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몰아닥치다 마는둥 날씨가 부산하다.
이쯤 되면 태풍이 언제쯤 오는가 생각하고 예전 생각이 나고 때론 앞으로의 생각을 하게 된다. 제법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의 얼굴과 눈도 그렇지만 세상의 흐름도 그렇다.
하늘은 아직까진 파랗고 태양을 정면으로 보려하면 실명할것 같은 따가움은 여전한데 마음은 주석을 녹여 만든것만 같다. 스무살이 되려하던때, 뭔가에 등 떠밀려 나온 천둥벌거숭이 같았던 때는 얼마전이였다.
서른살이 되던때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난 몇권인가 책을 읽고 몇가지 음악을 듣고 몇가지의 연애질을 하고 몇가지의 괴로움과 사소한 깨달음(그게 정말인진 모르겠지만)을 얻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느꼈던 한가지는,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태어나 내 이름 석자를 한글로 쓰지 못했던게 일곱살 까지였다. 기억 이라는것이 으레 그런거지만 그때 즈음이 정신적으론 가장 풍만했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똑똑히 기억 나는것은 봄햇살의 따가움과 훈풍을 있는 그대로 느꼈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때 마다, 지금의 나에게 죄를 짓고 있는듯한 자책감이 들때. 가슴이 1mm 정도 움찔거리는 것을 멀건 숨소리로 날려 보낼때 나의 무엇이 먼지 만큼 소모되는 느낌이 든다.
먼지를 마시며 살아가니 그 만큼 날려 보내야 하는 것이 이치고 그것을 하지 않으면 점토 만큼이나 두꺼워지는 것이 먼지 일테니 이것 또한 살아있기 위한 소모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덟살이 되고 삐뚤삐뚤 써놓은 내 이름을 봤을때의 기분이라는 것은 \’뭔가 이것은 아닌데..\’ 라는 기분을 가져다 주었고 그것을 5분이고 10분이고 계속 보고 있자 그것은 내가 아니라는 어렴풋한 느낌을 받았을때 봄 햇살의 따가움과 훈풍은 사라진듯 했다. 주위에서 봤을땐 내색은 안하고 끈기있고 참을성 있게 지켜본 사람으로써는 내색 못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위에 언제나 볼 수 있었던 색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구슬로 숫자 셈하는 것을 배웠다. 붉은색 구슬과 하얀색 구슬이였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건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터 한글을 공부하지 않아도 글자를 쓰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붉은색과 흰색의 구슬을 보지 않아도 산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때 즈음 이였을 것이다.
마음에서 울렁거리던 소리와 감촉들이 사라지고 그곳엔 희고 빨간 구슬다발들과 내가 아닌 이름 석자가 들어왔다. 그때 부터 무엇인가가 명확해지기 시작하고 그렇게 구분 가능한 것들은 들어오고 구분이 되지 않는 것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색을 구별하는 느낌도 사라지기 시작했고 명확하게 부를 수 있는 색들만이 살아남았다.
제일 좋은 것은 음악이였다. 스스로 찾아서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은 국민학교 4학년 때 부터였다. 집에 레코드가 무척 많았기 때문에 질리지도 않고 계속 들었다. 말을 알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제일 좋았다.
그때 즈음 부터 컴퓨터를 하기 시작했고 프로그램을 짜기도 하고 컴퓨터를 좋아하는 형들이 두서 없이 모이곤 하던 장소에 주말마다 나가곤 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애매한게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그것을 구현하고 그리고 정확히 그렇게 움직여질때의 쾌감은 핏덩이던 나에겐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인연이 되어 아는 형과 같이 동호회를 만들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되고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진학과에 와있는 나를 발견했고, 언제 부터인가 봄을 증오하던 나를 자각 했을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느꼈을때.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을때 비로서 어렴풋이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골초가 되어버린 삼십대의 몸뚱이가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 어쩐지 요상스럽다. 내 마음이 주석같이 된 것은 담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요즘이다.
하늘은, 아직까진 파랗고 태양을 정면으로 보려하면 실명할것 같은 따가움은 여전하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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