 쉽게 버릴 수 없었던 것들, 한편으론 버릴 수 없었던 것들을 모두 버렸다. 벽에 붙어 있던 내 사진들을 대부분을 떼어내고 아주 몇장만 남겼다.

예전에 의자로 쓰였던 큰 스피커 – 예전엔 주로 그곳에 여잘 앉히곤 했다. 베이스의 울림이 확실한 음악을 일부러 소리를 크게 해서 틀곤 했는데, 그럴때 변화되어지는 표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척 관찰하곤 했었다 – 는 언제부터인가 이것저것 쌓이기 시작하더니 잡다한게 쌓이기 시작했었다. 그 위에 있는 물건들 역시 버리고 정리하여 다른곳에 넣어두고, 스피커는 내 키보다 더 높은 곳에 앉아 있게 되었고, 그 자리엔 에이리언에 나오는 페이스 허거와 확대기용 타이머 박스가 올려지게 되었다.

입구쪽에서 들어오는 부분에 정신없던 전선들 신호선들은 뒤쪽으로 보이지 않게 고무 커버를 씌웠다. 그 많고 정신 없는 케이블을 정리 한다는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일이다. 점잖게 인정하고 커버를 씌움으로써 해결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훨씬 정리되어 보인다.

커피메이커는 고장나버렸고, 우퍼 스피커와 전자밥솥이 자기 자리를 찾았다. 예전에 마셨던 맛좋았던 술이 담겼던 빈 병도 모조리 버렸다. 사실 그런거 가지고 있는다고 해도 술이 다시 생긴다던가 하진 않는다. 먼지만 쌓이고 보기 흉할 뿐이다. 그럼에도 지금껏 그렇게 놔두고 있었던건 단순한 귀찮음 일거라고 생각한다. 정말인진 모르겠지만.

몇일 후,
몇가지 모자라고 부족한게 있어서, 국제시장엘 나갔다. 소음방지용 쿠션 스티커와 4구 콘센트와 30와트 젖빛 백열전구와 110볼트 암, 수 소켓과 전선 2미터, 콜크 보드 두장을 사서 돌아왔다. 돈이 조금 더 있었으면 콜크 보드를 한장 더 사고 싶었다. 커피 메이커를 사려 했지만 생각보다 비쌌다. 대신 천오백원짜리 플라스틱 드립퍼를 샀다. 실은 사기로 된것을 사고 싶었지만 역시나 그따위 것들은 가격이 비싸다. . 돌아와서 파티션에 남아있던 사진들을 때어내고 그 자리에 콜크 보드를 붙였다. 훨씬 깔끔해보인다. 아트핀 따위로 사진을 붙이기에 좋을 것이다.

고치긴 몇달 전에 고쳤지만 테스트만 해보고 다신 전구를 넣지 않을것이라 생각했던 스텐드에도 전구를 끼워주었다. 스위치를 넣지도 않았는데 불이 들어왔다. 순간 목이 메이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위치를 넣지 않았는데 불이 들어올리 없다. 단지 전구를 넣기 전에 스위치기 미리 접속되어있던 것일 뿐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들때가 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가만히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어떤 때가 되면 급작스럽지만, 침착하게 숨통을 조여가는 일흔살의 남자처럼.

아직 밖의 불빛이 있었다. 확실히 가을인 가을인것이 여름에 비하면 어두웠지만 땅거미가 지기 바로 직전의 붉고 푸른 빛의 냄새가 나는 시간이었다. 작업실의 불을 다 끄고 스텐드로 보여지는 불빛을 봤다. 참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이지만 어딘지 서글프게 느껴진다. 예전에 이 불빛 하나만으로 좋은 사진을 찍었다. 지금 봐도 좋은 사진들 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사진들 인 것이다.

4×5 오메가 D5 확대기의 헤드가 고장났었다. 기타 접속구와 다이크로익 필터의 콘솔부, 램프의 접속구, 메인파워와 타이머의 연결등이 문제가 있었다. 싸그리 다 고쳐버렸다. 전선의 피복을 벗겨내고 암수 콘센트를 달아주고 메인파워와 타이머를 연결해주었다. 확대기는 다시 살아났고 잘 움직여주었다. 아직 다이크로익 필터쪽의 콘솔부와 연결되는 기어쪽은 아직 손을 다 보진 못했지만 흑백 프린트 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필름 케리어에 4×5 필름을 넣고 밑에 깔려있던 20×24 이젤에 상을 투영해봤다. 날카롭고 부드러운 상이 보인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확대기 렌즈가 80미리 밖에 없어서 크기 조절이 자유롭지 못하고 주변부에 심각한 비네팅이 생기기도 한다. 120미리 확대기 렌즈는 비교적 저가의 것이라고 해도 나에겐 여전히 비싼 가격이다.

패드의 Digital Pad 부분의 입력이 똑바로 되지 않아서 평소에 짜증이 많이 났었다. 마음먹은데로 콘트롤이 되지 않으면 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패드를 모조리 분해하여 문제점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애초에 설계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 아마도 타사의 라이센스를 회피하기 위한 설계로 보였다. 설계 개념 자체는 훌륭했지만 입력시의 감촉이 좋도록 만들기 위한 개념은 없어 보였다. D-Pad를 지탱하는 내부 원형판을 잘라내어 십자로 만들고 그에 따라 키 자체의 압력이 흐물해지면서 덜꺽 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사이에 완충제를 붙였다. 너뎃번의 튜닝 끝에 제법 만족스러운 감각을 만들 수 있었다.

요즘 들어 컴퓨터가 자주 다운이 되었다.
램 뱅크쪽의 접촉 불안이 원인이라고 생각했었다. 청소를 하고 다시 시도해봤지만 여전히 문제였다. 한창을 붙들고 있다가 겨우 원인을 알게 되었다. 하드 디스크 접속부의 불안이 문제였다. 게다가 그 채널에 물려있던 하드 디스크는 사진이 담겨있던 것이였다. 지금까지 하드가 망가지지 않고 잘 버텨준것을 정말이지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했다.

최근 기상 온도가 떨어진것을 생각하고 CPU기본 전압에서 오버클럭킹을 했다. 당연히 아무런 이상이 없이 잘 돌아간다. 하지만  보험 삼아 0.05볼트만 올리고 설정을 마무리 했다.

예전에 찍었던 4×5필름 10장을 현상했다. 한번에 이렇게 현상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쉬트 필름을 고정 시킬 클립이 문제였다. 35미리용 필름 클립은 4×5용으로 쓰기엔 문제가 많다. JOBO에서 나온 필름 클립은 여러가지 의미로 이상적인 클립이지만 따로 구입하려면 가격이 녹록하지 못하다. 일단 기존의 클립을 롱로즈 플라이어로 날이 선 부분을 휘게 만들고 양면의 접촉 부분이 평편하게 닫도록 조정해주었다. 일단 아쉬운데로 쓸만은 하지만 장기적으로 쓰기엔 문제가 있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제법 지친상태에서 주전자를 붙잡고 드립을 할 만큼의 기분 따위 전혀 나지 않는다.

현상해야 할 필름은 46롤이 남아있다.
밀린 공과금도 내야 하고 또 얼마후에 집세도 내야 한다.

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Prev .
Next 공포

Comments are closed.

© Wonzu Au / No use without prior permission other than non-commercial use. / 비상업적 용도 이외의 사전 허가없이 사용을 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