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위해 도쿄에 온 이후에도 계속 작업을 했다. 어쩌다 보니 삶을 충분히 돌아 볼만한 연령인 사람들의 촬영이 많았던것 같다. 마침 내일은 갤러리에 나가는 날이 아니였기에 그간 몇가지 생각을 정리하여 하라주쿠에 가기로 했다. 마침 3일 단위로 숙소를 옮겨 다니는 나름의 원칙으로 다음 숙소는 신주쿠에 있는 저렴한 숙소로 가야하기도 했고 신주쿠와 하라주쿠는 가깝기도 했으며 익숙까진 아니더라도 몇번 가본 적이 있었기도 했고, 제일 중요한 점은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바로 카메라 가방과 카메라, 담배를 챙겨서 하라주쿠로 향했다. 도착하는 순간 왠진 모르겠지만 느낌이 기묘하게 싸-한 느낌이 든다. 일단 역 바로 앞에 있는 흡연 스팟에서 한모금 하며 주변 분위기가 몸에 익도록 한다. 하라주쿠 역에서 전차가 도착할때마다 문자 그대로 많은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들이 쏟아져나왔다. 두가지 사람들이 있었다. 끊임없이 사람들은 어디론가 분주하게 이동중인 사람들. 멈춰있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고개를 숙여 핸드폰만 바라보는 부류. 아마도 여기서 촬영은 결코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근처를 돌며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사진을 찍으려 할때마다 어찌된 일인지 대단히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야 나의 행색이라고 한다면 하라주쿠에 어울리는 차림이 전혀 아니고 때꾹물이 줄줄 흐를것 같은 낡고 볼품 없는 갈색 캔버스 가방에 (원래 그런 컨셉으로 나온 카메라 가방이지만) 머리도 길고 수염까지 덕지 덕지 붙어 있으니, 경계심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평소의 감각과 다르게 유난히 경계심이 높은 느낌이다.
두 시간 정도 돌면서 촬영을 했지만 촬영은 노력과 시간을 들인것 보다 못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촬영하는데 있어서 거절 당하는 경험이야 당연한것이고 심지어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 엄청난 인파가 움직이는 속에서는 촬영은 커녕 말을 거는 것 조차 힘들기 때문에 하라주쿠 메인 스트릿으로 내려가는 것은 작업 진행에 전혀 도움이 안될 것이다. 또한 목을 길게 늘인체 핸드폰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또한 쉽지 않았다. 다들 여기엔 명확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온 것이다. 나는 계속 말을 걸고, 거절의 다양한 형태를 경험하며 계속 말을 걸었다. 그리고 때론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일본에 살고 있는 동생과 합류했다. 그 사이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고 답답한 마음에, 하라주쿠에 있는 젊은 사람들이 왜이리도 경계심의 수위가 높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 중엔 하라주쿠 일대에서, 길거리 AV 배우 캐스팅을 일컷는 ‘카라스’ 라는 것이 제법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카메라를 들고 말을 걸면 매우 높은 확률로 그쪽 사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경계심의 수위가 높을지도 모른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나의 행색도 문제였겠지만..
하라주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메이지 신궁으로 천천히 걸었다. 경내에 들어서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촬영했다. 그 중에서 그늘 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는 젊은 여자 두 명에게 말을 걸어 촬영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혹은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정도로 보였다. 순서대로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촬영 하는 동안 한사람은 소리를 들을 수 없도록 막아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귀를 막아주었다. 그 모습이 참 귀여웠다. 준비가 끝나고 먼저 첫번째 사람의 촬영을 시작했다. 지금은 여기서 촬영의 내용을 말 할 순 없지만, 상대가 나의 말을 들었을때
순간 나의 가슴이 새파랗게 시릴정도로, 따뜻하고 밝고 활기차며 꾸밈없고 그늘 없는 웃음속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경황없이 이어갔다. 나는 그 웃음이 너무나도 아팠지만 나도 같이 웃으며 촬영을 계속 했다.
두번째 사람에게도 역시 같은 말을 하고 촬영을 했다.
역시나 같았다. 휴식시간도 없이 한번에 두번 연속으로 이런 데미지를 받고나니 순간 뭐라 어떻게 할 수 없는 기분이 꿈틀거렸다. 어쩌면 분노였을 수도, 연민이였을 수도, 슬픔이였을 수도, 희망이였을 수도, 절망이였을 수도, 어쩌면 본질에 가까운 어떤 것 이였을지도 모른다.
울고 싶었다.
촬영을 마치고 나는 미소를 머금으며 두 사람에게 정중하게 깊이 인사를 하고 길을 돌아 왔다. 동생과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를 나눴다. 그게 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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