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를 하나 가져왔다.
검은색에 목받이가 있는 제법 크고 무겁고 그럴듯한 의자다.
십년도 넘게 사용해서 처음의 선홍색 기운이 거의 사라진
낡은 의자를 버리기 전에 햇볕 좋을때 사진을 찍으려 옥상에 옮겨놓았다.
아마 비가 오고 푹신하게 젖어버린 의자를 찍는것도 나쁘진 않겠다.
오랜 세월동안 나의 엉덩이와 등과 함께한 의자이다 보니
이런 상그러운 기분이 드는것도 무리는 아닐것이다.
그리고 붉은 의자가 비워둔 자리에, 검은 의자를 놓아두었다.
앉아보니 미묘하게 편한듯 불편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손을 봐서 높이도 맞추고 목받이의 길이도 맞춰주었다.
몸을 뒤로 뉘일때 너무 넘어가지 않도록 딱딱하게 텐션을 조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약 삼십분 가량 씨름을 하고나니 그제서야 좀 편한 기분이 들까 싶더니
두어시간 정도 앉아 있으려니 그래도 미묘하게 불편하다.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보고 여러가지로 보다가 오른쪽 팔걸이를 분해하여
없애버렸더니 조금 낫다. 왼쪽 팔걸이도 없앨까 하다가 오분 정도 곰곰히 생각한후
그건 그냥 놔두기로 했다.
아, 이제야 조금 편안한 기분이 드는듯 싶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 동안 미묘하게 햇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옥상에서 오후의 자욱한 먼지와
새벽의 푹젖은 이슬에 마음을 달래고 있을 붉은 의자에 카메라가 쉽게 가지 않는다.
평소에 \’이런류\’를 찍을땐 언제고 나의 촬영 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햇볕이 엷은 느낌으로
찍는 것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렇게 작업 하는것이 나의 방식 중 하나다.
붉은 의자도 예외는 아닐진데 어쩐지 그러질 못하고 있다.
평소라면 그 이틀간 촬영하기 무척 적격인 날씨였을터다.
게다가 처음 의자를 옥상에 올려 놓을때, 고민할 필요 조차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구도와 위치 그리고 노출까지 이미 결정 되어 있었다.
의자를 그 위치에 놓고 잠시간 모양을 다듬고 태양의 광선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몇시쯤에 올라와서 촬영 하면 될 것인지 조차 한순간에 결정했을 터이다.
그리고 촬영이 끝난 후 붉은 의자를 버리려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자꾸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데 이건 정말 마음이 불편해서 일까 아니면 아직 검은 의자에
적응하지 못한 나의 몸이 불편한 탓에 마음이 불편한 것일까.
검은 의자에 진득히 앉아서 생각 해보았다.
몇가지 다른 소소한 일거리 부터 약간 골치아픈 일까지 해보았는데
느끼게 된 점이 몇가지 있다.
검은 의자에 앉았을땐 확실히 살랑살랑 뭔가를 하기엔 좋았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할땐
몸을 뒷쪽에 기댈 수 있어서 편했다. 의자의 높이를 최대로 높게 해두어도 아주 미묘하게
(1~2센치 차이일까) 낮은데 그 아주 미묘한 높이의 차이로 모니터를 아주 살짝 올려다 보도록
만들어 주었다. 확실히 편안하게 뭔가를 봐야할땐 좋다.
하지만 작업을 할땐 다르다.
신경을 많이 쓰거나 집중력이 필요하거나 작업을 할때는 집중이 쉽게 되지 않는다.
의자 자체가 몸을 자꾸 뒷쪽으로 기대도록 강제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보통 30분 이상 집중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어쩌면 휴식용 의자라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나에게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느낌이 든다.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생각해보고 나온 결론은,
적당히 불편한 느낌이 없었기 때문에 불편했다.
작업을 할땐 적당히 불편함이 편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불편하기만 한것도 아닌 것이
별 신경쓰지 않는 무심한 녀석이지만 사실 속은 부드럽다던가.
아니, 이것하고도 조금 다를까.
삼일째 되던날 약 30분을 고민한 끝에 검은 의자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낡아빠진 붉은 의자의 십몇년간 묵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먼지를 터는데는 라이트 임프레션에서 나온 통자 알루미늄 커팅 자에 비닐을 씌운것으로
팍팍 때려주었다.
처음 일격을 날리는 순간 오랫동안 쌓였던 먼지들이 순식간에 내 폐속을 말 그대로 찔러왔다.
이런 의자를 지금껏 잘도 앉았었군 싶을 정도로 심했는데, 털어도 털어도 계속 나오는 먼지가
침침한 햇볕속에서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서 싸- 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왜 그랬을까 생각 해봤는데, 참으로 단순한 이유였다.
그래.
그러니 싸-한 기분이 될 수 밖에..
붉은 의자가 돌아온지 이틀이 지났다.
익숙한 길이와 크기와 적당한 불편함이 나를 안정시켜 주고 있다.
작업을 해도 빈둥거려도 뭔가 심각하게 머리를 감싸쥐고 있어도
붉은 녀석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어쩐지 글렌굴드의 심정을 알것만도 같다.
이 의자를 만든 이름 모를 메이커에겐 나 같은 사람은 참 싫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볼품 없는 디자인의 의자를 참으로 튼튼하고 질기게도 만들었다 싶다.
그렇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즈음 문득 드는 느낌은 어쩐지 미묘하다.
이런 의자 하나에 이렇게 구애되는 것이 그닥 유쾌한 기분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세월이 스며든 오래된 먼지를 털어 낼 수 있었고
일광 소독도 아주 찐하게 했다.
일단,
이것으로 만족 하도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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