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데 차로 이동하는 것 보다 1시간이나 더 소요되는 열차를 선택했다. 총 소요 시간은 4시간. 단순히 가격이 더 싸서가 아니다. 열차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시스템을 보면 그 나라의 일부가 보여버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탄 열차가 출발지에서 약 50키로미터 지점에서 기관차의 엔진이 터졌다. 그리고 다른 어나운스먼트도 없이 (못들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냥 열차가 멈췄다.
내 왼쪽 자리에 앉았던 인문학, 언어를 연구하는 스페인계의 아름다운 눈동자와 말끔하게 정돈된 대머리를 소유한 40대 중반 대학 교수가 짜증을 웃음으로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내 오른쪽에 앉았던 60대 초반의 프랑스인 여류화가는 에밀 졸라를 읽으면서 오늘밤 까지 이럴지도 모를거라고 했다. 희안하게도 이 좌석 라인을 제외한 다른 승객은 현지인들이다. 에드워드 호퍼가 아편에 쩔어있다면 좋아할 것 같은 광경이다.
열차의 실내는 아주 낡고 오래된 모노륨에 실내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거기에 보수 페인트를 몇번이나 덧발라 두꺼운 질감이 느껴진다. 창문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방식으로 유리가 뿌옇고 당연 에어컨은 없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얇팍한 선풍기가 천장에서 맥아리 없이 돌고, 사람들도 꽉 차있고 온도와 습도 모두가 높다. 햇볕의 광선이 거친듯 부드럽다.
운행중에 기관차 엔진이 주저앉은 것은 여러가지를 시사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 보다도 이후의 후속 조치를 생각해보면 이 곳이 가진 일면이 드러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였지만, 지금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은 초조함과 조바심을 들게 한다. 할일이 없어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왜 이런 조바심이 드는가에 대해서 생각 해보기로 했다.
생각 해볼수 있는 원인은 무척 다양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부터 사회과학적인 관점을 둘러 5살때의 특정한 일 부터 시작해서 이유나 원인의 가짓수는 줄잡아 백가지는 넘을듯 했다.
나의 초조함은 어디서 왔는가. 혹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가 어찌하여 난 이 상황을 여유롭게 대하지 못하는가. 열차가 멈춘지 3시간 후가 지나도 여전히 기색이 없다.
바깥 광선이 달라진 것을 느끼고 하늘을 창문 너머로 보는데 꺄르륵 거리는 여자 아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지금 나의 상황과 너무 이질적이라 창문 밖으로 목을 빼고 봤는데 교복을 입은 여중생 정도로 조이는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는다던가 서로 재잘거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이 낮고 두껍게 깔려 어둡지만 빛이 남아 있던 기묘한 빛의 퍼짐이 있었고 결국 목을 빼어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밝은 표정으로 화답을 하고 하트 표시를 하기도 한다. 나도 잠시 카메라를 내리고 손을 흔들어 화답을 했다. 아이들은 더욱 즐거워 한다. 몇장인가 윤율을 타듯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찍고 나서 카메라를 다시 넣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몇분인가 후에 애들이 노래를 부른다.
갑자기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싶더니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열차가 멈춰 심기가 불편했던것 부터 시작해서 비가 쏟아져 아이들의 소리가 멈춰버린 그 순간까지, 일련의 과정들 전체가 나는 좋았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있던 자리에 빗소리가 들어왔다. 짜증이 무척 줄었다.
본디 4시간을 소비해서 가야할 시간 만큼, 4시간을 그곳에서 기다린 후에야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 즈음에서 초조함에 관한 생각을 그만두었다. 의자에 앉아서 할 수 있는 놀이 였던거거든.
그렇게 40분 정도 달리나 싶더니 갑자기 열차가 또 멈춘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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