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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호사스러운 경험을 했다. 산책을 하고 수영을 하고 그대로 잠도 들었고 맥주도 마셨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제법 비싼 교통비를 치뤄서 거리를 달리고 한밤의 바다를 봤다. 그런데 이런 시간도 혼자서 하니 어딘가 마음이 허허롭다. 좋은 것은 함께 할때 더욱 즐겁다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세삼 떠올렸다. 밤은 길었고 침대는 푹신했지만 많이 외로웠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이런곳에 혼자 오는 사람 따위 나 정도 였을것이다. 게다가 밤 10시 넘어서 체크인 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 것이다. 이미 짐작도 했고 심지어 일종의 각오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실제 일어나는 일은 예상을 넘기 마련이다.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혼자 왔다는 것을 말하자 담당자가 아주 일순  멈칫 했던것이 생각났다. 방의 세팅도 커플에 맞춰 무척 세심하게 되어 있었다. 실소가 터졌지만 배낭을 던져놓고 사진을 몇 장인가 찍어내고 담배를 피웠다. 몸이 너무 피곤했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샤워를 하고 배낭에 넣어두었던 진베를 입고 산책을 했다. 무척 긴 밤이였다. 책이 옆에 있었지만 도무지 읽을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몇번이나 책을 열었다 닿았다. 그리고 그 일을 체크 아웃 하기 전까지 반복 하였다.

다음날 미니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시내로 숙소를 잡았다. 호사스러운 곳에 있었다고 해도 겨우 이틀이다. 그리고 그 이틀만에 지겨워졌었다. 그럼에도 도착했던 게스트 하우스에 침대에 앉아서 멍하게 10분간 앉아 있었다. 웃기는 일이다. 그래봤자 이틀 있었던 것 뿐인데, 어딘가 미묘하게 곰팡이 냄새가 나고 창문이 없어서 햇볕이 들지 않으며 어딘가 슬픈 느낌이 드는 방에서, 침대에 앉아서 느껴지는 이 낙차감에 나는 당황하였다. 나라는 인간은 비교적 이러한 것에 자극받지 않는 편이였는데, 어째서인지 이번은 그 낙차감이 무겁게 나를 눌렀다.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이 낙차감을 몸 구석 구석에 새겨 넣었다. 배낭을 풀고 다시 카메라 가방을 챙겨서 로비로 내려갔다. 그제서야 조금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가격에 비해 위치가 제법 좋은 곳이였는데 어째 사람이 거의 없다. 그 게스트 하우스에서 봤던 사람은 독일인 커플 한쌍, 일본인 할머니 한명이 전부였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서 사진을 조금 찍었다. 아무래도 시내다 보니 차도 사람도 많았다. 걷다가 배고프면 적당히 들어가 밥을 먹고, 갑자기 비가 내리면 적당히 아무곳에나 들어가는 김에 내부를 돌아다녔다. 밤에 전철을 타고 재즈바에 가서, 어딘가 모르게 적당히 모자라고 적당히 즐겁게 연주하는 재즈 라이브를 듣고 숙소로 돌아갔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고 이야기 하고 들었다. 다들 어떤 종류의 공통점을 새삼 느꼈다. 약간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쓸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난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다음날 소개로 한분을 만났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것 같은데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한것 같지 않다. 반대로 많은 이야기를 한것 같지 않은데 많은 이야기를 나눈듯 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듯 한데 맞닿은 부분이 어딘가 많아서 그런 느낌이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영화를 보러가자는 이야기가 되어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각자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조금 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것 같은데, 때문일까 다음 약속 장소로 가는 발걸음이 그다지 가볍지 못했다.

약속장소에서 사람을 만났다. 다음날 귀국하는 분인데 마지막 밤에 할일과 관련하여 관련 안내와 시스템을 알려주었다. 무척 좋아한듯 하여 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겸사 겸사 나도 맥주를 얻어 마셨다. 적당한 타이밍에 빠져나와서 숙소에 돌아오니 뭔가 무척 지친다.

다음날 일어나니 일본인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나이때 분들 특유의 쉴새없는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딸과 같이 왔는데 이리저리 딸에 대한 자랑이 보통이 아니다. 실제로도 그럴만 하겠다 싶다. 어떻게 같이 오시게 되었냐고 하니, 나의 예상을 넘은 대답이 나왔다. 걱정되어 따라왔다고 한다. 그런데 따님은 지금 어디 있으냐 했더니 저 혼자서 지금 다른곳을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순간 몇가지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서는데, 그 생각을 입으로 옮기지 않으려 무척 신경을 썼다.  그리고 할머니가 다녀온 장소로 화제를 돌리는데 성공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체크아웃 시간을 초과하여 나가봐야 한다고 하니 일순, 그 나이즈음의 여자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얼굴에 그늘지고 아주 엷은 시니컬함이 보였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다음 숙소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배낭을 매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길을 걷고 있으니 명백하게 이방인이 된 기분이 든다. 카메라 가방을 매고 걸을때와는 또 다르다. 웃기다면 웃긴 이야기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또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맥주를 마셨다. 이럭저럭 벌써 밤 시간이 되었다.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내를 떠나기 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멘탈이 많이 상해있었다. 재차 확인하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단지 체력이 많이 소진되어 그랬었을 뿐이라고 안심하고 싶었던 것과 동시에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덮어둔다고 한들 여기서 뭔가 더 달라지거나 좋아질만한 요소가 없다고 판단했음에도, 어딘지 숨이 답답하다. 돈이 아까운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시 한번 마음에 상처와 비슷한 것을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 되진 않을런지 두려웠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나로선 너무나 가소롭고 우스웠다.

일부러 최대한 마음을 가볍게 하려 노력했다. 요컨데 소위 관광객 모드를 발휘하고자 했다. 바보 같이 커다란 배낭을 맨채 들어가고 두시간 후에 나왔다. 나는 다시 한번 더 확인을 했고 그 결과가 나로서는 무척이나 아팠다. 내가 스스로 인지하고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나에겐 시간이 더 필요 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사람은 스스로를 잘 속일 수 있다. 네가 믿던 믿지 않던 자신의 머리도 마음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몸은 속일 수 없다. 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 났다. 그리고 몇년 후 그 말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정신 위생상 심리적 방어기재에 의한 올바른 일이라고 자위를 했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정면으로 인식하는 순간, 느껴지는 아픔이라는 것은 입술을 굳게 다물로 걷는 것으로 버티기엔 여전히 힘들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다. 어쩌면 난 이것을 이미 예감 했었기에 다음 숙소를 정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밖에서 움직일때 나름의 사소한 두가지 원칙이 있다. 숙소에 머무르는 것은 최대 3박까지. 그리고 한번 갔던 곳은 다시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가졌던 이 원칙을 깨기로 결심했다.

밤 1시가 되어 이전에 갔었던 게스트 하우스를 갔다. 일단 1박만 하기로 했다. 이대로 죽어도 별 이상이 없을것 같은 피곤함이 쏟아졌다. 샤워를 하고 눈을 감았다. 죽음 같은 잠이 쏟아졌다. 다음 날 뭔가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누군가 침대에 얼굴을 걸터 놓고 나를 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정신 차리고 다시 보니 그곳의 매니져였다. 나를 기다렸다고 한다. 포옹을 했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왠지 잠이 약간 더 편해진 기분이다.

얼마나 잠을 잤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니 온몸에 송곳을 찔러 넣은듯 아프다. 머리도 아프다. 시계를 보니 체크아웃 시간은 이미 지났다. 매니저가 어쩌면 배려 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다른 곳으로 갈까, 아니면 며칠 여기에 더 있을까 하다가 매니저가 나와서 담배 한대 같이 피운 다음 숙박을 연장하기로 했다. 내가 없던 사이 장기 여행자들은 전부 귀국했고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세삼스럽지만 어떤 장소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느꼈다. 배가 고파 매니저를 꼬셔서 같이 밥을 먹으러 나갔다. 제법 이것 저것 시켜서 먹었다. 내가 없던 며칠 사이 (웃긴 소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물을 마시고 바람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밤에는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쓸때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안타깝게도 여행자는 기본적으로 비겁하다는 것을 상기하는 시간이였다. 종국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여행자를 비겁하게 한다.

새벽까지 천천히 맥주를 마시고 한국에 돌아가 식당을 개업하고 싶다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가지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가 가면 갈수록 이렇게 서로 이야기가 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여행지에 와서도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어딜가나 비율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숙소에 머문지 삼일째가 되자, 몸이 근질근질 해서 결국 카메라 가방을 매고 어딘가를 하루 동안 기어나갔지만, 소위 관광지에서 보여지는 시니컬한 내 마음만 잔뜩 찍고 왔다. 관광안내 팜플렛과 실제로 그 곳에 관광하러 온 사람들의 표정은 다르다. 어설픈 상업화와 진심과 동물원 구경 같은 것이 개체 없이 버물려 피어오르는 비릿함과 멀리서 봤을때 느껴지는 화려함과 가까이서 봤을때 깨진 유리 조각과 비루한 전선과 기업 광고가 새겨진 접혀있는 파라솔들은 어찌 보면 차라리 순수하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지 않은데도 이런 것들이 자꾸 보여진다. 말 없이 또 몇시간인가 걸었다. 무척 넓고 풀밭이 있는데도 황무지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드는 공원을 걸었다. 매연 냄새가 시큼하다. 계속 이리저리 걷다가 다시 숙소에 돌아왔다. 이 느낌이 싫지 않다. 마치 이 따위 세상 모조리 수몰 시켜버리겠다 싶을 정도의 스콜이 왔고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 봤다. 밤이 되자 맥주를 마시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곳의 라이브를 듣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페점 시간을 계산하니 도착하면 십여분 정도면 끝날듯 하다고 하자, 단 10분이라도 좋으니 지금 기분은 음악을 듣고 싶다고 해서, 결국 숫컷 일곱명이 조그만 오토바이를 개조한 3륜 차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블루스 라이브 바에 가서 정말 십여분 정도의 라이브를 듣고, 맥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죽을 먹었다.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어서 좋았고 쓸쓸했다. 다음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숙소 바깥에 의자에 앉아서 풍광을 봤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날이 더우면 샤워를 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에도 조급함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답답하지도 않았다. 그런식으로 4일을 그곳에서 보냈다. 내가 가진 원칙을 깨긴 했지만, 그것이 난 제법 좋았다. 귀국날 아침이 되었음에도 전날과 다름 없이 똑같이 지냈다. 마치 오늘이 귀국날이 아닌것 처럼.

여태껏 나름 게스트 하우스를 전전했지만, 그곳을 세운 사람과 매니저와 투숙객이 환송을 해주는 것은 처음이였다. 나는 애써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고맙다는 마음을 건냈다. 차 안에서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어포트 레일링크에 도착했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바깥의 경치를 제법 찍었다. 특히 아무것도 없는 회색의 거대한 빌보드를 많이 찍었다.

에어포트 레일링크에서 내려 공항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 바로 정면에서 보였다. 배가 고팠던 참이라 살짝 구운 빵, 몇가지 재료와 소스를 선택하곤 내가 기어왔던 길들을 되돌아 보며, 사람들이 나에게 밀려오는 것 처럼 보이는 좌석에 앉았다.

한입 베어물고 우물거리며 내가 걸어왔던 무빙워크를 정면으로 봤다. 무심히 왼쪽을 보자, 헤어지는 연인이 보였다. 딥 키스를 하고 얼굴을 부비고 그 와중에 남자의 손은 여자의 몸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려는듯 허리에서 가슴깨로 그리고 엉덩이로 유턴하듯 흘러갔다.

남자는 웨스턴으로 보이고 여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숏컷에 금발로 물들인 것만 볼수 있었다. 음료도 없이 샌드위치를 건조하게 씹으며 그 커플을 보던 중 여자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자세히 보니 현지 여자로 보인다. 여자는 우는것 같다가도 다시 끌어안고 그러다 다시 딥 키스를 한다. 상황만 보면 남자가 떠나는 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여자는 현지인으로 보이지만 남자, 여자중에 어느쪽이 떠나는건지 알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둘 중에 어느 쪽이 떠나는 쪽인지 알기 어려운 쪽이,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다.

샌드위치를 먹기전부터 그 커플은 계속 그랬던듯 했고, 내가 건조하게 전부 먹어치울때 까지 시간은 대략 9분 이였다. 나에겐 건조하고 지루한 9분이지만 그들에겐 짧고 아련한 시간이겠지, 그런식으로 그 커플은 이별의 안타까움이 연출 되고 있다. 아주 짧은 찰나 끌어안은 남자의 시각이 사각인 곳에서 비행기 표를 내려다 보는 여자의 눈이 달라진 것을 본듯한 느낌이 들지만, 지금 나의 마음이 몹시 비틀려 있어서 그렇게 보였으리라고 생각했다. 잠시간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남은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고 나올때 까지도 그러고 있다. 자리를 나서며 나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절레절레 좌우로 주억거렸다.

멍청할 정도로 거대한 공항에서 보딩패스를 받기 위해 천천히 걷던 중 아까 봤던 남자가 성큼 성큼 크고 빠른 걸음으로 내 앞을 질러간다. 난 걸음을 멈추고 그 남자를 살펴 봤다. 그 남자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방향을 돌리자 얼굴이 정면으로 생생하게 보였고 그것은 마치, 모든것이 적절히 마무리 되었다는 표정이였다. 그 어떤 아픔이나 아쉬움도 없는 표정이다. 마치 출장을 떠나는 얼굴 이다.

아무래도 좋을, 나와 아무 상관 없는 것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순간 이것이 착각이였으면 하고 나도 모르게 바랬다. 그와 동시에 그 남자와 함께 했던 현지 여자는 공항을 떠나며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순간 섬�하여 생각하기를 그만 두었다.

비행기에 앉으니 옆 좌석엔 귀여운 느낌에 한껏 멋을 낸 모자를 쓴 조그만 여자 꼬마와 가슴에 한살도 안된 아기를 안고 있는 베트남 어머니가 앉았다. 아기의 울음을 달래고 여자 꼬마의 소리를 들으니 베트남어가 같이 들린다. 그런데 중간에 \’모자 벗고\’ 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꼬마를 보고 아기를 안은 어머니를 보며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이가 뭐라고 엄마에게 말하더니, 그 말을 나에게 번역하여 나에게 물어보길, 나보고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보는 거였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라고 한국말로 대답을 했다. 그리곤 재차 아이를 천천히 봤다. 너무나 선명하고 깨끗한 노란색의 웃옷과 핑크색의 쉬폰 치마를 입은 소녀의 얼굴. 짧은 숏컷이 아이 특유의 동그랗고 또렷한 커다란 눈을 더욱 강조하는 느낌이였다.

아이는 마치 오랫동안 연습 한듯 고개를 숙이고 한국발음이 익숙치 않은 작고 여린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나이는 여섯살 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을 위해 준비한 것인지,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기 전 나에게 예행 연습을 한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난 분명 무슨 말이라도 했었어야 하는게 옮다. 하다 못해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면서 칭찬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나는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웃으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게 나의 최선이였다.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억지로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 많이 피로했다. 겨우 잠이 들었다. 몇시간이 지났을까 소란스러워 잠에서 깼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아침이 되었다. 비행기 바깥 온도는 영하 37도를 가리켰다. 꼬마 아가씨가 서러운듯 울고 있다. 잠들기 전 까지만해도 이쁘게 정돈 되었던 머리카락도 부시시 하다. 한참을 목도 했다. 울음이 무척 길다. 알아들을 수 없는 베트남 어로 엄마와 아이가 한참을 이야기 한다. 어느덧 공항 도착하기 30분 정도 남았다. 아이의 엄마에게 목례를 하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세가지 정도의 상황을 유추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제발 맨 마지막 세번째에 상황이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버스 정류장에 갔다. 어딜가도 다르고 어딜 가도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또 몇가지 생각들이 일어났지만 애써 생각을 누르고 담배를 한대 피웠다. 도착하여 철문을 여니, 별천지 같았다. 이 곳이 정말 내가 있었던 곳이였나 싶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 중에 삼분의 이는 필요 없거나 버려도 될것 같았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감이 들었다. 급격한 피로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덮쳤다. 배낭을 그대로 바닥에 던져두고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우려 마셨다. 빨래를 하고 먼지 쌓인 것을 걷어내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바깥에 나가 있는 동안 그렇게 먹고 싶었던 두툼한 돈까스를 먹었다. 도착한 날 몇명에게 연락이 왔고, 인터벌 타임 없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인사를 했다. 고맙고 감사하다.

순식간에 밤이 되어 익숙하고 마음 불편한 침대에 누웠다. 익숙하고 불편한 천장을 잠시간 보고 있다가 눈을 감으니 정신을 잃어버리듯 잠에 빠졌다. 다음날 일어나 천천히 주위를 둘어 봤다. 에스프레소를 뽑아서 마시고 담배를 태워내고 잠시간 의자에 앉아서 멍하게 허공을 봤다. 공기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어제 막 돌아왔을때 느꼈던 별천지 같은 느낌은 사라지고, 삼분의 이는 없어도 될 것 같은 느낌 따윈 사라졌다.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디까지 간사한 것인가. 약빨이 하루도 가지 않는다. 적응이 빠르다고 한다면 참으로 빠르다.

시간이 흘러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삼일도 걸리지 않았다. 쌓여있는 일들과 해결되지 못한 일들과 답답한 일들과 어떻게든 꼭 되었으면 하는 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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