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만성이 되어 나름 마음을 다스리는 요령 따위가 있었을 터임에도, 심장에서 검은 피가 퍽 하고 터져나가는 살의의 감정 둔턱까지 이르는 데는 단 몇 분 만이었다. 그토록 익숙함에도 여전히 그리고 대단히 아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이기에 나는 생존을 위해 감정을 최대한 없애고 냉정해지는 요령을 성장기에서 부터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터득했다. 그래서 나의 그런 모습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어떤 이는 나를 감정이 없는 로봇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어떤 이가 나를 로봇같이 보든 아니든 상관 없이, 감정은 그냥 사라지진 않는다. 타조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머리만 처박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인간에 감정에도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비슷한 공식을 갖는다. 정신의 스트레스가 몸으로 전환되어 퍼진다. 그 몸의 고통이 다시 정신의 고통으로 번진다. 그렇게 몇 순의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살미수로 끝난 뒤에 남는 몸의 상처 처럼 가슴에 새겨지고 남는다.
그저 그때그때를 모면하며, 잔에 든 흙탕물을 가만히 두어 흙을 아래로 가라앉히는 것 외엔 수단이 없는 것이다. 생존 본능은 이토록 저열하고 지독하다. 그러나 시간과 공을 들여 겨우 맑은 물을 분리 해놓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잔은 결국 특정 조건에선 또 흔들려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지독한 흙탕물이 된다. 이런 일이 건조하게 예고 없는 반복이 될 때마다 끈적거리는 흙탕물의 썩어가는 농도가 짙어질 뿐 이것이 순수하게 맑은 물로 정화되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나다.
컵을 바꿔 물만 따라낼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삼류 소설에서처럼 몸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내가 바뀌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자신만의 지옥을 껴안고 살아간다. 나 또한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빈번하게 한계선까지 갈려 나가다 보면 노이로제에 걸린다. 정신병이 되는 것이다. 마음의 결단이 강제되고 있음을 느낀다. 정신병자임에도 생존 본능은 이토록 저열하고 지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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