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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걷다 보니 조금씩 지쳐가는 다리가 느껴졌다. 모처럼 멀리 온 김에, 그리고 현지 교통 시스템 덕분에 자의 반 타의반 하루 단위로 움직이는 것을 반복했다.

그런 하루 중 아무런 사전 인지나 지식 없이, 그저 만나야 할 것들이 결국 만나게 되는 것처럼 이 그림을 보게 되었다.

화려한 이름들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이 그림은 얼마간 조용한 곳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 눈에 띄이지 않는 무채색의 작품이 벽에 얼마간 흡수 돼버린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도 없이 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도 배경도 살아온 삶의 굴곡도 모르지만, 이 무채색의 보름달이 떠 있는 밤에 창가에 나지막이 놓인 권총과 폐허가 그려진 단순한 그림을 보며 욱신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삶 어딘가에서 비슷한 풍경을 봤으며, 앞으로의 삶 어딘가에서 반복 될 풍경이었다.

십 몇분은 지난 것 같았다. 묽고 끈적한 물이 나왔다. 함께 하던 일행이 나를 발견하고 내가 보던 그림을 3초간 보고 다음에 갈 길을 무언으로 재촉했다.

급하게 사진을 찍고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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