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니까 바람.

미술관에 걸릴 사진을 셀렉트 하고 그 중에서 다시 추려내는 작업을 한다. 언제나 그렇듯 촬영 자체는 어렵지 않다. 셀렉트 할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나는 사진을 찍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젠 이런 이야기도 다소 식상한 느낌이 드는건 아닌지 싶은 정도의 당연한 것으로 나에겐 새겨져있다.

프린트는,
부정적 외압의 에너지를 주워섬겨 그것을 다시 순수한 에너지 덩어리로 나의 내부에서 바뀌어 그것을 동력원 삼아 확대기 앞에 섰다. 그렇게 되기 까지 2주간의 시간이 걸렸다. 상황의 답답함은 사실 나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허나 그런 상황속에서 언제나 나의 마음을 자꾸 건드리는 것은 답답함이 아닌 얽혀있는 실타래,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풀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댓가를 치루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나를 포함한 외계의 것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제법 긴 호흡을 가지고 암실에서 묵묵히 프린트를 끝냈다.
시간을 들여 수세를 하고 그 만큼의 숙성이 된 프린트를 다시 꺼내어 염원하는 마음으로 셀레늄에 담금질을 한다.

제법 나쁘지 않은 프린트가 되었다. 은근히 중성적인 느낌의 프린트는 참으로 오랜만이 아닌가.

오후의 바람이 참 좋았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잘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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