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릴리의 방을 나섰을 때는 피가 쏟아지는 왼팔만이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유리컵의 얇은 파편을 주머니에 넣고 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마구 달렸다. 집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거대한 생물에게 통째로 삼켜져 그 내장 속을 빙글빙글 도는 동화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번 걸려 넘어지고 쓰러졌다. 그 때마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유리가 잘게 부수어졌다.

빈터를 가로지르는 도중에 풀숲으로 쓰러졌다. 넘어진 채젖은 풀을 씹었다. 쓴맛이 혀를 찔렀고, 바로 그 떄 풀 위에서 쉬고 있던 작은 벌레가 입 속에 들어왔다.

벌레는 까칠까칠한 가는 다리로 내 입 안에서 몸부림쳤다.

손가락을 입 안에 집어넣어 꺼냈더니, 등에 무늬가 있는 둥근 벌레가 침에 젖어서 기어 나왔다. 곤충은 침으로 젖은 다리로 미끄러져 가면서 풀 위에 내려앉았다. 벌레가 할퀴어 놓은 잇몸을 혀로 쓰다듬고 있는 동안 풀 위에 맺혀 있던 이슬이 내 몸을 식혀 주었다. 풀냄새가 전신을 감싸면서 몸에 가득 찼던 열이 서서히 땅으로 서며드는 것을 느꼈다.

줄곧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하고 풀 위에 누워서 생각했다.

그것은 분명하다. 밤에 느긋하게 병원 정원에 앉아 있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거대한 검은 새는 지금도 날고 있고, 나는 쓴 풀이라든가 둥근 벌레와 함께 태내에 갇혀 있다. 돌맹이처럼 굳어 버린 이 나방처럼 몸을 딱딱하게 하지 않는 한 그 검은 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주머니에서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로 잘게 부수어진 유리 파편 하나를 꺼내 묻어 있는 피를 닦았다.

곡선이 완만한 작은 유리 파편은 밝아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비추고 있다. 하늘 아래로 병원이 가로로 누워 있고, 그 너머로 가로수와 마을이 있다.

그림자처름 비치는 마을은 그 능선에 미묘한 곡선을 만들고 있다. 그 속선은 비가 내리는 비행장에서 릴리를 죽이려고 했을 때 천둥과 함께 한순간에 불타 희뿌옇게 보이던 곡선과 같은 것이다. 파도가 쳐서 어렴풋이 보이는 수평선과 같은, 여자의 하얀 팔과 같은 부드러운 곡선. 지금까지 줄곧 나는 끊임없이 이 하얗게 보이는 곡선에 둘러싸여 있었다.

가장자리에 피가 묻어 있는 유리 조각은 새벽 공기에 물들어 투명에 가깝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다.

나는 일어나서 아파트를 향해 걸어가면서, 이 유리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이 그 완만한 하얀 곡선을 비추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비치는 그 부드러운 곡선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늘 끝이 밝아지면서 유리 파편은 이내 흐려졌다. 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이제 유리 파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아파트 앞 포플러나무 아래에는 어제 내가 버린 파인애플이 구르고 있다. 잘려져 젖어 있는 곳에서 아직도 냄새가 배어 나온다.

나는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새를 기다렸다.

새가 훨훨 날아와 따뜻한 빛이 이 곳까지 닿는다면 길레 뻗은 내 그림자가 그 회색의 새와 파인애플을 감쌀 것이리라.

무라카미 류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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