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는다는 것.

그 어떠한 미사여구가 붙는다 하더라도 결국 소요욕, 물욕이라는 것이 정당하리라 생각한다.

자동차라고 한다면 속이 들여다 보일것 같은 코발트 블루나 브리티쉬 그린의 caterham super 7이다. 이 차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어서 그 사이 매우 다양한 버전과 가격대가 있지만 외형 기본 디자인은 변화가 전혀 없다고 해도 좋다. 커다란 나무상자 2개를 빠루로 직접 뜯어내서 엔진을 제외한 자동차 전체를 나사 하나부터 손수 전부 조립해야 하는 킷이다. 제로백은 3.8초. 특이하달지 당연하게도 캐터햄 본사에서는 이 차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나사 하나까지도 전부 따로 판매한다. 기름복을 입고 차에 기어들어가서 사소한 나사 하나까지 완전히 내가 만들어가는 자동차.

그리고 스피커라고 한다면 MBL Radialstrahler 101.
이 스피커는 1996년, 어쩌면 1997년에 딱 한번 들은적이 있다. 정확하겐 이때 나는 소리에 관한 기준의 정립이 이루어졌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왜 이런식으로 말하냐면, 당시 들었을땐 기대감이 과했던 탓이였는지 뭔가 천상의 소리 같은걸 기대하고 있던 정도의 수준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 들렸던 것은 천상의 소리 같은것 따위는 전혀 없고 ‘그냥’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만 들렸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렇게 들렸던 큰 이유중에 하나는 소위 ‘스피커가 사라진 듯한 마법’을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순간부터 이루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이 생겨났는데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빴었냐 라고 하면 왠지 좀 기분이 나빴었던 것도 같고. 혹은 좋았었냐 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소리는 단 한번도 들은적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자기 좋을데로 변형시키기 마련이고 지금 다시 들어본다면 이것이 어떻게 들릴지 짐작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음악을 재생하는 기기류 듣는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명확한 기준을 무의식적인 영역에서 작용한 것임엔 변함이 없다.

14여년 이상 나와 함께한 앰프는 생산일이 내 나이와 엇비슷한 낡고 구동력 반응속도 모두 떨어지며 뭉툭하고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는 소리를 들려주는 녀석이다. 스피커는 한때 한국 스피커의 자존심이라 했던 동양마샬 DME 스피커. 이 역시 해상도나 반응속도와는 거리가 아주 먼 녀석이다.

막상 소리의 기준은 MBL의 저런 말도 안되는 녀석이였으면서도 막상 내가 듣기 편안해 하는 것은 이런 부드럽고 뭉툭한 쪽인 것이 난 아주 재미있다. 그리고 이것이 난 무척이나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간 MBL Radialstrahler 101E Mk2 Reference를 소유해서 내 가슴속 남아있던 잔영을 파쇄하고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 또한 무척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소유 라는 것의 밑바닥엔 언제나 그러한 것을 깔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척이나 아프고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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