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인 저항선 맥락을 볼때,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직 남은것도 해야 할것도 너무나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하나씩 끝내가고 있다.
최근 잦은 두통이 나를 괴롭힌다.
하루는 왼쪽. 또 하루는 오른쪽 이렇게 좌, 우뇌를 번갈아가며 끈질기게 나를 괴롭힌다.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는 친우가 1년 전, 평소 두통이 심한 나를 생각하여 다량의 아세트아미노펜을 주었다. ER 서방정 처방이기 때문에 큰 부담도 없고 효과가 길다는게 위로가 된다. 한알로 효과가 없을땐 십수알까지 먹어도 몸에 부담되진 않으니 이것도 다행스럽다.
그렇게 약을 먹다보면 고통을 느끼는 말단세포 접점 사이에 약물이 끼어들어 통신을 못하게 하는 느낌 같은것이 어쩐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사실 아프지 않은게 아니라 아픈것을 느끼게 하는 신호의 말단 접점이 마비되는 것 뿐. 하지만 그것을 아프지 않다고 할순 없는 것이다.
작업실의 분위기가 사뭇 많이 달라졌다. 몇가지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있지만 현재 내가 가용 할 수 있는 자금 한계가 너무나 분명함에, 차후 여유가 생기는데로 마음먹은것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전시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의 사진전시를 위해서 몇년 동안 촬영하고 그것을 다시 고르고 자르고 섞고 배열하고 마음에 안들면 전부 엎어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운율을 다시 암실에서 구현해내고 전시장을 찾고 협의 하고 액자를 맞추고 포스트카드를 만들고 홍보를 하고 관장과 기싸움을 하고 사진을 운송하고 조심스레 수평을 맞추어 사진을 배열하고 조명을 체크하여 각도를 맞춘다. 그리고 결과로서 눈에 보여지는 것은 덩그러니 흰 벽에 있는 종이조각 뿐. 인것이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긴, 세상의 일이라는건 준비에 비해 보여지는 결과라는건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눈에 보여지지 않는 가치를 난 믿고 있고, 그것을 느끼고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있기에 이런 무모한 일을 저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좋은 분들이 나를 생각해주고 도와주고 도와주려 하고 있기에 극심한 외로움은 없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이 일도, 손에 잡히는 것은 종이지만 그 위에 뿌려진 부단한 노력의 가치를. 그리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불모지 부산에서 말이다.
과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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