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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에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꿈을 꾸었다. 샌드박스 같은 그곳에서 그간 고통스럽게 조금씩 녹여갔던 감정들이, 그 안에서 마구 날뛰었고 아마 그때 꿈속에서 보았던 나의 눈동자는 붉은색이 아니었을까 한다. 꿈에서 깨었다. 그대로 누운채 얼마간 천장을 보고 반쯤 떴던 눈을 감았다. 꿈을 꿨다. 내가 생각했고 바랬던던 일상적이고 소소한 꿈이다.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늙어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산보를 하고 언젠가 죽음을 \’맞이\’ 하는 무척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현실에선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꿈. 눈을 뜨고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모든게 너무나 리얼해서 외려 현실미가 떨어지는 기분이다. 공기의 흐름이 눈에 보일 정도다. 무척 조용하고 멈춰있는듯 하지만 공기는 그 안에서 뭉글거리며 구석구석 뭉글거리고 있다.

꿈에서 깼다. 아까와 같은 천장, 이불을 덮고 있다. 어쩐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도 꿈인가 싶은 기분이 든다. 다시 천장을 바라 보았다. 같은 천장이다. 어느쪽이 현실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시계를 보자 오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깥은 아직 어둑하고 한없이 검은색에 가까운 파란색이 수족관 물처럼 방에 가득 들어차있다. 토할것 같았다. 아직도 현실감이 없었다. 일어나서 웃옷과 팬티를 벗어 세탁기에 넣었다. 발가 벗은체로 원두를 갈아내고 커피 메이커에 전원을 올렸다. 머리를 감고 이빨을 닦고 옷을 갈아 입었다. 세탁기에 전원을 넣고 시린듯 푸른색의 고농축 액상 세제와 진흙같은 파란색 섬유 유연제를 넣고 버튼을 눌렀다. 어제밤 작업실 돌아올때 사두었던 식빵을 토스터에 넣어 굽는 동안 담배를 한대 피우고 커피와 구워진 식빵을 밀어 넣었다.

이러면 현실감이 느껴질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직 나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지만 어쩐지 무섭거나 불안하진 않았다. 꿈에서 깨던 아니던 현재 내가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범위와 한계는 이 세계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꿈이라는건 보통 단편적인 시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세탁이 끝났다는 부저가 울렸다. 세탁물을 정리하려 가보니 세탁기가 아직 돌아가고 있다. 환청이라도 들은게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렴 어때 싶은 기분이다. 15분 정도 시간이 남았고 그 동안 잡다한 것들을 해치웠다.

다시 부저가 울리고 세탁물을 걷어서 하나씩 건조대에 올려놓았다.
꿈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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