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참 아름다웠는데

목요일 정오에서 밤뼘만큼 지난 오후에 거리를 나섰다. 은행 열매가 밟혀 짓뭉개진지 오래된듯 보도블록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것을 청록색 비둘기가 쪼아대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 기다리고 있는동안 태양과 정면으로 별수 없이 마주 했다.  햇볕이 무척이나 따뜻하여 어딘가 눈과 가슴이 살짝 시린 기분이 들었다. 시내의 상점가들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듯 느긋하고 조용하게 보이지만 가계 사장의 기분은 좀 다르겠지.

노랗게 염색한 삐쭉 머리의 젊은 남자와 선그라스를 낀 늘씬한 여자가 주차장에서 평일 목요일 낮에 나오는 장면은 어쩐지 무척 리얼 하면서 한편으론 어딘가 환경까지 비현실적인 느낌이 생생하다.

그렇게 걸어오는 동안 몇컷인가 조용히 셔터를 누르고 필름을 갈아 끼우고 감도를 다시 설정하였다. 약속 장소에 가까워 오자 기분이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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